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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CIUTI 모스크바 출장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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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5-06-17 16:37 조회9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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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 동안 CIUTI 연례총회에 갈 때마다 망설였습니다. 2004년 아시아 첫 통역학교로 가입하고 2006년에는 직접 총회를 주최하기도 했지만 유럽 중심의 조직에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 갈 필요가 있을까---끝없이 회의했습니다.
유럽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통역학교는 거의 없어 내가 가도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단지 "참석하는데 의의"를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총회와 학회가 같이 열리면 논문 발표를 한답시고 학교에서 출장비를 받지만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에 이코노미 석을 탈 수 없어 사비로 백만원 이상을 더 들여 비지니스 석을 타고 가야 했습니다. 
2005년부터 시작해 11번 째로 가는 출장...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대한항공보다 싼 Aeroflot을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러시아가 배경인 영화 닥터지바고를 기내 영화로 본 후 내린 모스크바 공항의 이름은 아직 외우지를 못합니다. 말이 안 통하는 건 차치하고라도 거리의 간판에 쓰여있는 러시아어의 알파벳은 영어와 전연 달라 불안감을 자아냈습니다. 서방에서 알파벳을 수입해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 알파벳이 완전히 섞여버렸다는 우스개가 정말 같았습니다.
모스크바는 수교 전 1989년 경제교류를 위해 불안감 속에서 방문했고, 1991년에는 수교 기념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수행했지만 호텔-크렘린-모스크바 대학만 왕복하다가 돌아왔기에 관광도 할 기회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모스크바 시내 교통이 막힌다해서 공항에서 시내까지 차표를 사 급행열차로 진입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시내 지하철 역에서 택시를 타야했는데 내친 김에 지하철을 타는 바람에 그 유명한 모스크바지하철 구내에서 무거운 가방을 굴리며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힘 좀 뺐습니다. 이름없는 호텔이라 찾느라 모스코바이츠들한테 길을 묻고 거리를 헤매기도 했고요.
호텔에 들어와 보니 시내 중심가 였습니다. 200미터 남쪽에 그 유명한 볼쇼이 극장이 있고 바로 근처에 붉은 광장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만사를 제쳐두고 광장으로 달려가 크렘린과 바실리카 성당, 굼 백화점을 실컷 보고 강가를 거닐다가 볼쇼이 근처에서 1000루블짜리 시내 관광버스를 타고 약 5시간 동안 hop-on, hop-off를 하면서 모스크바를 감상했습니다. 에어컨이 없는 2층버스는 더웠습니다...               



 

 
 
 

곽중철 (2015-06-17 16:55:59) 
 
이튿날부터 모스크바 대에서 시작된 총회는 유례없이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노태우 대통령이 연설을 한 장소였고, 그 때 나는 김근식 현 중앙대교수의 러시아어 통역을 위해 갔던 곳이었습니다. 추운 겨울이어서였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어 방문한 레닌그라드(성페테르부르크)도 추웠고 아르미타쥬 박물관 관람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남아있지요. 그 때 크렘린 궁에서 통역하다 말고 뛰쳐나가 귀국해 버린 재미교포가 신연자였고 상대방 고르바초프 통역이 유학구 씨였지요.
모스크바 총회의 결론은 “제 1 세대 마틴-하널로레의 20년 통치가 끝나고 젊은 제 2 세대의 통치가 시작된 것”입니다. 독일-스위스 시대가 끝나고 이태리-벨기에의 시대가 시작된 겁니다.
우리뿐 아니라 일부 유럽국가 대표들도 동료들이 “거길 가서 뭐하나? 돈만 쓰고 얻는 게 없다”고 비아냥댄다고 했습니다.
덴마크 회원교는 통대가 없어져 탈퇴했고, 앞으로 그런 회원교(현 46개교)가 늘어날 전망이고 제1세대로 우리의 협회 가임을 도왔던 라이프치히 대 피터 슈미트 교수가 은퇴로 물러났고, 프랭크 피터즈 전 회장은 3년의 꼭두각시 회장을 그만 두고 평 회원이 되면서 대 중국 활동을 본격화할 의도를 표명했습니다.
중국은 베이징에서 제5의 회원교(국제문화대)가 가입하면서 5개교로 늘었고 더 가입할 전망인데 중국에서 통번역을 가르친다는 학부/대학원의 수는 206개라고 했습니다. 중국은 특히 상해외대가 정책적으로 협회(CIUTI)에 공을 들이고 있어 작년 상해총회를 계기로 채민종 교수가 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이번에 최다득표(30)로 부회장 3인 중 한 사람이 되었죠. 채 교수는 학교의 적극적 지원으로 협회의 모든 이사회와 학술대회, 총회 행사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리와 비슷한 거리에서 1년에 몇 번씩 유럽 출장을 가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부회장 2인은 러시아어 대표 가르봅스키(모스크바 국립대)와 스페인어 대표 로드리게스(마드리드 카미야 대)가 되고 아랍어 대표인 아와이스(베이루트)가 낙선했습니다. 다행히 신임 회장단은 모두 2006 서울총회에 참석한 이후 우리에게 호의적인 친한파임. 이번에도 우리를 믿고 은밀하게 협조를 요청해 나도 개혁파와 발을 맞췄습니다.
CIUTI에서도 국력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중국은 대국이라 유럽 등의 대부분 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거나 가르칠 예정이기 때문에 힘을 받을 수 밖에 없고. EU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비로 총회에 참석해도 “왜 한 사람만 가느냐?”는 말이 나오고, 2년마다 원장이 바뀌니 협회 홈피에 대표 이름과 사진 바꾸기도 바쁜 실정인데 이런 회원교는 없습니다. 다른 국제 조직에서도 우리나라는 1-2년 만에 대표가 바뀌기 때문에 협상력이 떨어짐. 각종 남북한 회담에서도 마찬가지. 협회에 참석한 지 11년째인 이번 총회에서 비로소 내게 "이사회 해산" 요청을 부탁할 정도로 텃새가 심합니다.

이번 개혁을 주도했던 폴 파월즈 신임 사무총장(앤트워프 루벤 대)은 인사말에서 “마틴, 당신은 지난 20년 동안 ‘내 방식대로 협회를 이끌었다’고 했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 방식대로 새로 시작한다. 쉽지 않겠지만 모든 걸 다시 시작하겠다”고 공언함. CIUTI FORUM(학술대회)도 매년 1월 제네바 유엔 건물에서 하던 것을 여러 나라에서 번갈아 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투표에서 결정적으로 분위기를 바꾼 것은 지난 1월 제네바에서 하널로레가 협회이름으로 사우디 정부로부터 공로상 명목의 250,000 유로를 받아 착복한 것이었는데 투표 직전 일부 대표가 이를 문제 삼고 따지자 하널로레도 쩔쩔맸습니다. ‘도덕성’ 때문에라도 힘이 점점 빠질 것인 바 국내외를 막론하고 義理가 중요한 것임.
 "같이 먹고 같이 살아야지요."
지도부 쇄신을 끝내고 대표들과 함께 다시 시내를 관광하면서 "그래도 오길 잘했다. 모스크바를 다시 보고 '세계 속에서의 처세'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살아 생전 모스크바에 다시 갈 일이 있을까요? 적어도 "꼭 다시 오고싶다"는 생각은 들지않게 하는 곳이 모스크바라는 것이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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