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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월드컵 통역 --- 지난 6월은 행복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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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1-30 00:00 조회3,8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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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화두처럼
 이 해가 가고 나면 우리는 그 해 유월은 행복했네라고
 회상할 지 모릅니다.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6월입니다.
2001년 9월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조직위의
 통역자문위원으로 위촉받은 이후 여러가지 준비 작업을 했지만
 금년 6월이 그처럼 행복할 것이란 자신은 없었습니다.
통역서비스도 문제지만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
 대회 성공 여부에 큰 관건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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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시작된 통역 단기 고용 인력 배치를 위해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통역대학원 중심으로 인력을 배치한다는 원칙 하에 졸업생, 휴학생, 재학생을 어떤 비율로 할 것이며
 누구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그 보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조직위 미디어 지원국과 줄다리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졸업생을 쓰려니 하루 15만원이란 겉보기에 낮은 보수가 맘에 걸렸고
 휴학생을 쓰려니 재학생 눈치가 보이고,
재학생을 쓰려니 6월의 1학기말 학사 일정이 신경 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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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대 통역센터 3층 소장실에 앉아 전화질을 참 많이 했습니다.
졸업생 중 꼭 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마지 못해 해볼까 하는 사람들에게는
 월드컵은 우리 생애에 다시는 없다고 했습니다.
재학생 중에는 약간의 관심을 보이는 사람보다는
 날 찾아와 수업에 빠지더라도 꼭 월드컵에 참여하고 싶다는
 학생들을 우선 배치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험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Nothing ventured, nothing g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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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할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국제미디어센터,
서울의 상암 경기장, 인천과 수원 경기장 등 4개 근무지를 놓고
 인력 배치를 위한 모자이크를 시작했습니다.
미디어 센터에는 매일 오전 11시의 일일 언론 브리핑 동시통역을 위해
 금년 졸업한 회의 통역반 출신 3명을 뽑았고,
통역이 아닌 언론 배포용 참고 기사를 작성할
 리포터 직에는 번역을 잘하는 작년 졸업생 4명을 놓고...
상암 경기장에는 나와 YTN에서 근무했던 15기 남자 졸업생을
 수석 리포터로 휴학생 1명과 재학생 1명을,
인천 경기장엔 부산 출신의 졸업생 밑으로 2학년 회의 통역반에 재학중인
 여학생 4명과 번역반 남학생 2명을 배치했습니다.
수원 경기장엔 수원 근처에 사는 남자 졸업생 아래에
2학년 여자 재학생 4명을 배치했더니 여자 졸업생 2명이
 다른 경로로 채용되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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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얼마나 일을 해 줄지, 어떤 평가를 받을 지,
일이 끝난 후 얼마나 만족할 지...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행사의 전체 분위기도 어떻게 흘러갈 지 몰라
 운명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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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부터 시작된 미디어 브리핑의 동시통역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조직위 직원으로 채용된
 두 졸업생, 그리고 금년 졸업생 3명과 함께
 통역을 준비했는데
 몇 달 안 되는 통역 준비로 몇 십년의 역사를 쌓은
FIFA의 복잡한 업무를 완벽히 통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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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파 간부들의 영어 발음은 각양각색으로
 특히 강한 불어 액센트와 귀찮다는 듯 내뱉는
 빠른 말이 어려움을 더 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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