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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왜 자꾸 통역이 말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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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3-21 12:33 조회2,8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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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통역이 말썽인가?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통역번역센터 소장 곽중철 (011-214-1314)

지난 며칠 사이 신문에는 <통역이 잘못됐다>는 기사가 연달아 났다. <통역사는 지폐처럼 가짜일 때만 세상에 알려진다>는 말이 있듯이 대소 외교 행사의 뒤끝에 통역 얘기가 보도되는 경우는 무자격 통역사가 오역을 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0년 1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러시아(당시 소련) 방문 도중 우리 측 정상회담 통역이 중도 하차하는 드문 일이 일어났을 때 필자는 청와대 공보비서관으로 있었는데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외국어만 잘 하면 통역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잘못된 통념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매스를 쓸 수 있다고 해서 외과 전문의가 아닌 사람이 모두 수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 듯 이제는 전문 통역 교육을 받은 통역사가 통역을 맡아야 한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약 14년이 흐른 지난 해 9월 노무현 대통령 러시아 방문 때도 통역이 완벽하지 못했고 특히 모스크바대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수여식 때 러시아측 통역은 축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다시 지난 14일 크렘린궁 근처 러시아 전략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4명과 우리 정부대표단이 러시아 에너지 관계자들과 세미나를 하는 자리에서는 양국 대표단 소개 때부터 통역 문제가 발생해 우리 측에서 배치한 2명의 통역사가 전혀 바람직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세미나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 북핵 문제를 논의할 때는 ‘핵(核)’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채 통역 됐고, ‘비핵화’라는 단어는 러시아 참석자들이  한국말로 통역에게 귀띔하기도 했고, 수 차례 ‘포괄적(包括的)’이라는 말이 나왔는데도 한번도 제대로 통역되지 못했다고 한다. 전문 통역교육을 받은 통역사였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태였다. 모스크바 현지에서 “러시아 어를 잘 하기 때문에 통역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통념을 깨지 못하고 급조된 현지 통역사를 싼 값에 고용한 결과로 보인다.
또 지난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정부 당국자들과의 연쇄 회담에 나선 라이스 장관은 낮 12시 30분쯤부터 시작된 기자회견 때는 한·미 양국의 통역 문제로 진땀을 빼야 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질문을 하자, 양측의 통역이 질문 내용을 라이스 장관에게 전달하지 않아 몇 분 정도 회견이 중단되기도 했다. 기자들의 질문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해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미국측 통역은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나 현재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영어 지상주의’에 젖어있는 미국에는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인이라면 통역도 잘 할 것”이라는 통념이 더욱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지난 10여년 동안 백악관과 워싱턴, 서울, 평양에서 국무부 통역을 도맡았던 연로한 재미 동포 분을 젊은 이로 세대 교체한 실험이 다시 실패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또 같은 날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생중계된 라이스 장관과 인터넷 매체 기자들간의 대화는  생중계의 절반 가량이 한국어 통역 없이 진행돼 네티즌들의 항의가 빗발쳤단다. 다른 준비에는 많은 노력과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인 통역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잘못된 통념으로 준비를 소홀히 한 또 하나의 해프닝이다.

“외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통역을 의뢰 받은 사람은 자신도 반신반의하면서 통역에 나섰다가 첫 통역이 시작되자 말자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경험을 한다. 예상치 못했던 무대 공포증 속에서 “외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통역도 잘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님”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특히 기자회견 통역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마감 시간에 바쁜 기자들의 질문을 분명히 알아듣고 그에 대한 답변을 정확히 통역하기는 어느 통역보다 힘들다.

물론 우리나라 외교부, 국방부 등에는 외국어를 잘하면서 관련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축적해 전문 통역사만큼 훌륭한 통역을 해내는 ‘자수성가형’ 통역사도 있다. 그렇더라도 각 조직에서는 “이번 행사만큼은 우리 직원이 충분히 통역을 소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경우에는 정식으로 통역 교육을 받고 충분한 경험을 쌓은 전문 통역사를 초빙해 통역을 시켜야 한다. “외국어만 잘하면 통역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통념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깨부숴야 한다.        (끝)

반기문-라이스 회견 '통역' 문제 또 구설수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07.13 17:17 04' / 수정 : 2005.07.13 17:41 04'


“통역문제 해결은 미 국무부의 영원한 숙제다”
12일 오후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과 합동 기자회견을 가진 13일 오전 외교부 브리핑룸.



▲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13일 오전 세종로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우리정부의 중대제안 대해 북한의 에너지 해결을 위한 좋은 해결책 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진기자단

40여분간의 회견 직후 국내 기자들이 대거 ’통역의 문제점’을 제기, 미 대사관 관계자들이 이를 무마하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지난해 10월 콜린 파월 장관 방한과 올 3월 라이스 장관 방한시에 제기된 ’통역 파동’이 또 재현된 것이다.

회견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난 3월 방문시에는 통역 준비나 진행상에서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이 많았지만 오늘은 단순히 진행상의 실수가 아니라 내용상 부분적인 오역이나 누락 등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한 국내 언론인은 “처음 팔레스타인 ’당국(authority)’을 ’권위’로, ’비핵화 선언’을 ’비핵화 동맹’으로 옮길 때만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이후 라이스 장관 발언을 다 옮기지 않거나 중요한 부분을 누락해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 발언과 통역 내용을 비교해보면 이런 주장이 사실임이 드러난다.

라이스 장관은 “우리는 북한의 회담 복귀는 아주 좋은 스텝이지만 단지 첫 스텝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으며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역 내용은 “북한은 6자회담에 다시 나온게 된 것은 첫 걸음이지만,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적 결정을 하느냐라는 문제”라고 되어 있다.

또 ’한반도 안보상황 개선을 위한 공동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점에 우리는 낙관한다’를 ’함께 공동으로 노력해 한반도의 보안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 결과를 낳기를 바라겠다’로 통역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도 반-라이스 공동 회견에서 ’통역 문제’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 당시에도 반 장관과 라이스 장관이 각자 통역을 대동했는데 두 사람 모두 질의 응답시 첫 질문자로 나선 한 기자의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에 대한 미국의 지지 발언 배경’을 묻는 질문 내용을 전달하지 못해 회견장에는 약 10여초간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되자 사회를 맡았던 외교부 공보관이 부랴부랴 질의 요지를 적어 통역에게 전달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통역은 또 외신기자의 ’EU의 대중 무기금수 철회 움직임에 대한 미국 입장’을 묻는 질문 내용은 통역하지 않은 채 라이스 장관 답변만 옮겨 흐름을 따라 잡지 못한 기자들이 우왕좌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지난 1월 중순 주한 미 대사관 공보실에서 열린 커트 웰던 미 하원 군사위 부위원장 일행의 방북 보고 회견에서도 참석자들이 대거 ’통역 서비스’ 문제점을 제기했다. 당시 통역을 맡은 국무부 소속의 김 모씨는 여러 차례 특정 부분에서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우물우물하는 바람에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았다는 불평이 많았다.

수 개월 전에도 국내 한 언론은 국무부 소속의 한 통역사가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워싱턴 정상회담시, 또 지난해 10월 파월 국무장관 방한 당시 부분적인 오역으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미 정부 관계자는 이같은 일련의 ’통역 파동’과 관련,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 “국무부는 통역사로 계약한 사람만을 국무장관 통역으로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는 말로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통역 파문과 관련한 라이스 장관의 ’급한 성격’ 문제도 지적됐다. 라이스 장관은 3월 회견시에도 “발언 뒤 통역이 이어지는 순차통역임에도 불구, 수 차례 발언을 계속하다가 ”오, 미안해요“라며 통역에게 사인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13일 회견에서도 통역이 끝나기 전 발언을 시작하고 발언 내용도 다소 길어 정확한 통역을 서비스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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