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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창작이 작곡이라면, 번역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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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1-18 17:24 조회5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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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이 작곡이라면, 번역은 연주"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
'김화영의 번역수첩' 펴내… 46년간 100권 넘는 佛문학 번역
 박해현  발행일 : 2015.12.07 / 문화 A23 면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번역할 것인가, 그것이 내게 더 중요한 일이었다. 국내에서 외국 문학 번역은 대부분 출판사가 책을 정해서 번역가에게 의뢰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나는 불문학자로서 내가 읽고 나서 번역해야 할 만한 것을 먼저 출판사에 제의해 우리말로 옮겨왔다."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가 '김화영의 번역수첩'(문학동네)를 냈다. 지난 46년 동안 100권이 넘는 프랑스 문학을 번역하면서 쓴 후기(後記) 중에서 대표적인 글만 가려 모았다. 김 교수는 알베르 카뮈 전집(20권)을 우리말로 완역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특히 그는 카뮈의 스승인 철학자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섬',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파드리크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등을 지난 70~80년대에 국내에 소개해 한국 문단의 시야를 넓혔다.

김 교수는 섬세한 작품 읽기에 바탕을 둔 문학평론과 시적(詩的) 감성이 빛나는 산문으로 한국어의 미학을 다듬어왔고,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자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스스로 쓴 저서보다 다섯 배도 더 많은 책을 번역해왔다"며 "어쩌면 나는 내 글을 쓰는 대신 번역을 하면서 나 자신의 글쓰기에 알리바이를 만들고 그 환상 뒤에 숨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늘 글쓰기에 매혹되면서 글쓰기를 두려워했다. 글의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번역은 누군가 이미 시작해놓은 것을 뒤에서 따라가면 된다. 그야말로 나의 가장 고통스러운 어떤 것을 대신해 준 사람의 노고에 편승하는 일이다. 번역의 과정이 어찌 즐겁기만 하겠는가. 더러는 도중에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가끔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면, 나 자신이 위대한 작곡가의 곡을 해석하는 일종의 연주자라고 자위해보기도 하고, 위대한 작품을 정독하는 가장 유별난 방식이 번역이라고 변명도 해본다."

김 교수는 프랑스에서 카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을 두 번 번역해 내놓았다. 조만간 그는 또 뜯어고쳐서 곧 새 판본을 낼 예정이다. 그는 "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백색의 문체'라고 부른 카뮈의 건조한 문체를 우리말로 더 살리고 싶었다"며 "요즘 출판사 젊은 편집자들의 언어 감각에서 많이 배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를 3년에 걸쳐 번역해 지난 2000년 내놓기도 했다. 플로베르는 소설 내용 못지않게 형식과 문체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인 작가였다. 김 교수는 "그는 문학의 예수였고, 그의 글쓰기는 십자가였다"고 했다. 김 교수의 번역도 거기에 걸맞게 꼼꼼하게 공을 들인 업적으로 꼽힌다.

김화영 교수의 삶은 두 차례의 번역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경북 영주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1955년 경기 중학에 입학했다. 처음 서울땅을 밟은 시골 소년은 서울말을 번역해야 했다. 그는 1969년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유학을 가선 외국어를 체득하는 통과제의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그는 "번역이란, 낯섦 속에 처한 사람이 타자(他者)와 만나는 것과 같다"고 지난 46년을 되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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