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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김상온 칼럼] 왜 誤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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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8-07-25 11:49 조회2,53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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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온 칼럼] 왜 誤譯? 
업데이트 : 2008.07.24 18:01:32//국민일보

 몇 년 전 TV 코미디 프로의 한 코너. 두 개그맨이 나와 영어를 말도 안 되게, 제멋대로 해석함으로써 영어 열풍에 주눅 든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들에 따르면 'merry(메리)'는 '개'고, 'said that(세드 댓)'은 '새 됐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한다는 소리가 "생뚱맞죠?"다. 한 개그맨이 왜 영어의 뜻이 이랬다저랬다 하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해석자 개그맨 왈,"그때그때 달라요. 영어는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요."

 '개그조'로 과장하자면 날카롭게 앞날을 꿰뚫어본 예언적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작금 일련의 번역이 '마음속에 있는 영어'를 토대로 한, 의도된 오역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면서 나라가 온통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미국 식품의약청이 게재한 관보 문구와 MBC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 내용, 그리고 국제사면위원회(AI)의 촛불집회 보고서를 둘러싸고 줄줄이 이어진 오역(誤譯) 소동.

원래 번역에는 오역이 없을 수 없다. 완벽한 번역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원문 기록자의 의중을 번역자가 100% 알 수 없는데다 1대 1로 대응하는 말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거기다 실수나 착각, 언어적 혹은 문화적 지식의 결여가 겹치면 오역은 다반사가 된다. 번역보다는 통역의 경우지만 자주 인용되는 고전적인 오역의 예. 'This is a minefield.' 원뜻은 물론 '이곳은 지뢰밭이다'다. 오역은 '이곳은 우리(내) 땅이다'. 지뢰밭을 안전한 우리 땅이라고 믿고 무작정 들어간다면? 치명적인 오역이다. 어쩌면 번역 작업은 지뢰밭으로 들어서는 거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그러다보니 오역투성이 출판물이 판친다. 외신 보도에서도 심심치 않게 오역이 발견된다. 가장 단순한 예로 고대 중국의 전(前)장군이나 후(後)장군도 아닐진대 해군 소장인 'Rear Admiral'이 '후(後)제독'이 되기도 하고,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중국 영화 '패왕별희(覇王別姬)'는 당초 '잘 있거라, 내 정부(情婦)여'로 번역되기도 했다. 전자는 사전도 찾아보지 않고 축역했기 때문이고, 후자는 영화 내용과 원제목을 모르는 상태에서 외신으로 타전된 영문 제목이 'Farewell My Concubine'이었던 탓이다.

물론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두 말할 나위도 없이 오역의 폐해는 크다. 고전을 비롯한 문학작품 오역은 수많은 독자를 바보로 만들고 국가간 협정문, 상업 계약서의 오역은 국익이나 거래자에게 심대한 손상을 입힌다.

다만 단순 실수나 무지, 불성실에 의한 오역은 개인적 사회적 노력에 따라 줄여나갈 수 있다. 특히 홀대를 넘어 번역에 '적대적'이라고까지 지적되는 사회적 학문적 풍토 바로잡기, 언어별로 해당 국가의 문화 전반까지 섭렵하는 동시에 우리글 구사 능력도 뛰어난 전문적인 번역가 양성하기, 실용 분야의 경우 분야별 번역사 인증 제도를 도입해 정부간 협상에도 인증된 번역사 참여시키기 등은 벌써부터 제시돼온 대책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번역한 측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일부러 오역을 하는 경우다. 'unless(∼이 아니라면)'를 'even though(∼일지라도)'로 번역했다고 밝히거나(한국 협상팀) 가정을 사실로 단정했다거나(PD수첩 제작진) 주관적 의미를 함축한 'indicated'를 '지적했다' '가리켰다'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나 되는 양 '밝혀졌다'고 옮겼다면(AI 한국지부) 일정한 목적을 지닌 오역이라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이런 오역은 어떻게 막아야 할까.

엄격히 말해 고의적인 오역은 조작이고 사기다. 어떤 식으로든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외에 방법이 없다. 생뚱맞은가? 억지스러운 해결책을 내놓게 하는 '입맛대로 오역'을 탓할밖에.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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