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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영어공부, 토익문제집을 버려라---이윤재·번역가(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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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9-11-12 16:16 조회4,0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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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이른 아침,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있다. 토익학원이다.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을 5년 다닌다고 해서 '대오족(大五族)'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토익성적에 목숨을 건다고 해서 '토폐인(토익폐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미국 ETS가 만든 시험이라는 브랜드 가치 때문에 한국 토익시장이 엄청 늘었으나 영어실력은 늘지 않았다. 토익점수가 곧 영어능력을 말해 준다는 것은 근거 없는 통념이다.

영어기량을 향상시키는 것과 영어 시험점수를 향상시키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후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후자는 전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T자로 시작된 문제집들은 문제유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지는 모르나 영어실력 자체를 향상시켜 주지는 않는다. 4지선다형 문항으로 된 시험문제집을 공부하는 것은 영어실력을 비능률적으로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원래 4지선다형 시험이라는 것은 평가를 위한 것이지 학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문제풀이 위주로 공부하는 것은 부피와 질량을 재는 것이 아니라 가로나 세로나 높이만을 재는 것이다.

 '활을 쏠 때 구름을 보고 쏜다. 구름을 맞히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지상의 먼 목표물에 도달하기 위해서이다.' 손자병법에 있는 말이다. 문법과 어법 체계를 잡아두는 것이 목표지점을 앞에 두고 돌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이것이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묘책이다. 진도를 나가지 말고 역진하여 바닥다지기를 해야 한다. 재(再)초기화절차를 밟는 것이 오히려 생장을 촉진시킨다. Do nothing, say nothing, be nothing.(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말하지 말며, 아무것도 되지 말라.) 영어가 몸에 밴 이승만 대통령이 1958년 6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을 질책하며 한 말이다. 미국 작가 허버드(Hubbard)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감옥에서 독학했다. 감옥에는 원어민도, 동영상도, 녹음기도 없다. 있는 것은 책뿐이다. 그는 회화나 토익을 공부하지 않았다. 그는 영어의 원리와 개념을 파악하기 위하여 우선적으로 문법책을 독파했다.

토폐인들이여! 토익문제집을 던져 버리세요! 영어공부라는 핸들을 잡고 뒤로 확 후진하세요.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 교과서·참고서·문법서 등등 영어책이라고 생긴 것은 다 찾아내세요. 방 한쪽에 제일 쉬운 중학교 1학년 교과서와 왕초보 기초영문법부터 시작하여 난이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배열하세요. 대장정의 준비가 끝난 셈입니다. 장도에 오르세요. 파죽지세로 3개월이면 정상(마지막 책)에 깃발을 꽂을 것입니다. 기초를 완전히 다진 다음 학원에 다닐 비용으로 토익문제집을 여러 권 사세요. 학원에 왕래하느라 길바닥에 까는 그 시간에 토익문제집을 풀어 보세요. 틀림없이 성공할 것입니다!  20091111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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