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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The Economist 2004년 9월 4일자 EU 통역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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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4-10-13 17:13 조회3,2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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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understand, up to a point

유럽연합 외교관의 말은 사전만으로는 해독 불가

 유럽연합(EU) 통역사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연설 중에 나오는 농담이다. 단순히 농담이 통역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통역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엉뚱한 타이밍에 농담이 통역되어 웃음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어떤 연사가 재미있는 일화로 연설을 시작한 후 고인이 된 동료를 추모했는데, 바로 그 때 앞의 일화가 통역되는 바람에 청중이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던 거다.

EU 회원국이 25개국으로 확대되면서 통역의 시간차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에스토니아 어를 곧장 포르투갈 어로 통역할 수 있는 통역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는 연설을 먼저 영어로 통역하고 다시 제3언어로 통역하는 릴레이 통역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두가 EU 공식언어 중 한 두 개를 할 수 있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실 모든 회의 참가자가 영어나 불어를 유창하게 한다 해도 오해는 넘칠 정도로 생겨 난다. 누군가의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경우 문화적 차이로 인해 실제 의미와는 판이하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국인이 아닌 사람 중 몇이나 “어느 정도는(up to a point)”이 “아니, 전혀(no, not in the slightest)”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반어법(아이러니, 그리고 문학적 암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문제의 심각성은 이제 널리 인식되어 다른 나라 사람들은 프랑스나 영국사람이 모국어로 말할 때 내포된 진짜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비공식 지침서까지 마련하였다. 최근 본지 기자가 두 가지 지침서를 입수했다. 모두 실제 지침서다.

하나는 영국 사람과 사업을 하려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외교관의 수사법에 대해 영국 외교관이 쓴 지침서다. 영어에 아주 유창한 네덜란드 사람에게 영국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한 지침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특히나 충격적이다. 그러나 유럽 사법재판소 사무실 벽에도 붙어 있는 이 지침서에 따라 판단하게 되면 영국 사람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네덜란드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간접적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영국인이 “알겠습니다(I hear what you say)”라고 말할 때 외국인 청중은 “그가 내 입장을 받아들였다”고 이해할 지 모른다고 지침서는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영국 사람의 말은 “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며 더 이상 그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비슷하게 영국인이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with the greatest respect)”라고 말하면 같은 영국인은 지침서가 정확히 번역하고 있는 대로 “나는 당신의 생각이 틀렸거나 당신이 바보라고 생각해”라는 냉랭한 비방이라는 뜻을 알 수 있다.

지침서는 또 영국인이 “그런데(by the way/incidentally)”라고 말하면 외국인들은 보통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이해하기 마련이지만 실은 “우리 논의의 제1의 목적은…”이라는 뜻임을 친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반면, “명심하겠다(I’ll bear it in mind)”라는 말은 “그 일에 대해선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겠다”고 “내가 틀렸다면 바로잡아 달라(Correct me if I’m wrong)”는 말은  “내 말이 맞으니 반박하지 말라”라는 뜻이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이해 부재
 프랑스 어의 진짜 의미에 대한 영국의 지침서는 그 목적이 더 구체적이다. 이 지침서는 외교관들이 법률 문서를 둘러싸고 입씨름을 벌이는 유럽연합 장관회의에 참석하는 외교관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런 방식의 연습이 얼마나 지루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가는 지침서 저자의 야유조 내용을 보면 아주 잘 알 수 있다.

영국과 기타 유럽 대륙 국가들의 명료한 화법에 대한 생각 역시 분명히 다르다.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대로, 한 프랑스인이 문자 그대로 번역해 “명확히 하겠다(I will be clear)”고 말한다면 실은 “막 나가겠다(I will be rude)”는 뜻이다. 또 영국인들은 프랑스 식의 과장된 제스처를 경멸한다. “우리 유럽은 눈에 띌 필요가 있다(We need European visibility)”라는 프랑스어는 “EU는 국제무대에서 몇가지 무의미하고 귀찮으며, 잘해도 본전인 보여주기 식 쇼에 몰두해야 한다”로 해석된다. 또 문자 그대로 번역해 “우리는 실용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We must find a pragmatic solution)”는 프랑스어가 “경고: 나는 매우 복잡하고 이론적이고 형식주의적이며 실행이 불가능한 방법을 제안하려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국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은 상호 수사법 상의 미묘한 차이를 잘 아는 오랜 논쟁 상대이다. 따라서 서로 덜 친숙한 나라 사람들이 만날 때 오해가 일어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이 문제는 단어의 의미보다는 청중에게 미치는 예기치 못한 영향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지난 12월에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를 예로 들어보자. 의장을 맡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유럽연합 헌법 건의안을 둘러싼 민감한 논쟁을 마무리하려 애쓰고 있었다.

오찬을 위해 모인 각국 정상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축구와 여자”에 대해 논의하자고 하면서, 그러니 네 번이나 결혼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토론을 이끌어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정상들은 깜짝 놀랐다. 일부 유럽 외교관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틀림없이 고의로 슈뢰더 총리의 심기를 건드리려 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기자 회견에서 그의 의장 자격이 문제시되자  자신이 회의 하나 제대로 주재할 능력이 없었다면 결코 억만 장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리고 실제로 총리를 두둔하는 쪽은 이탈리아 재계에서는 어려운 회의를 앞두고 전날 밤 있었던 축구 경기를 얘기하거나 심지어 여자 문제로 동료를 놀리며 농담조의 느긋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 매우 자연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유럽 정치 지도자와 관료들이 영어를 할 의향과 능력이 모두 있다해도 이러한 오해를 완전히 불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유럽연합은 “유럽어”의 출현이라는 한가지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바로 일종의 형식적이며 관료적인 영어다. 

“가중다수결투표제”, “공동체 방식”, “집행위원회의 독자적 제안권” 같은 말은 통역된 언어로든 원래 언어로든 일반 유럽 시민들에게는 완전히 무의미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외교관들에게는 그 뜻이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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