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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미국 정부 통역, 이대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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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6-10-07 08:25 조회3,3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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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 통역, 이대론 안 된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장 곽중철

 미국 최고위 관리들의 영어 발언이 한국어로 잘 통역 되지 않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 7월 방한한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무장관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서 데려온 여성 통역사가 팔레스타인 ‘당국(authorities)’이라는 말을 ‘권위’로 '비핵화 선언'을 '비핵화 동맹'으로 옮기자 기자단에 동요가 일어났고, 이후 라이스 장관의 발언을 다 옮기지 않거나 중요한 부분을 누락하자 많은 신문이 이를 기사화했다.

그로부터 1년 2개월이 흐른 지난 9월 14일, 워싱턴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새로 고용된 미국 측 남성 통역사도 나을 것이 없었다.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오역이 없어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녹화된 테이프를 자세히 돌려보면 부시 대통령의 말 중 제대로 통역된 게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 가지만 짚어보면 우선 한미관계는 ‘강하고도 매우 중요한’ 관계라는 첫 발언을 ‘강력한... 그런’ 관계라고 얼버무렸다. 잠시 후 “내가 대신 질문을 통역하겠다. 오늘 내 푸른 넥타이가 어떻게 그리 잘 어울리느냐는 질문이었다”고 한 부시 대통령의 조크는 전혀 통역 되지 못했다. 제일 심각한 것은 부시가 ‘미국이 한반도 안보에 변함없는 의지를 갖고 있다(committed)는 메시지’를 전했을 때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에 책임을 여전히 지고 있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는 오역이었다. 이어서 “전시작통권 이양 시기 문제를 잘 해결하라고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당부했다”는 말은 “미국 국방장관과 한국의 상대가 적절한 날짜를 잡기로 결정했다”고 통역 되었다. 전시작통권 관련 발언이 그렇게 느슨하게 전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저 기자가 노 대통령께도 질문을 했느냐?”는 부시의 질문을 통역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느냐”고 전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부시에게 “대답을 잘 하셨습니다”라고 했고, 한국 측 통역은 이를 받아 그대로 영어로 통역했다. 부시는 얼떨결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라고  까지 나갔다. 회견에 참석한 외국인 기자들이 이런 어색한 장면에 와-하고 웃어버렸으니 두 정상이 망신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다.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5개국’을 ‘평화적 동맹의 5개국’으로, ‘핵무장 국가의 위협 인식’을 ‘핵무기 확인’으로, ‘김정일이 핵무기 계획을 포기하면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을 ‘제(부시)가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엉뚱하게 옮겼다. 또 ‘6자 회담을 통해서 북한에 전달한 메시지’는 ‘6자 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둔갑했다.

작년 라이스 장관의 오역 후 우리 외교부에서 “미국의 통역은 영원한 숙제”라고 토로했지만, 문제는 미국 정부가 통역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데 있다. 미국 제1주의, 영어 제1주의에서 나온 무심함을 버리지 않는 한 오역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한국 출신 미국 시민권자를 찾지 못한다면 관례를 깨고 차라리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통역사로 근무하는 통역대학원 출신들을 불러다 통역을 시켜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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