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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펠레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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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2-07-12 00:00 조회4,0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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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서 한국 팀이 4강전을 치를 즈음
mbc 스포츠 제작국에서 통역 센터로 전화가 왔습니다.
준결승전이 있는 날 낮에
 펠레를 초청해 생방송으로 차범근 감독(mbc 축구해설위원)과
 대담을 시킬테니 통역을 해달라는 겁니다.
센터 직원의 전갈을 받은 나는 한가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차감독이 영어를 못한다면 그의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해야하는데
 그 통역은 펠레의 귀에 이어폰으로만 전달되면서 방송은 되지 않아야하고 ,
펠레의 영어를 한국어로 통역하는 것은 방송이 되어야하므로
 통역 두 사람이 필요함을 담당자들이 알고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통역이란 워낙 전문 분야라 사회 전반의 이해와 인식이
 아직 너무 낮은 것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외국어를 한다는 방송인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그들이 문제점을 깨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사람을 더 데리고 내가 직접 나가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당시 월드컵 미디어 센터(COEX)에서 나와 함께
 통역 일을 하고 있던 작년 졸업생을 데리고 가기로 결정하고
 방송국에서 자료를 받아 번역도 시키는 등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통역이 그렇지만 특히 방송 통역도
 각본대로 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방송국에 가보니 차 감독이 먼저 나와
 앵커가 할 말과 내가 축구 전문가로서 할 말을 구분해달라는
 일리있는 요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각본이 흐트러지는 서곡이었지요.
같이 간 제자 여학생은 스튜디오에서 별도로 한영 통역을 시켜놓고
 나는 여러번 들어간 적이 있는 주 조정실(MCR)의 구석대기 통역실로
 들어갔습니다.

방송 통역은 일반 통역보다 더 떨리는 임무지만 세월이 흐르니
less unpleasant 함을 느꼈습니다. YTN 국제부장으로 5년간 방송을 한 경력도
 도움이 되었겠지요.
통역을 시작해보니 펠레는 영어가 능통치 못했습니다. 브라질 사람으로
 포르투갈 어가 모국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볼을 차는 재주와 말하는 재주가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차감독과 앵커가 이런 답이 나왔으면 ... 하고 던지는 질문에 대한 펠레의 답변은 시원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말(영어)이 안되니 생각에 따라 말이 나오지 않는 거지요. 모국어라면 가능했을 수도 있지만... 약 5분 쯤 지난 후 나는 시청자를 위해 내용을 추가해 통역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펠레가 한 마디하면 그가 원하는 바 내용을 덧붙여 통역했습니다. 방송 관계자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좋아들 하는 것 같았습니다.

mbc 뉴스데스크 옆 스튜디어에서 처음 방송 통역을 해보고 흥분해있는 제자를 데리고 나오면서 나는 또 한 건의 방송 통역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 생방송이니 본 사람도 없겠지 했는데 왠걸 한독전이 있기 전 저녁 방송에 내 통역을 마구 틀어댄 모양이라 다음 날 학교에 왔더니 모두들 봤다고 야단입니다. (옛날 같으면 사투리 억양이 밌었다는 등의 비판도 기다렸겠지만 이젠 그런 데도 관심이 시들합니다.) 아마도 한국이 준결승에서 독일을 이길 수 있다는 펠레의 예상 발언을 재방송 했겠지요.

 [독일 전차군단] 등의 수식어도 내가 임의로 붙여 통역했는데...
만약 펠레가 말한 영어 그대로만 통역했다면 통역 잘 했다는 말도 듣지 못했을 거고, 재방송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 것이 방송 통역의 어려움이자 묘미라고나 할까요?

사족: 그 날 만나 본 차감독은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자신이 해설을 맡아 mbc의 월드컵 시청율이 최고로 올라갔다고 mbc에서 전속 해설료를 올려주기를 바라는 눈치였고, 특히 자신의 판박이 차두리가 TV에 나오기 때문이기도 했겠지요. 아들이 없는 나로서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놈이 자신과 같은 축구 선수로 월드컵 운동장을 누비는 것을 보면 그 아버지는 얼마나 신날까 유추하면서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차범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방송 직전 통성명을 하고 차 감독에게 오늘 독일전에 차두리 나옵니까?하고 슬쩍 물었더니, 아니예요, 두리는 조커에요, 조커라고 답하더군요. 그 날 밤
 차두리는 오른쪽 공격수로 선발되었고, 아버지의 해설 대상이 되었습니다.

월드컵이 끝난 며칠 후 차 감독은 모 일간지 해설 기사에서 우리 부자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내게 해준 히딩크 감독에게 진정 감사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의 해설기사는 자신이 아닌 차두리 엄마 오은미 씨가 대신 쓴다던가요? 어쨌든 부러운 가정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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