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모국어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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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9-10-10 10:11 조회3,52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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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마 고이치라는 일본 시인이 쓴 시 '모국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모국어(母國語)라는 낱말 속에는/ 엄마와 나라와 언어가 있다.' 이 '엄마'와 '나라'와 '언어'로부터 떨어져 외국에 살고 있을 때 그는 시를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20년의 프랑스 망명 생활 끝에 고향 프라하로 돌아갔을 때 그를 가장 편하게 해 준 것은 1급 호텔의 룸서비스가 아니라 벨보이의 체코어 쌍욕이었다고 했다.
▶모국어로부터 떨어져 살면 누구나 외롭고 힘들 테지만,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동포들만큼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또 있을까. 이들은 소련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일대에 뿌리내리고 살다 1937년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밤차에 실려 8000㎞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내동댕이쳐졌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은 극동 한국인 사회가 일본군 첩보 조직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기본적으론 한국인 중국인 등 황색 인종 이민자들에 대한 소련 전체주의 사회의 학대와 탄압이었다.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여행할 수도 없었고 국가기관에 취업할 수도 없었다. 군인이 될 수도 없었고 은행 대출도 못 받았다. 그러나 가장 가혹한 시련은 1938년 한국어를 소련 소수민족 언어에서 제외해 한국어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시킨 것이었다. 모든 한인학교를 폐쇄해 2세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의 길마저 막아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특유의 생명력과 근면함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키며 삶의 터전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그런 한편으로 한글신문 '레닌기치'를 발행하고 고려극장을 운영하면서 모국어의 맥을 힘겹게 이어갔다. 563돌 한글날을 맞아 엊그제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의 고려극장에서 한국 문인들과 고려인 작가들이 함께 연 '책, 함께 읽자' 낭독회는 눈물의 잔치가 됐다고 한다.
▶낯선 이국 땅에서 살아남기조차 힘겨웠을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모국어 작품을 큰 소리로 읽으며 느꼈을 감회가 얼마나 컸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고려인 작가 정장길씨는 강제 이주의 악몽을 그린 소설을 모국어로 써 직접 읽기도 했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국어문제 최고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네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 말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동포들일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입력 : 2009.10.09 22:15
곽중철 (2009-11-03 14:29:58)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16] 영어는 공용어 아닌 국제어
이광연 YTN 아나운서
입력 : 2009.11.03 14:17 / 수정 : 2009.11.03 14:19
조선닷컴은 지난달 10회에 걸친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연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외국어 오남용 실태를 파헤쳤다. 한글날이 있는 10월에는 그 해독(解毒)을 위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제안과 제언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얼마 전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말이라면 고집스럽게 애정을 갖고 있는 터라 한글을 '수출'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관련 리포트가 나간 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비록 소수 민족이지만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해 주었고 또 그 자체로 한글의 '홍보' 역할을 아주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글을 수출한 나라인 대한민국은 어떨까? 영어몰입 교육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요즘엔 지자체마다 서로 영어 수식어를 달아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퉈 별명을 짓고 있다. "it's 00" "colorful 00" "fast 00" "big 00" 일일히 늘어놓기도 숨이 찰 정도다.
지역 이름에 영어를 붙인다고 '글로벌화'된 도시가 되는걸까?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도 못 한다는 지적과 함께 실제로 무슨 뜻이냐며 반문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한다. 내 고장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억지춘향에 가까운 표어들이 난무하고 있는것이다.
거창하게 지자체 표어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외국어를 남발하고 있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름 하나 말 한마디 영어로 바꿔 세계화하겠다는 생각이 어설프다. 외국어를 사용해야 세계화에 나서는 것이고 우리말을 활용하면 왕따라도 된다는 것인가?
외국어로 포장해야 남 보기 그럴 듯 하고 있어 보인다는 심리가 작용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대화할 때, 영어 몇자, 한자 몇자 섞어가며 대화해야 뭔가 아는 척 했다는 우월주의와 비슷할까? 특히 로드맵, 클러스터, 허브, 비전000, 그랜드 바겐 등등 높은 사람들 머리에서 나온 외래어는 무수히 많다. 이런 단어들은 한글화가 어렵다는 설명이지만 눈씻고 찾아보면 충분히 대체할 말이 있다.
외국어, 특히 영어에 몰입하고 의존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영어는 국제어는 될 수 있어도 공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써야 세련돼 보인다는 착각도 바로 잡아야한다. 김치가 '김치'기 때문에 김치의 특성과 맛이 전달된 것이지 '000샐러드'나 '캐비지 000'였다면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외국어 사용의 필요성이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필요한 사람, 일본어가 필요한 사람, 중국어가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외국어는 필요에 의해 배우면 되는 것이지 몰입해서 억지로 배워둬야할 숙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광연은 2001년 YTN 아나운서로 입사해 뉴스 앵커로 활동 중이다. 2006년 한글학회에서 ‘우리말글 지킴이’로 선정됐고, 현재 한글문화연대 대외협력위원을 맡고 있다.)
▶모국어로부터 떨어져 살면 누구나 외롭고 힘들 테지만,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동포들만큼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또 있을까. 이들은 소련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일대에 뿌리내리고 살다 1937년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른 채 밤차에 실려 8000㎞ 떨어진 중앙아시아에 내동댕이쳐졌다.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은 극동 한국인 사회가 일본군 첩보 조직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기본적으론 한국인 중국인 등 황색 인종 이민자들에 대한 소련 전체주의 사회의 학대와 탄압이었다.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를 벗어나 여행할 수도 없었고 국가기관에 취업할 수도 없었다. 군인이 될 수도 없었고 은행 대출도 못 받았다. 그러나 가장 가혹한 시련은 1938년 한국어를 소련 소수민족 언어에서 제외해 한국어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시킨 것이었다. 모든 한인학교를 폐쇄해 2세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의 길마저 막아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특유의 생명력과 근면함으로 중앙아시아에서 벼농사를 성공시키며 삶의 터전을 일구는 데 성공했다. 그런 한편으로 한글신문 '레닌기치'를 발행하고 고려극장을 운영하면서 모국어의 맥을 힘겹게 이어갔다. 563돌 한글날을 맞아 엊그제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의 고려극장에서 한국 문인들과 고려인 작가들이 함께 연 '책, 함께 읽자' 낭독회는 눈물의 잔치가 됐다고 한다.
▶낯선 이국 땅에서 살아남기조차 힘겨웠을 고려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모국어 작품을 큰 소리로 읽으며 느꼈을 감회가 얼마나 컸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고려인 작가 정장길씨는 강제 이주의 악몽을 그린 소설을 모국어로 써 직접 읽기도 했다.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국어문제 최고 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이 세상에서 자기네 언어를 잃어버린 민족에게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 말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동포들일 것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
입력 : 2009.10.09 22:15
곽중철 (2009-11-03 14:29:58)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16] 영어는 공용어 아닌 국제어
이광연 YTN 아나운서
입력 : 2009.11.03 14:17 / 수정 : 2009.11.03 14:19
조선닷컴은 지난달 10회에 걸친 ‘외국어에 중독된 한국’ 연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외국어 오남용 실태를 파헤쳤다. 한글날이 있는 10월에는 그 해독(解毒)을 위한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다양한 제안과 제언을 들어본다./편집자 주
얼마 전 인도네시아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말이라면 고집스럽게 애정을 갖고 있는 터라 한글을 '수출'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관련 리포트가 나간 후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비록 소수 민족이지만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해 주었고 또 그 자체로 한글의 '홍보' 역할을 아주 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글을 수출한 나라인 대한민국은 어떨까? 영어몰입 교육을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요즘엔 지자체마다 서로 영어 수식어를 달아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퉈 별명을 짓고 있다. "it's 00" "colorful 00" "fast 00" "big 00" 일일히 늘어놓기도 숨이 찰 정도다.
지역 이름에 영어를 붙인다고 '글로벌화'된 도시가 되는걸까?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도 못 한다는 지적과 함께 실제로 무슨 뜻이냐며 반문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한다. 내 고장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억지춘향에 가까운 표어들이 난무하고 있는것이다.
거창하게 지자체 표어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외국어를 남발하고 있는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이름 하나 말 한마디 영어로 바꿔 세계화하겠다는 생각이 어설프다. 외국어를 사용해야 세계화에 나서는 것이고 우리말을 활용하면 왕따라도 된다는 것인가?
외국어로 포장해야 남 보기 그럴 듯 하고 있어 보인다는 심리가 작용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대화할 때, 영어 몇자, 한자 몇자 섞어가며 대화해야 뭔가 아는 척 했다는 우월주의와 비슷할까? 특히 로드맵, 클러스터, 허브, 비전000, 그랜드 바겐 등등 높은 사람들 머리에서 나온 외래어는 무수히 많다. 이런 단어들은 한글화가 어렵다는 설명이지만 눈씻고 찾아보면 충분히 대체할 말이 있다.
외국어, 특히 영어에 몰입하고 의존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영어는 국제어는 될 수 있어도 공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써야 세련돼 보인다는 착각도 바로 잡아야한다. 김치가 '김치'기 때문에 김치의 특성과 맛이 전달된 것이지 '000샐러드'나 '캐비지 000'였다면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외국어 사용의 필요성이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필요한 사람, 일본어가 필요한 사람, 중국어가 필요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외국어는 필요에 의해 배우면 되는 것이지 몰입해서 억지로 배워둬야할 숙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광연은 2001년 YTN 아나운서로 입사해 뉴스 앵커로 활동 중이다. 2006년 한글학회에서 ‘우리말글 지킴이’로 선정됐고, 현재 한글문화연대 대외협력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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