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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백악관 비밀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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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5-02 08:20 조회2,6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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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선칼럼@워싱턴D.C.] '백악관 비밀메모'

 "각하, 김정일 언급땐 폭군이라 부르세요…" 연설지침 나돌아


insun@chosun.com

입력 : 2005.05.01 22:39 09' / 수정 : 2005.05.02 03:19 59'




 ▲ 강인선 특파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이라고 부른 다음날, 워싱턴에서는 이 기자회견을 앞두고 백악관에서 준비했다는 ‘비밀메모’가 돌아다녔다.

“대통령 각하, 김정일에 대해 언급할 때는 ‘폭군’이나 ‘위험한 인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잊지 마시고,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와 ‘국민들을 굶어 죽게 한다’는 말도 잊지 마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은 ‘위협하고 허풍 떠는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부분은 미묘하게 아시아로 하여금 평양과 워싱턴의 큰 차이를 연상하도록 할 것이며, 아시아 국가들이 각하가 계획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쉽게 지지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북핵문제를 평화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 의도가 없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또한 차분하게 6자회담을 통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임을 확실하게 강조하십시오. 이 부분은 백악관이 100% 뒤처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정일의 이름을 적어도 12번은 언급하시되, 절대 그의 직책은 부르지 마십시오.”


이 ‘백악관 비밀메모’를 입수했다는 곳은 행정부 관리와 외교관들이 많이 읽는 워싱턴의 한 정보지였고, 메모 작성자는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NSC)의 마이클 그린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으로 돼 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다. 누군가 기자회견을 보고 나서 재구성한 것 같은데, 재미로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워싱턴의 속마음을 꽤 그럴듯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이 비밀메모의 진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취임연설과 국정연설 때도 일부러 피했다던 북한에 대한 자극적인 발언이 왜 또 등장했는가이다. 예전에 하던 말이 무의식중에 나온 것일까? 하지만 부시 대통령이 아예 작심한 듯 북한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 봐서, ‘실수’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백악관은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려는 노력은 이제 포기하고 북핵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기 위한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6자회담의 운명’에 대한 논란은 15년간 식물인간으로 살다가 영양공급 장치를 제거해 세상을 떠난 ‘테리 샤이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10개월째 공전하며 사실상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6자회담의 생명을 간신히 연장시키고 있는 영양공급장치를 뗄 것인가, 아니면 희망을 버리지 말고 좀더 기다릴 것인가?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소생기미가 별로 없는 6자회담에 최후의 집중치료를 하는 동시에 강경대응하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충격요법을 통해 마지막 노력을 기울여 보고 나서, 그래도 안 되면 유엔 안보리로 가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워싱턴을 방문한 이종석 NSC 차장이 시기도 장소도 분명치 않은 한·미 정상회담 계획을 덜컥 떨어뜨려 놓고 갔다. 백악관에 물어도 답이 없고, 국무부도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고 한다. 정상회담 카드는 어쩌면 6자회담의 생명선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결심을 지연시키거나 막으려는 우리측의 긴급처방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6자회담의 ‘식물인간 상태’를 단순히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회생시킬 비방이 없다면, 정상회담을 한들 무슨 의미 있는 진전이 나올까 싶다. 이곳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미는 차마 이혼은 못하고 한 지붕 아래서 각 방 쓰는 부부처럼 말이 안 통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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