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 언어로 말하는 사나이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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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8-12-04 08:46 조회3,4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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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개 언어로 말하는 사나이 동아일보 2009.12.04 <사람 속으로>
27개 회원국의 27개 공식 언어가 통용되는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에서 근무하는 동시통역사와 번역가들은 3000명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이와니스 이코노무(44) 씨는 전설로 통한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모두 32개. EU집행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다언어 사용자다. 모국어인 그리스어 외에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14개 EU 회원국 언어, 중국어 아랍어 같은 EU 바깥지역의 언어는 물론 라틴어와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같은 고어도 할 줄 안다.
어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고향 그리스 크레타섬의 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뜻 모를 말들이 호기심을 부추겼다.
중국어가 하고 싶었던 18살 때는 무작정 서툰 중국어로 '나는 그리스인이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두 문장과 함께 연락처를 적어 중국인 학생 기숙사에 붙여놓기도 했다.
아들의 남다른 어학 재능을 눈여겨본 부모는 평범한 가정형편에서도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이 "터키어가 하고 싶다"고 졸랐을 때 불편한 그리스-터키 관계 때문에 마땅한 어학원이 없는 현실에서도 터키인 난민들까지 찾아다니며 아들의 어학공부를 부탁했다.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지금 배우는 언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며 "그 언어사용 국가의 TV를 보고 노래를 듣고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주변에 '가상국가'를 만들어낼 정도로 하라"고 조언했다.
"영어공부를 할 때 drive(기본 동사)-drove(과거형)-driven(과거분사) 식으로 달달 외우는 식으로 하면 안 돼요. 게임을 하듯 즐겨야죠. 인터넷만 열면 팝송이 나오고 주변에는 할리우드 영화나 맥도날드가 있으니 영어를 접하기도 얼마나 쉽습니까. 길을 가다가 무언가를 보면 '버스 정류장이 영어로 뭐였지'라고 끊임없이 스스로 물어보는 식도 좋아요. 어학을 향해 자신을 열면 진짜 게임처럼 재밌어지고 말이 되기 시작할 겁니다."
이코노무 씨는 지능지수가 전 세계 2% 이내인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MENSA) 회원이지만 "머리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배운 언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여러 언어를 돌아가면서 조금씩 계속 쓰는 일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다. 매일 특정 시간 이상 라디오나 TV를 듣고 인터넷으로 그 나라 신문을 들여다본다.
그는 "어학을 잘한다는 주변의 칭찬과 격려도 큰 힘이 됐다"며 "만약 내가 한국음식 요리를 잘한다는 칭찬만 계속 받았으면 지금쯤 유명한 한국식당 주방장이 됐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또 "요즘처럼 어학공부 지원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어학공부가 어렵다는 것은 핑계이거나 게으른 것일 수도 있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어학을 처음 공부할 때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모국어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부담과 저항감 때문에 어렵다는 느낌이 증폭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 테살로니키대에서 언어학(그리스, 라틴 문화)을 전공한 후 컬럼비아대에서 아랍언어와 문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는 스칸디나비아 지역 언어학 등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비엔나대와 베이징대에서도 어학 공부를 한 경력을 갖고 있다.
통역 일을 시작한 것은 1995년 브뤼셀의 유럽의회에서부터다. 6년간 유럽의회와 EU집행위원회에서 동시통역사(interpreter)로 일한 뒤 스트레스 강도와 피로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번역사(translator·EU의 문서들을 27개 회원국 언어로 번역하는 업무를 맡음)로 자리를 옮겼다.
이코노무 씨는 "새로운 언어를 하나씩 배울 때마다 알렉산더 같은 정복자, 혹은 무언가 하나씩 탐험해 나가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걸어다니는 사전(walking dictionary)"라고 말해요. 물론 예전엔 사전을 십어먹다시피 했죠. 하지만 저는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학은 결국 수단일 뿐이거든요. 녹음기 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어요. 어학보다는 그 안에 담긴 문명과 문화 같은 콘텐츠가 더 중요합니다.
요즘 저는 움 컬툼(Uum Kulthum)이라는 전설적인 아랍의 여가수와 그 노래에 푹 빠져 있어요. 아랍어는 이처럼 아랍 문화와 철학 등으로 연결되죠. 이것이 어학이 당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입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27개 회원국의 27개 공식 언어가 통용되는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에서 근무하는 동시통역사와 번역가들은 3000명이 넘는다. 이 중에서도 이와니스 이코노무(44) 씨는 전설로 통한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모두 32개. EU집행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다언어 사용자다. 모국어인 그리스어 외에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14개 EU 회원국 언어, 중국어 아랍어 같은 EU 바깥지역의 언어는 물론 라틴어와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 같은 고어도 할 줄 안다.
어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고향 그리스 크레타섬의 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뜻 모를 말들이 호기심을 부추겼다.
중국어가 하고 싶었던 18살 때는 무작정 서툰 중국어로 '나는 그리스인이다. 중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두 문장과 함께 연락처를 적어 중국인 학생 기숙사에 붙여놓기도 했다.
아들의 남다른 어학 재능을 눈여겨본 부모는 평범한 가정형편에서도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이 "터키어가 하고 싶다"고 졸랐을 때 불편한 그리스-터키 관계 때문에 마땅한 어학원이 없는 현실에서도 터키인 난민들까지 찾아다니며 아들의 어학공부를 부탁했다.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 이 질문에 그는 "지금 배우는 언어와 사랑에 빠져야 한다"며 "그 언어사용 국가의 TV를 보고 노래를 듣고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주변에 '가상국가'를 만들어낼 정도로 하라"고 조언했다.
"영어공부를 할 때 drive(기본 동사)-drove(과거형)-driven(과거분사) 식으로 달달 외우는 식으로 하면 안 돼요. 게임을 하듯 즐겨야죠. 인터넷만 열면 팝송이 나오고 주변에는 할리우드 영화나 맥도날드가 있으니 영어를 접하기도 얼마나 쉽습니까. 길을 가다가 무언가를 보면 '버스 정류장이 영어로 뭐였지'라고 끊임없이 스스로 물어보는 식도 좋아요. 어학을 향해 자신을 열면 진짜 게임처럼 재밌어지고 말이 되기 시작할 겁니다."
이코노무 씨는 지능지수가 전 세계 2% 이내인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MENSA) 회원이지만 "머리보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배운 언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여러 언어를 돌아가면서 조금씩 계속 쓰는 일을 습관처럼 반복하고 있다. 매일 특정 시간 이상 라디오나 TV를 듣고 인터넷으로 그 나라 신문을 들여다본다.
그는 "어학을 잘한다는 주변의 칭찬과 격려도 큰 힘이 됐다"며 "만약 내가 한국음식 요리를 잘한다는 칭찬만 계속 받았으면 지금쯤 유명한 한국식당 주방장이 됐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또 "요즘처럼 어학공부 지원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어학공부가 어렵다는 것은 핑계이거나 게으른 것일 수도 있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어학을 처음 공부할 때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모국어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이 주는 심리적 부담과 저항감 때문에 어렵다는 느낌이 증폭되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 테살로니키대에서 언어학(그리스, 라틴 문화)을 전공한 후 컬럼비아대에서 아랍언어와 문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는 스칸디나비아 지역 언어학 등으로 박사과정을 밟았다. 비엔나대와 베이징대에서도 어학 공부를 한 경력을 갖고 있다.
통역 일을 시작한 것은 1995년 브뤼셀의 유럽의회에서부터다. 6년간 유럽의회와 EU집행위원회에서 동시통역사(interpreter)로 일한 뒤 스트레스 강도와 피로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번역사(translator·EU의 문서들을 27개 회원국 언어로 번역하는 업무를 맡음)로 자리를 옮겼다.
이코노무 씨는 "새로운 언어를 하나씩 배울 때마다 알렉산더 같은 정복자, 혹은 무언가 하나씩 탐험해 나가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저보고 걸어다니는 사전(walking dictionary)"라고 말해요. 물론 예전엔 사전을 십어먹다시피 했죠. 하지만 저는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요. 어학은 결국 수단일 뿐이거든요. 녹음기 같은 사람이 되기는 싫어요. 어학보다는 그 안에 담긴 문명과 문화 같은 콘텐츠가 더 중요합니다.
요즘 저는 움 컬툼(Uum Kulthum)이라는 전설적인 아랍의 여가수와 그 노래에 푹 빠져 있어요. 아랍어는 이처럼 아랍 문화와 철학 등으로 연결되죠. 이것이 어학이 당신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입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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