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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김동현 씨 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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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6-23 16:37 조회2,9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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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북미 외교 산증인 미국무부 김동현씨 은퇴
"한국대통령 자기얘기하기 바빠 질문을 해가면서 회담했으면…” 

  ◇27년간 미국 국무부에서 한국어 통역관으로 일해온 재미교포 김동현씨가 은퇴를 앞두고 그동안의 비화를 털어놓고 있다. 

1978년부터 대통령 등 미국 정부 고위 인사의 한국어 통역을 맡았던 김동현(69)씨가 이달 말 은퇴한다. 김씨는 지난 27년 동안 부침을 거듭해온 한미관계와 북미관계 현장의 최일선을 지켜온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20일 세계일보 기자 등과 만나 그간의 숨은 비화와 소회 등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1994년에 이어 제2차 북한 핵 위기가 촉발됐던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차관보 방북 때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 개발 문제가 불거져 나온 상황에 대해 현장에서 통역하면서 지켜본 내용을 증언했다.

김씨는 켈리 특사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에 이어 강석주 제1부상에게 “북한이 비밀리에 농축우라늄을 통한 핵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켈리 특사는 그러나 그 증거를 보여준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세간에 켈리 당시 특사가 북한의 우라늄 관련 수입 내역서와 송장 등을 증거 자료로 제시하자 북한의 강 부상이 HEU 계획을 꼼짝없이 시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증언한 것이다.

김씨는 “강 부상이 ‘네 그렇습니다. 북한이 농축우라늄 계획을 추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면서 “그러나 정황이나 발언 전체의 문맥으로 볼 때 북한에서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그 같은 정황의 근거가 뭐냐는 질문에 “강 부상의 발언은 암시적이 아니라 명시적이었다”면서 “다만 당시 통역으로서 그의 발언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에 나 말고도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미국 국무부 직원이 2명 더 있었다”면서 “강 부상의 발언은 북한 측이 영어로 통역했지만 북한 측의 통역 내용을 미국 측이 들은 내용만 가지고도 북한 측이 인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북한의 HEU 프로그램 문제는 영어로 admit(인정, 시인)했다기보다 acknowledge(수긍)했다고 보는 게 더 가깝다고 부연했다.

김씨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 간 면담을 시작으로 거의 대부분의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 외무장관회담 등에서 미국 측 한국어 통역을 맡았다.

김씨는 또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면담, 1994년 북미 제네바 핵 협상, 6자회담, 커트 웰든 미 하원의원이 이끄는 의회 대표단의 방북 등의 통역을 전담했고 북한을 17번 방문했다. 김씨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때면 한국 대통령들은 큼직한 글씨로 준비된 자료를 보면서 미국 대통령들과 대화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하게 준비된 자료를 보지 않고 대화하더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또 “한국 대통령들은 미국의 장관 정도면 다 알 얘기를 자세하게 미국 대통령에게 말한다”면서 “한국 대통령들은 이렇게 준비해온 얘기를 다 하느라 바쁜데 자기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에게 질문을 해가면서 회담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관전평을 했다.

김씨는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4년 핵 위기 당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한반도 전쟁 위기를 막았다는 주장에 대해 “YS가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쳐서 막은 기억은 없다”고 부인했다.

김씨는 오는 8월 한국을 방문해 1∼2년간 체류하면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할 계획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2005.06.21 (화) 18:42 


 



 

 
 
 

곽중철 (2005-06-23 16:56:29) 
 
美국무부 통역관 김동현씨 은퇴
 한미 정상회담 27년 산증인
 한국 대통령들

10일 워싱턴에 있었던 한ㆍ미 정상회담에서는 귀에 익은 미국 측 통역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 통역관이 등장한 것이다.
1978년 이래 미 국무부 한국어 통역관으로 한국 현대사의 외교 무대를 목격해 온 김동현(69)씨의 은퇴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달 말 국무부를 떠나는 김씨는 20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서 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이르는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 제네바 핵 협상과 6자 회담 등 한ㆍ미와 북ㆍ미 간 주요 외교사의 뒷얘기를 풀어놓았다.

17번의 평양 방문. 미측 ‘대표는 바뀌어도 통역은 그대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줄곧 북ㆍ미 간 대화의 통로 역할을 해 왔다. 2000년 10월 12시간에 걸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회담이 통역 인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2001년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디스 맨(this manㆍ이 사람)’이라고 한 것은 김 대통령을 무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당시 이 말을 ‘this great man(이 대단한 사람)’으로 해석, ‘대통령께서’라고 통역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참모가 써 준 자료를 보지 않고 말하는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꼽은 김씨는 “한국 대통령들이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이미 다 아는 내용을 반복하기보다는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으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6자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부시 정부 기간에 완전히 해결되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그 이유로 미국과 북한 모두의 경직된 사고 방식을 꼽았다.

워싱턴=한국일보 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곽중철 (2005-06-23 17:01:23) 
 
“이제부터 ‘나’를 표현하고 싶다”

 ‘한·미 정상회담 통역’달인 美국무부 김동현 씨 은퇴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70년대말부터 미국 국무부 소속 한국어 통역자로 활동하며 한·미 외교현장을 지켜온 김동현(미국명 통 킴, 69)씨가 이달말 은퇴한다.

김씨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통역을 전담해왔고 1990년대 북·미관계가 활발해지면서 17번 방북, 북미대화의 가교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통역자로 살아온 그간의 삶을 ‘그림자 인생’이라고 정의한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드러내지 말고, 기억되지 말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 때문인지 김씨는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며 홍안의 소년처럼 조금 들떠있었다.

20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음식점에서 만난 그는 “앞으로는 내 생각을 자유로이 표현하는 삶을 살고싶다”며 그간 현장에서 겪은 비화를 털어놨다.

◈자유분방한 부시, 치밀한 레이건〓김씨는 미국대통령의 정상회담 스타일 얘기부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 수사나 복잡한 표현보다는 텍사스식 솔직한 표현과 단답형 대화를 즐긴다.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2001.3) 때 ‘이사람’(this man), 노무현 대통령과의 첫정상회담(2003.5)때 ‘편한 사람’(easy man)이라고 말해 국내에서 논란이 됐지만 실제 아무런 악의없이 그야말로 편하게 한 말이라는 게 그의 설명.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미국대통령들의 태도도 제각각이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직전 참모로부터 간단히 브리핑을 받는 스타일이고, 두뇌회전이 빠른 클린턴은 참모들이 준비해온 자료를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보고 정상회담에 임한다. 반면 레이건은 정상회담 자료를 꼼꼼하게 줄을 그어가면서 읽고 철저히 준비한 뒤 회담장으로 향한다는 것. 그는 이어 “내가 볼 때 미국대통령들은 모두 한국대통령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고, 늘 한국의 입장을 지원했다”면서 “내가 한·미관계를 전반적으로 낙관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라고 덧붙였다.

◈논리적 대화의 달인 DJ, 즉흥적 순발력이 강한 노무현〓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 자료나 메모를 꺼내놓지 않은 채 즉석발언을 즐기는 스타일이다. 반면 김대중 전대통령은 치밀하게 회담을 준비해 회담장에서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복시키는 스타일이고, 김영삼 전대통령은 참모진의 보고를 자기식으로 소화, 정상회담장에서 강하게 입장을 밝히는 스타일이다. 1994년 1차 북핵위기때 YS가 클린턴에게 전화로 호통을 쳐 북폭계획을 막았다는 일부의 주장과 관련, 김씨는 “클린턴 시대 모든 한·미 정상회담을 통역했지만 그런 말을 들은 바 없다”고 말했다.

◈북한에선 북한식으로?〓김씨는 17번에 걸친 방북 통역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면담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북측인사와 만날 때는 가급적 북한식 억양을 쓰며 북한용어를 사용한다. “불필요하게 북측인사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예컨대, 남측인사들을 만날 때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써도 북측인사들과 만날 때는 조선반도라고 번역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식 어법은 여전히 미국측 인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방북후 미국측은 강석주 북한외무성 제1부상이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계획을 인정했다고 공개했으나 북한은 통역의 문제를 거론하며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현장통역자였던 김씨는 “강 부상이 명시적 표현을 쓰진 않았지만 발언의 전체적 맥락에서 볼때 HEU존재를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영어는 평생 공부〓김씨가 영어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려대 영문과 재학중이던 20세 때 주한미군 1군단사령부 공부 통역을 맡으면서부터다. 이젠 ‘통역의 달인’으로 불리지만 그는 반세기전의 당혹스러운 경험을 잊지 못한다. 미군하우스보이와 미군병사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아 애를 먹었다는 것. 그는 올해 칠순을 맞지만 아직도 꼼꼼히 신문을 보고 전·현직관리들의 회고록 등을 부지런히 읽는다. “영어는 하면 할수록 해야할 게 많은 것 같다”는 게 반세기를 영어와 살아온 그의 지론이다.

그는 오는 8월 고향 서울로 와서 1~2년 지내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할 계획이다. “영어통역을 평생직업으로 살았으니 이젠 영어가 필요한 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싶다”는게 그의 소박한 꿈이다.

워싱턴〓이미숙특파원

musel@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5/06/21 
 
 
 

곽중철 (2005-06-23 17:01:40) 
 
“역대 회담중 盧 첫 방미때가 양국간 조율 진통 가장 컸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이래의 미국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의 한국 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측 통역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김동현(69)씨가 이달말 미 국무부를 떠나 은퇴한다.


김동현씨
 김씨는 한·미 정상회담뿐 아니라 1994년 제네바 북·미 협상,1999년 윌리엄 페리 특사의 평양 방문,200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면담,2002년 제임스 켈리 특사의 평양 방문 등 현대 한국사의 주요 사건들을 현장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김씨는 20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한국식당인 우래옥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그동안 미국과 한국, 북한간의 주요 회담을 통역하면서 느꼈던 점을 피력했다.


●“미국은 늘 잘해주려 했다.”


김씨는 정상회담 때마다 미국의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잘해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양국간의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우방과 동맹국임을 강조하고 방위공약의 준수를 계속 확인했다는 것. 이에 따라 정상회담도 전반적으로 다 잘됐다고 김씨는 말했다. 다만 한국측은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에 해석까지 추가해서 발표하는 경향이 있다고 김씨는 지적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이라고 호칭한 것과 관련, 부시의 말하는 스타일 때문에 비하하는 식으로 들렸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This great man)’의 줄인 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부시가 노 대통령을 ‘Easy man to talk’라고 지칭한 것은 “말이 잘 통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때마다 참모가 써준 자료를 옆에 놓고 말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젊어서인지 자료를 안보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논리정연하게 말을 잘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한국 정부 입장을 자기 스타일대로 잘 소화해서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큰 글자로 인쇄해온 자료를 읽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 ‘합의내용´에 해석 덧붙여 발표


 이에 비해 미국 대통령들은 정상회담에 1,2쪽짜리 자료만 갖고 왔으며, 회담 직전에 장관이나 보좌관들로부터 현안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보좌관들이 써준 자료를 참조했고, 앨 고어 전 부통령의 경우는 자료를 그대로 읽은 뒤 통역하기 편하라고 김씨에게 건네주기도 했다고 한다.


반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현안 조정력이 탁월했으며, 회담 중간에 빠뜨린 의제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훑어봤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지난 94년 1차 북핵 위기 때 클린턴 행정부의 북폭 계획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막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한국군 단 한명도 동원할 수 없다고 말했거나, 전화로 호통을 쳐 막았다는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 통역을 맡은 이후 노 대통령의 첫 방미 때가 양국간 조율과정에서 “진통이 가장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강석주, 우라늄 프로그램 인정”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했는가를 놓고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지난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 회담. 김씨는 그 당시 켈리 차관보가 “미국이 결정적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으나 그 증거를 보여주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일부에서 알려진 것처럼 “켈리 차관보가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니” 북한이 시인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 1부상도 ‘우리가 우라늄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명시적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당시 미국이 갖고 있던 확실한 증거나 강 제1부상 발언의 전체 맥락 등으로 미뤄 누가 보더라도 강 제1부상이 우라늄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었으며, 그 자리엔 나말고도 한국말과 북한말을 이해할 수 있는 국무부 직원 두 사람이 더 있었다.”고 강조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씨는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64년 군 복무를 마치고 유엔군 방송에서 일하다가 71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으로 유학가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1978년부터 국무부에서 계약직으로 통역을 시작한 김씨는 이후 정상회담과 외무장관 회담, 정치인간의 회담을 통역해 왔다. 김씨는 앞으로 서울에 머물며 글도 쓰며 강연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기사일자 : 2005년 0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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