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통역의 수준, 외교의 수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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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5-03-19 15:16 조회3,31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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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통역의 수준, 외교의 수준
정병선·모스크바특파원 bschung@chosun.com
입력 : 2005.03.18 18:16 08'
▲ 정병선
모스크바 특파원
정상회담은 물론 국제회의나 세미나에서 통역(通譯)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역의 역할에 따라 회담은 부드럽게 흘러가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통역은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1990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한국·러시아어 통역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러시아(당시 소련) 방문 때는 정상회담 통역이 중도 하차했고,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 러시아 방문 때도 통역이 완벽하지 못했다. 특히 모스크바대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수여식 때 러시아측 통역은 축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
지난 14일 크렘린궁 근처 러시아 전략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화영(李華泳), 이광재(李光宰) 등 열린우리당 ‘의정연구센터’(의정연) 소속 의원 4명과 산자부, 석유공사, 가스공사 간부 등 우리 정부대표단이 러시아 에너지 관계자들과 세미나를 하는 자리였다. 양국 대표단 소개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측 석유공사 대표는 가스공사로 둔갑해 소개됐고, 러시아 대표단 소개 때는 통역이 수차례 이름을 되묻는 등 시작부터 분위기가 경색됐다. 이화영 의원의 모두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통역은 세 차례나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결례를 범했다. 러시아측 대표단 사이에도 통역의 의사 전달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는지 수근거림이 시작됐다.
세미나 참석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우리측에서는 현 정권 실세로 분류되는 이광재 의원이 자리했고,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부사장과 국장, 러시아측에서는 경제개발통상부 국장, 에너지 연구소장, 국영석유사 로스네프티 간부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2명씩이나 되는 통역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모두 우리측에서 나선 통역이었다. 북핵문제를 논의할 때는 ‘핵(核)’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채 통역됐고, ‘비핵화’라는 단어는 러시아 참석자들 중 일부 한국학 연구학자들이 한국말로 통역에게 귀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회담 중 수차례 ‘포괄적(包括的)’이라는 말이 나왔는데도 한번도 제대로 통역되지 못했다. 말의 뉘앙스 전달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세미나가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통역이 세미나를 망쳤다고 하면 곤란할 일이다. 더구나 이날 대표단은 세미나 직전에 러시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한·러 의원친선협회 관계자들과도 면담을 한 터였다.
이날 우리 대표단의 일정 주선과 세미나 준비는 주(駐)러시아대사관이 담당했다. 통역문제도 당연히 대사관측이 문제가 없는지 사전에 확인했어야 했다.
▶▶
러시아전략문제연구소는 크렘린궁의 정책 입안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에너지 수급 현황과 정책을 설명해야 하는데 제대로 의사 전달이 되지 않았다면 세미나에 누가 참석했는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러시아를 찾은 국회의원들도 러시아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무산시킨 경우가 돼버렸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방문하면 뭐하겠는가. 변변한 통역 하나 배치하지 못해 서로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본 통역문제는 한·러 양국이 수교한 지 15년이 지난 현재 우리 외교의 자화상(自畵像)이었다.
(정병선·모스크바특파원 bschung@chosun.com)
곽중철: 왜 유독 러시아 어 통역에서 말썽이 많이 날까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러시아(당시 소련) 방문 때 정상회담 통역이 중도 하차하는 과정은
제가 현장에 있었기에 이미 여러차례 설명을 드린 바 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난 해 9월 노무현 대통령 러시아 방문 때도 통역이 완벽하지 못했고,
특히 모스크바 대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수여식 때 러시아측 통역은 축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는데 왠일일까요?
외국에서의 오역에도 러시아어 관련 사례가 유난히 많습니다.
모스크바의 날씨가 너무 추워 관계자들이 통역에는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해서일까요?
아니면 러시아 어가 너무 어려운 말이기 때문일까요?
해답은 아무래도 아직 한러 관계를 담당하는 양국 관계자들의 통역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하고,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인력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 있을 겁니다.
지난 14일에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4명과 우리 정부 대표단이 러시아 에너지 관계자들과 만날 일정이 잡히고 우리 대표단의 일정 주선과 세미나 준비는 주(駐)러시아 한국 대사관이 담당했다면 서울에 있는 러시아 어 전문 통역사를 초빙했어야합니다. 러시아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러시아 어는 잘 할 지 몰라도 고급 통역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에는 각 대학 러시아어과에 교수분들이 많고, 특히 외대 통대 졸업생 중에는 전문 통역사가 많습니다. 러시아 방문을 위한 전체 예산에 비하면 통역사 1-2명을 수행시키는 비용은 결코 크지 않습니다. 몇 백만원 아끼려다가, 서울에서 통역사를 수행시키기가 귀찮고 번거로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 일어난 국익 상의 손해는 훨씬 더 큰거지요.
이번 일이 외교부에서 러시아어 통역에 대한 대비를 더 철저히 하는 마지막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내에 외교 통역을 잘 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히 있는데, 성의 부족으로 이런 창피한 일이 일어난다면 갑갑하지 않습니까?
정병선·모스크바특파원 bschung@chosun.com
입력 : 2005.03.18 18:16 08'
▲ 정병선
모스크바 특파원
정상회담은 물론 국제회의나 세미나에서 통역(通譯)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통역의 역할에 따라 회담은 부드럽게 흘러가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통역은 ‘언어의 마술사’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 1990년 수교 이후 지금까지 한국·러시아어 통역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러시아(당시 소련) 방문 때는 정상회담 통역이 중도 하차했고, 지난해 9월 노무현 대통령 러시아 방문 때도 통역이 완벽하지 못했다. 특히 모스크바대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수여식 때 러시아측 통역은 축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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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크렘린궁 근처 러시아 전략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화영(李華泳), 이광재(李光宰) 등 열린우리당 ‘의정연구센터’(의정연) 소속 의원 4명과 산자부, 석유공사, 가스공사 간부 등 우리 정부대표단이 러시아 에너지 관계자들과 세미나를 하는 자리였다. 양국 대표단 소개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측 석유공사 대표는 가스공사로 둔갑해 소개됐고, 러시아 대표단 소개 때는 통역이 수차례 이름을 되묻는 등 시작부터 분위기가 경색됐다. 이화영 의원의 모두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통역은 세 차례나 “다시 말해달라”고 하는 결례를 범했다. 러시아측 대표단 사이에도 통역의 의사 전달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는지 수근거림이 시작됐다.
세미나 참석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우리측에서는 현 정권 실세로 분류되는 이광재 의원이 자리했고, 석유공사와 가스공사의 부사장과 국장, 러시아측에서는 경제개발통상부 국장, 에너지 연구소장, 국영석유사 로스네프티 간부 등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2명씩이나 되는 통역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모두 우리측에서 나선 통역이었다. 북핵문제를 논의할 때는 ‘핵(核)’이라는 용어가 사라진 채 통역됐고, ‘비핵화’라는 단어는 러시아 참석자들 중 일부 한국학 연구학자들이 한국말로 통역에게 귀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회담 중 수차례 ‘포괄적(包括的)’이라는 말이 나왔는데도 한번도 제대로 통역되지 못했다. 말의 뉘앙스 전달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세미나가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통역이 세미나를 망쳤다고 하면 곤란할 일이다. 더구나 이날 대표단은 세미나 직전에 러시아 하원 국제관계위원장, 한·러 의원친선협회 관계자들과도 면담을 한 터였다.
이날 우리 대표단의 일정 주선과 세미나 준비는 주(駐)러시아대사관이 담당했다. 통역문제도 당연히 대사관측이 문제가 없는지 사전에 확인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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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전략문제연구소는 크렘린궁의 정책 입안에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에너지 수급 현황과 정책을 설명해야 하는데 제대로 의사 전달이 되지 않았다면 세미나에 누가 참석했는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러시아를 찾은 국회의원들도 러시아의 에너지정책 방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무산시킨 경우가 돼버렸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들이 방문하면 뭐하겠는가. 변변한 통역 하나 배치하지 못해 서로 의사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본 통역문제는 한·러 양국이 수교한 지 15년이 지난 현재 우리 외교의 자화상(自畵像)이었다.
(정병선·모스크바특파원 bschung@chosun.com)
곽중철: 왜 유독 러시아 어 통역에서 말썽이 많이 날까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러시아(당시 소련) 방문 때 정상회담 통역이 중도 하차하는 과정은
제가 현장에 있었기에 이미 여러차례 설명을 드린 바 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난 해 9월 노무현 대통령 러시아 방문 때도 통역이 완벽하지 못했고,
특히 모스크바 대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 수여식 때 러시아측 통역은 축하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는데 왠일일까요?
외국에서의 오역에도 러시아어 관련 사례가 유난히 많습니다.
모스크바의 날씨가 너무 추워 관계자들이 통역에는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해서일까요?
아니면 러시아 어가 너무 어려운 말이기 때문일까요?
해답은 아무래도 아직 한러 관계를 담당하는 양국 관계자들의 통역에 대한 조예가 깊지 못하고,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인력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지 못한 데 있을 겁니다.
지난 14일에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4명과 우리 정부 대표단이 러시아 에너지 관계자들과 만날 일정이 잡히고 우리 대표단의 일정 주선과 세미나 준비는 주(駐)러시아 한국 대사관이 담당했다면 서울에 있는 러시아 어 전문 통역사를 초빙했어야합니다. 러시아에 있는 우리 동포들은 러시아 어는 잘 할 지 몰라도 고급 통역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에는 각 대학 러시아어과에 교수분들이 많고, 특히 외대 통대 졸업생 중에는 전문 통역사가 많습니다. 러시아 방문을 위한 전체 예산에 비하면 통역사 1-2명을 수행시키는 비용은 결코 크지 않습니다. 몇 백만원 아끼려다가, 서울에서 통역사를 수행시키기가 귀찮고 번거로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 일어난 국익 상의 손해는 훨씬 더 큰거지요.
이번 일이 외교부에서 러시아어 통역에 대한 대비를 더 철저히 하는 마지막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내에 외교 통역을 잘 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히 있는데, 성의 부족으로 이런 창피한 일이 일어난다면 갑갑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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