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국무부, 한국어통역 실수많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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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07-12 14:19 조회3,7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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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백악관·국무부, 한국어 통역 실수 많다
전문 통역사 대신 한국어 하는 미국 시민을 통역자로…전문용어 잘 이해하지 못해
“통역은 외교관이 할 일 아니다”라는 인식과 “영어가 제일”이라는 오만함도 한몫
[1927호] 2006.10.30
지난 9월 15일(한국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언론회동(Press Availability·한두 개 질문에 짧게 답하는 약식 기자회견)’이 열린 자리. 부시 대통령의 간단한 언급이 끝나자 한국 기자가 질문을 던진다.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의 내용’과 ‘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행사와 관련된 논란에 대한 견해’를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에게 각각 묻는다.
부시 대통령이 먼저 대답하고는 노 대통령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기자가 노 대통령께도 질문했지요?(Did he ask you a question?)”라고 말한다. ‘노 대통령이 답할 차례’라는 얘기. 그러나 미국 측 통역사는 엉뚱하게도 이를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습니까?”라고 번역하고, 이를 들은 노 대통령은 “예, 아주 좋은 대답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한국 측 통역은 어쩔 수 없이 노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다. 부시 대통령은 또 이를 듣고는 “다른 사람 모두 (내가 밝힌 견해처럼)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까지 나간다.
한국 기자 2명을 포함해 30여명의 기자가 몰려 있던 회견장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상간의 동문서답에 대한 실소(失笑). 영문을 모르는 두 정상도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된 줄도 모른 채. ‘허무개그’ 같지만 실제 상황이다. 다만 민감한 주제에 대한 통역 실수가 아니어서 언론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질문을 던졌던 연합뉴스 김재현 기자는 “통역 실수로 회견장 분위기가 아주 어색해졌다”고 했다.
외교무대에서 통역 실수는 종종 생긴다. 짧은 시간에 외교적인 수사(修辭)의 의미를 정확히 풀어 전달해야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수선한 분위기,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진행되는 기자회견장의 통역은 어느 통역보다 힘들다고 한다.
통역의 어려움과 관련된 일화 하나. 1993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조깅을 마친 뒤 클린턴 대통령에게 친필휘호를 선사했다. 친필휘호는 다름아닌 ‘대도무문(大道無門)’. 뜻을 알 턱이 없는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한국 측 통역을 맡았던 박진(현 한나라당 의원) 공보비서관에게 뜻을 물었다. ‘정도(正道)를 걸으면 거리낄 것이 없다’는 이 말을 박 비서관은 먼저 “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라고 의역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큰 길엔 문이 없다)”라고 직역해도 마찬가지. 그래서 다시 미국식으로 “A freeway has no tollgate(고속도로엔 요금 정산소가 없다)”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클린턴 대통령은 대충 감을 잡고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통역사는 수표처럼 가짜일 때만 세상에 알려진다’는 말이 있다. 숨은 역할이다 보니 잘 해야 본전이고 실수는 바로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통역사란 직업의 애환이 담긴 말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유독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부의 한국어 통역 과정에서 ‘가짜 수표’(오역·誤譯)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때는 미국 측 통역 실수로 우리 정부가 뒤늦게 언론에 정정을 요청하는 소동까지 빚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 포기 전에 북한에 원조를 먼저 제공할 용의가 있느냐”는 미국 기자 질문에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를 검토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을 미국 측 통역이 “경수로가 적절한 시기에 제공될 것”이라고 전달한 것. ‘경수로 문제 검토’를 ‘경수로 제공’으로 오역한 것이다. 그래서 대북 경수로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와 혼선을 빚었다.
작년 7월 13일 서울의 외교부 청사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도 오역 문제가 불거졌다. 이날 미국 측 통역은 라이스 장관이 팔레스타인 테러를 언급하며 ‘팔레스타인 당국(authority)’이란 표현을 쓴 것을 ‘권위’로 통역, 기자들의 머리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그 뒤에도 “미국도 북한에 ‘식품지원’(식량지원)을 해왔다” “양국은 한반도 ‘보안’(안보)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는 오역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한반도 비핵화 동맹’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지난 9월 15일의 한·미 정상회담 때도 부시 대통령은 작통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한반도 안보에 변함없는 의지를 갖고 있다(committed)”고 했지만, 통역은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에 책임을 여전히 지고 있다”고 했다. ‘변함없는 의지’와 ‘책임’은 강도가 다른 말이다.
이렇듯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의 한국어 통역 오역이 계속 불거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미국 국무부가 통역사를 선발하는 방식 탓”이라고 말한다. 백악관의 한국어 통역은 국무부에서 정하는 통역사를 쓰는데 이들은 전문 통역사나 외교 정책을 담당하는 국무부 직원이 아니다. 미국 시민권자 중에서 한국 말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을 고용한다. 시민권자를 고집하는 것은 보안유지를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처음 통역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무대 공포증’을 겪게 되고, 전문용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한국말도 서툴러 실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은 외교통상부 직원이 맡고 있다. 영어 통역관은 수요가 많아 아예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 파견돼 있다. 현재 노 대통령의 영어 통역관은 정의혜(31) 외무관. 외무고시 31회 출신으로 고려대 법대와 미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왔다. 모국어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영어 이외에 일어·중국어·프랑스어 등 중요 언어의 통역 담당자 역시 외교부 직원이 맡는다. 일어와 중국어는 통역을 위해 외교부에서 특채했다고 한다.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곽중철 원장은 “한국 대통령의 통역은 주로 외무관들이 맡고, 유럽 국가 대부분은 대통령 통역에 통역 전문가를 쓴다”며 “그에 비하면 미국은 한국어 통역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통역은 외교관이 할 일이 아니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전문 통역사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 한국어 통역 과정이 없는 건 아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몬트레이 국제문제연구소 부설 통역대학원에 유일하게 한국어 통역 과정이 개설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미국 시민권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미국 국무부에선 통상 워싱턴 주변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고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곽중철 원장은 “여기엔 ‘통역이야 어떻게 되겠지’라는 식의 영어 제일주의가 깔려 있다”며 “미국이 전문적인 영역인 통역에 대한 무심함을 버리지 않으면 한국어 오역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규 주간조선 기자 wkchoi@chosun.com
▽ASEM 서울회의장은 가히 통역의 올림픽 이라고 할 수 있다(곽중철 한국외대 통역연구소장, 6일 ASEM회의 동시통역 업무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입력2000.10.06 16:42 동아일보
전문 통역사 대신 한국어 하는 미국 시민을 통역자로…전문용어 잘 이해하지 못해
“통역은 외교관이 할 일 아니다”라는 인식과 “영어가 제일”이라는 오만함도 한몫
[1927호] 2006.10.30
지난 9월 15일(한국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한·미 정상회담 직후 ‘언론회동(Press Availability·한두 개 질문에 짧게 답하는 약식 기자회견)’이 열린 자리. 부시 대통령의 간단한 언급이 끝나자 한국 기자가 질문을 던진다.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의 내용’과 ‘전시 작전통제권의 한국군 단독행사와 관련된 논란에 대한 견해’를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에게 각각 묻는다.
부시 대통령이 먼저 대답하고는 노 대통령 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려 “기자가 노 대통령께도 질문했지요?(Did he ask you a question?)”라고 말한다. ‘노 대통령이 답할 차례’라는 얘기. 그러나 미국 측 통역사는 엉뚱하게도 이를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습니까?”라고 번역하고, 이를 들은 노 대통령은 “예, 아주 좋은 대답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한국 측 통역은 어쩔 수 없이 노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다. 부시 대통령은 또 이를 듣고는 “다른 사람 모두 (내가 밝힌 견해처럼)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까지 나간다.
한국 기자 2명을 포함해 30여명의 기자가 몰려 있던 회견장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상간의 동문서답에 대한 실소(失笑). 영문을 모르는 두 정상도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공개적으로 웃음거리가 된 줄도 모른 채. ‘허무개그’ 같지만 실제 상황이다. 다만 민감한 주제에 대한 통역 실수가 아니어서 언론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질문을 던졌던 연합뉴스 김재현 기자는 “통역 실수로 회견장 분위기가 아주 어색해졌다”고 했다.
외교무대에서 통역 실수는 종종 생긴다. 짧은 시간에 외교적인 수사(修辭)의 의미를 정확히 풀어 전달해야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어수선한 분위기,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 진행되는 기자회견장의 통역은 어느 통역보다 힘들다고 한다.
통역의 어려움과 관련된 일화 하나. 1993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조깅을 마친 뒤 클린턴 대통령에게 친필휘호를 선사했다. 친필휘호는 다름아닌 ‘대도무문(大道無門)’. 뜻을 알 턱이 없는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한국 측 통역을 맡았던 박진(현 한나라당 의원) 공보비서관에게 뜻을 물었다. ‘정도(正道)를 걸으면 거리낄 것이 없다’는 이 말을 박 비서관은 먼저 “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라고 의역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큰 길엔 문이 없다)”라고 직역해도 마찬가지. 그래서 다시 미국식으로 “A freeway has no tollgate(고속도로엔 요금 정산소가 없다)”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클린턴 대통령은 대충 감을 잡고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통역사는 수표처럼 가짜일 때만 세상에 알려진다’는 말이 있다. 숨은 역할이다 보니 잘 해야 본전이고 실수는 바로 도드라진다는 것이다. 통역사란 직업의 애환이 담긴 말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유독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부의 한국어 통역 과정에서 ‘가짜 수표’(오역·誤譯)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한·미 정상회담 때는 미국 측 통역 실수로 우리 정부가 뒤늦게 언론에 정정을 요청하는 소동까지 빚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핵 포기 전에 북한에 원조를 먼저 제공할 용의가 있느냐”는 미국 기자 질문에 “적절한 시기에 경수로를 검토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을 미국 측 통역이 “경수로가 적절한 시기에 제공될 것”이라고 전달한 것. ‘경수로 문제 검토’를 ‘경수로 제공’으로 오역한 것이다. 그래서 대북 경수로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와 혼선을 빚었다.
작년 7월 13일 서울의 외교부 청사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을 때도 오역 문제가 불거졌다. 이날 미국 측 통역은 라이스 장관이 팔레스타인 테러를 언급하며 ‘팔레스타인 당국(authority)’이란 표현을 쓴 것을 ‘권위’로 통역, 기자들의 머리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그는 그 뒤에도 “미국도 북한에 ‘식품지원’(식량지원)을 해왔다” “양국은 한반도 ‘보안’(안보)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는 오역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한반도 비핵화 동맹’이라고 번역하기도 했다.
지난 9월 15일의 한·미 정상회담 때도 부시 대통령은 작통권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한반도 안보에 변함없는 의지를 갖고 있다(committed)”고 했지만, 통역은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에 책임을 여전히 지고 있다”고 했다. ‘변함없는 의지’와 ‘책임’은 강도가 다른 말이다.
이렇듯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의 한국어 통역 오역이 계속 불거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미국 국무부가 통역사를 선발하는 방식 탓”이라고 말한다. 백악관의 한국어 통역은 국무부에서 정하는 통역사를 쓰는데 이들은 전문 통역사나 외교 정책을 담당하는 국무부 직원이 아니다. 미국 시민권자 중에서 한국 말을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을 고용한다. 시민권자를 고집하는 것은 보안유지를 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처음 통역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무대 공포증’을 겪게 되고, 전문용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고 한국말도 서툴러 실수가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영어 통역은 외교통상부 직원이 맡고 있다. 영어 통역관은 수요가 많아 아예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 파견돼 있다. 현재 노 대통령의 영어 통역관은 정의혜(31) 외무관. 외무고시 31회 출신으로 고려대 법대와 미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왔다. 모국어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한다고 한다. 영어 이외에 일어·중국어·프랑스어 등 중요 언어의 통역 담당자 역시 외교부 직원이 맡는다. 일어와 중국어는 통역을 위해 외교부에서 특채했다고 한다.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곽중철 원장은 “한국 대통령의 통역은 주로 외무관들이 맡고, 유럽 국가 대부분은 대통령 통역에 통역 전문가를 쓴다”며 “그에 비하면 미국은 한국어 통역에 신경을 덜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통역은 외교관이 할 일이 아니다’는 인식을 갖고 있고 전문 통역사도 잘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 한국어 통역 과정이 없는 건 아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몬트레이 국제문제연구소 부설 통역대학원에 유일하게 한국어 통역 과정이 개설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미국 시민권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미국 국무부에선 통상 워싱턴 주변에서 국제정치를 전공하고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곽중철 원장은 “여기엔 ‘통역이야 어떻게 되겠지’라는 식의 영어 제일주의가 깔려 있다”며 “미국이 전문적인 영역인 통역에 대한 무심함을 버리지 않으면 한국어 오역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원규 주간조선 기자 wkchoi@chosun.com
▽ASEM 서울회의장은 가히 통역의 올림픽 이라고 할 수 있다(곽중철 한국외대 통역연구소장, 6일 ASEM회의 동시통역 업무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입력2000.10.06 16:42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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