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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영어 콤플렉스의 대물림을 끊으려면(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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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11-22 10:07 조회2,5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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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들고날 때는 문을 살살 닫읍시다.”“Please close the door carefully!”

경기도 일산에 있는 신촌초등학교의 조회 풍경이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 한마디가 끝날 때마다 원어민 교사가 부리나케 영어로 통역을 한다. 이 학교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도 ‘딩동댕’ 소리로 알리지 않는다. 아침활동 땐 “Good morning. Are you ready to start a new day?(안녕. 새 날을 맞을 준비가 됐니?)”, 3교시엔 “Are you hungry? Hang in there for just one more period.(배고프지? 1교시만 더 참자)”란 애교 넘치는 영어 멘트가 울려 퍼진다. 영어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요구 수준이 하도 높아서다. 일주일에 고작 한두 시간 영어 수업하는 걸론 그 요구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거다.

한국 학부모의 영어 교육열은 뉴스거리도 아니다. 한 해 10조원이 넘는 돈을 영어 사교육비로 쓰는 나라다. 외국 사람 만나면 입도 못 떼는 ‘영어 울렁증’을 자식 세대에겐 결코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소 팔고 논 팔아 아들딸 상경시켰던 과거 부모들과 똑 닮은 꼴이다. 나라 사이 문턱이 낮아져 글로벌 인재가 대세인 세상, 영어는 곧 기회이자 권력이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 같은 국내 큰 기업들이 내년부터 신입사원을 뽑을 때 영어 말하기 시험을 치르겠다는 판이다. 세상의 흐름이 이러하니 학부모들이 갈 길은 더 분명해졌다. 공교육이 안 되면 사교육, 일반고가 안 되면 외국어고, 국내가 안 되면 해외에서라도 지긋지긋한 영어 콤플렉스의 대물림을 끊겠다는 것이다.

수능만큼이나 화제인 올해 외고 입시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한다. 사교육 조장의 주범이라 밉상인데 입시 부정까지 저지르니 확 없애버리자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정부가 별별 회초리를 꺼내 들고 ‘외고 때리기’를 했어도 올해 경쟁률이 지난해보다 더 뛴 것만 봐도 그렇다. 일단 외고에만 들어가면 적어도 영어(및 기타 외국어) 공부 하나는 학교가 확실히 시킬 거란 믿음 때문이다.

그러니 외고 때려잡을 생각 접고 모든 학교를 ‘외고화’하는 것만이 우리 공교육이 살길이다. 다음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명박· 정동영 후보도 정답이 뭔지를 알긴 아는 모양이다. 그네들 공약대로라면 “사교육 안 시켜도 고등학교만 나오면 영어를 술술 말하게” 된단다. 누가 되든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스웨덴’ 소릴 듣게 생겼다. 온 국민이 영어가 된다는 바로 그 스웨덴 말이다.

하지만 말이 쉽다. 외고 수준은 고사하고 모든 학교에 외국인 선생님 한 명씩만 보내려도 뭉칫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 올해 초·중·고 3분의 1(3467곳)에 원어민 교사를 두느라 든 예산만 1100억원이다. 방법은? 이름만 그럴싸한 토목 공사들에 풀 돈부터 싹 줄이는 수밖에 없다. 돈도 돈이지만 원어민 교사 1만 명 이상을 구하는 것도 큰 일이다. 벌써부터 자질 시비가 이는 판이다. 모국을 배우고 싶어 하는 동포 2세들을 활용하는 게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노란 머리 파란 눈 외국인 찾다가 우수한 동포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는 영어마을 관계자 얘길 들은 적이 있다. 피부색·머리색이 아닌 실력 검증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 적어도 ‘학생들보다 처지지 않게’ 내국인 영어 교사들을 업그레이드하는 일, 말하기·글쓰기 위주로 학교 시험 체제를 바꿔 가는 것도 필수 과제다. 어렵겠다고? ‘고졸자 누구나 영어가 되는 나라’는 결코 거저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표 장사’ 때문에 시늉만 낼 요량은 버리기 바란다. 제대로만 한다면 국가 경쟁력 올리기에 이만 한 투자도 없다.

신예리 국제부 차장 2007.11.21 19:56 입력 / 2007.11.22 06:30 수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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