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당선인美북핵전문가 접견 통역 필요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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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8-01-06 08:55 조회3,21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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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1월 4일 오전 미국 유력인사 접견은 친목모임과 같이 화기애애하게 시작됐으나 `북핵문제'라는 무거운 주제를 반영하듯 본격적인 토론이 진행되면서 심각한 분위기로 급변했다.(중략)
이 당선인은 이날 접견에서 미국 인사들의 답변에 대해 배석한 통역자가 통역을하려 하자 때때로 손을 들어 제지한 뒤 직접 대화를 했으며, 미국측 참석자들도 직접 농담을 건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곽중철 (2008-01-06 09:17:15)
비즈니스 감각이 통할까 (뉴스위크)
GQ(세계화 지수) 높고 판단력, 인맥, 지도력 돋보이지만 지나친 기업가 마인드는 걸림돌
Place me in your eyes and close, Let me in your eyes live.”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국왕과 속마음을 터놓게 된 시의 첫 구절이다. 이 당선자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시절이던 2007년 4월 두바이의 국가경영 전략을 알아보고자 이 도시를 찾았다.
모하메드 국왕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이 당선자는 손을 내밀며 이 대목을 읊었다. ‘나를 그대의 눈 안에 넣어주세요. 내가 그대의 눈 안에 살게 해주세요’라는 뜻의 이 구절은 실은 모하메드 국왕이 지은 시의 한 부분이다.
동양에서 온 처음 보는 이 남자의 입에서 자신의 시가 뜻밖에 흘러나오자 모하메드 국왕은 일순 폭소를 터뜨렸다. 흔히 이런 류의 만남에 감돌게 마련인 긴장감은 단박에 걷혔다. 이 당선자는 시인이기도 한 두바이 국왕의 시를 인사말에 쓰고자 미리 준비해 두었다.
방문객의 기지와 성의에 감동한 국왕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시를 짓게 된 내밀한 사연까지 이 당선자에게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친구처럼 대했고, 대화도 막힘이 없었다”고 그 자리에 배석했던 서울대 조동성 교수(경영학)는 전했다.
“한 사람의 국왕과 한 사람의 유력한 대선주자의 첫 만남은 서먹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당선자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후 이어진 40여 분간의 환담에서도 두 사람이 대화를 주도했다. 당초 두바이 경제를 잘 아는 조 교수가 양측을 조율하며 테이블 분위기를 이끌어갈 참이었지만 한번 가까워진 두 사람은 물 흐르듯 영어로 말을 나눴다. 특히 다음달(5월)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던 모하메드 국왕은 청계천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당선자는 자신이 직접 안내하겠다며 날짜까지 수첩에 기록할 정도로 금세 친해졌다. “이 당선자처럼 처음 보는 사람을 순식간에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는 별로 못 봤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조 교수와 이 당선자의 해외 동반 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현대건설에서 27년 몸담아 불도저형에다 성격이 딱딱하리라 예단하면 낭패를 본다고 그는 말했다. 조 교수는 이 당선자에게 문학소년 같은 ‘soft culture’(연성 문화) 분위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두바이에서 만난 기자들과도 소탈하게 어울렸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두바이 국왕을 대하는 이 당선자에게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긴장감을 풀어줄 능력을 보았다.”
이 당선자는 24세에 현대에 입사해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등 27년간 일했다. 현대건설 사장을 맡은 70년대 후반부터는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 있을 때도 많았다고 당선자 스스로 돌이킨 일(‘신화는 없다’)도 있다.
당선자 부속실의 김희중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해외출장 통계를 못 낼 정도”라고 말했다. 당선자의 서울시장 재임 기간의 해외출장 횟수(11회)가 오히려 초라할 지경이다. 이 당선자가 전임 시장들보다 해외 출장 빈도가 높은 편(서울시 국제협력과)인데도 말이다.
출장 횟수와 국제 감각이 반드시 정비례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래도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 견문은 쌓이게 마련이다. 세계화라는 구호가 울려 퍼진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대통령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인의 삶과 일의 근거지가 국내였다면 당선자는 27년을 비즈니스맨으로 일하며 국내외를 오갔다.
살아온 방식과 활동 반경이 역대 대통령과 이 당선자는 많이 다른 셈이다. 허철 현대철배 전무는 1984년부터 4년간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의 비서로 해외출장 길을 수행했다. “당시 이 회장은 수행원보다 현지 사정에 더 밝았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출장 길에 올랐으니 당연했다.
또 “일반 관광이 아니라, 대기업의 최고 책임자로서 방문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으므로” 해외 경험에서 얻는 수확이 훨씬 컸다고 허 전무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당선자는 왕성한 해외활동에서 나름의 국제적 자산을 다졌음 직하다.
“아마도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제외하면 국제화 감각에서는 역대 대통령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전 ‘서울사랑’ 편집주간 강용진 박사는 강조했다.
현대건설 재직 시절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이 당선자가 특유의 유머 감각과 세련된 매너로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한다. 특히 국제적인 매너는 중요하고 까다롭다. 당시 중동 지역 공사 거의가 정부 발주여서 왕가 사람들과 상대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건설부 등 관계 부처 장관직도 거의 왕자들 차지였다. 이들 대부분은 유럽 등 서구 유학파 출신이어서 세련된 옷차림과 교양을 갖춰야 그들의 호감을 샀다. “이명박 당선자는 그 점을 잘 알았고, 다양한 외국 경험과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능숙하게 대처했다”고 허 전무는 말했다.
“평소 사무실에 당시 드물었던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을 구비해 놓았고, CNN 같은 뉴스 채널도 보면서 세계 정세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당선자는 목표를 위해 묵묵히 기다릴 줄도 안다. 서울시장 시절인 2003년 10월 독일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이 당선자는 도이체 방크 부사장, 코메르츠 방크 부사장 등 프랑크푸르트의 유력 금융인과 언론인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서울 상암동에 조성 중이던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국제자본이 적극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였다. 오찬을 마친 이 당선자는 다음 일정으로 자리를 옮기고자 승용차에 올랐다. 이때 밖에 있던 코메르츠 부사장이 다른 오찬 참석자와의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차량 진행방향을 가로막는 줄도 몰랐다.
수행원이 길을 내 달라고 말하려고 차에서 내리자 이 당선자가 말렸다. 5분 이상을 그렇게 기다렸다고 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가 초대한 손님이 용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예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이 당선자를 수행한 강용진 박사는 말했다.
영어가 잘 따라줘야 인맥도 붙는다. 앞서 두바이 국왕과의 면담에서 그랬듯이 이 당선자의 영어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데 지장이 없어 보인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2006년 3월 워싱턴 방문 당시 특파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특파원이 이 당선자가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받아낼 돈은 확실하게 받아낸다. 그러면 됐지 않으냐”고 답했다. 외국의 빚쟁이를 영어로 닦달할 정도로 자신 있다는 말이다. 임성빈 국제관계 특보는 “당선자가 비즈니스 영어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6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연사로 초청을 받았다. 숙소에서 행사장까지는 1㎞ 남짓한 작은 길이 있었다. 차로 가기엔 가까워 일행과 함께 걸어간 그 길이 거의 1시간이나 걸렸다.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악수하고 안부를 전하느라 지체됐던 까닭이다.
빌 게이츠 MS 회장, AIG금융그룹의 마틴 셜리번 회장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 10여 명과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다고 2005년 9월부터 이 당선자 해외 순방을 수행한 박대원 외교특보는 전했다. 대부분 현대그룹 재임 시절과 국회의원으로 있는 동안 사귄 인맥들이다.
이 밖에도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러 이사장, 러시아 연방 내 칼믹공화국 일륨지노프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등도 가깝게 지낸다. “저명인사들과 영어로 대화할 정도면 영어 구사능력이 짐작되지 않느냐”고 박 특보는 말했다.
당선자와 입사 동기인 박재면 전 현대건설 회장은 이명박 당선자의 영어실력보다는 강인한 체력의 ‘스포츠 접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싱가포르의 어느 회의에서 ‘bilateral’(쌍방의)과 ‘unilateral’(일방의)의 뜻을 헷갈려 할 정도로 영어실력은 평이했다고 기억한다.
당선자가 현대건설 사장이고 박 전 회장이 부사장이던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들과 테니스를 즐겨 쳤다고 한다. 어떤 날은 발을 삐고서도 주변의 만류를 듣지 않은 채 사우디 왕자와 밤새도록 테니스를 쳤다. 그 다음날, 왕자와 둘이서 회의에 들어간 당선자는 하루 만에 공사를 따내는 집중력과 체력을 보여줬다.
이처럼 이 당선자는 곳곳에서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축에 속한다. 이 당선자와 서울시 직원 10여 명이 2006년 1월 다보스의 태국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직원 중 한 명이 태국 여주인에게 영어로 더듬더듬 식사 주문을 하자 이 당선자가 끼어들었다.
일행 10여 명이 먹을 요리를 태국말로 술술 주문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현대 입사 후 첫 근무지였던 태국에서 배운 말의 일부를 그때까지 잊지 않은 덕이다.
“40년도 더 된 말을 기억해 내는 걸 보고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박대원 외교특보는 말했다. 다른 이들도 수긍한다. 허철 현대택배 전무는 이 당선자가 “기억력이 뛰어나며, 두뇌회전이 빠르고 판단이 명석하다”고 기억했다.
당선자와 함께 호흡해 본 인사들은 당선자의 더 큰 장점으로 국제적 균형감각을 꼽기도 한다. 임성빈 특보는 “당선자는 보편적인 국제 시각에서 우리나라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뛰어나다”고 말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객관화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국제사회에서 남과 대화하려면 먼저 자신과 한국에 대한 시각이 건전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2006년 3월 서울시장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당선자는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웬디 커틀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측 수석대표와 만났다. 이 즈음 국내에서 반FTA 시위가 한창 고개를 들었다.
당선자는 이들과 만나 한·미 FTA가 반드시 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어 입장표명을 자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본인의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고 박대원 특보는 말했다. 연장선상에서 국내 여론의 변덕이나 굴곡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강용진 박사는 전한다.
어떨 때는 오만해서 민족자주를 부르짖다가, 어떤 때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휩싸이는 국내 정서적 기복을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강 박사는 “자신이 현대에서 성공해 한국인이라는 긍지는 대단하지만 의식적인 측면에서 한국 의식의 세계화는 더 발전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조깅, 테니스, 수영 등으로 건강을 챙긴다. 해외출장 길에도 매일 오전 5시면 일어나 달리기를 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골프채는 거의 잡지 않는다. 한마디로 시간이 아까워 골프를 안 친다고 한다.
서울시장 시절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공무원들이 골프에 빠지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할 일 많은 공무원들이 골프나 쳐서 되겠느냐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고 주변에서 전한다.
국제감각과 열정에 비해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려는 노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현대 시절 해외출장 때는 아랫사람의 고충이 심했다. 비행기를 타더라도 당시 이명박 회장은 일등석을, 비서진은 이코노미석을 타게 마련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등석 승객이 내린 뒤 이코노미석 승객이 내린다. 비서진이 짐을 찾고 세관을 통과해 공항 밖으로 나오면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던 이 회장은 꾸물댄다고 야단치기 일쑤였다고 허철 전무는 돌이켰다. “시간 허비를 아까워한 습성 때문”이라고 허 전무는 풀이했다.
중앙일보의 이여영 기자가 지난 11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목격담에도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이명박 당선자의 일면이 보인다. “모든 토론이 영어로 진행된 이번 포럼. 진행 요원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시통역 이어폰을 가져와 이 후보의 귀에 걸어주려 했다.
이 후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순간적으로 진행요원의 손을 탁 쳤다. ‘괜찮습니다’ 하고 웃으며 말해 줬으면 보기에도 더 좋았을 텐데, 배려의 마음으로 통역기를 가져다준 그분의 표정이 왠지 민망해 보였던 것은 내 착각일까. 꼭 사장님에게 혼나는 말단 직원의 모습 같았다.”
물론 어려운 이를 보살피며 따뜻한 정을 나눌 줄도 안다. 한·중 수교 전의 일이다. 현대건설 이명박 회장 비서실에 지린성 조선족 청년이 부친 우편물이 왔다. ‘한국문화와 문학을 알고 배우려는데 책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며 책을 보내 달라는’는 사연이었다.
비서실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기대하지 않은 채 이 회장에게 편지를 전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이 회장은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직접 몇 권의 책을 골라 서신과 함께 보내주라고 지시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 청년과 이 회장은 몇 달에 한 번씩 편지를 교환하는 사이가 됐다.
한 측근 인사는 상당기간 지켜본 이 당선자의 특징을 이렇게 조명했다. “이 당선자는 기업마인드를 가졌다. 그러나 너무 과도할 정도로 기업주의적이다. 또 사업가여서 된다 싶은 건 일단 모방하려 드는 심리도 있다.” 지난 9월 말 공식 발표까지 하고서 무산된 부시 대통령 면담 계획도 이런 범주에서 이해된다.
반면,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 당선자를 “국제적인 활동이 생활이 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당선자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리라고 말한다.
“한국은 사람을 틀에 집어넣어 보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판한다. 아무리 잘해도 한 가지를 못하면 꼬집어댄다. 외국은 전체를 보며, 부분을 트집 잡지 않는다. 이 당선자는 그런 사회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한편, 허철 현대택배 전무가 지난 11월 펴낸 신앙 에세이 ‘네 인생의 라스트 피치를 올려라’는 이 당선자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오래된 인연을 소개한다. 1980년대 중반 서울 계동 현대 사옥 6층 현대건설 회장 비서실에 방송국 기자가 문을 두드렸다.
당시 현대건설 이명박 회장은 직장인들의 우상이자 정주영 명예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촉망 받는 CEO로 언론의 단골 취재원이었다. 카메라 기자와 함께 접견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문화방송(MBC) 정동영 차장이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인터뷰에 앞서 30분 일찍 정동영 차장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차를 함께 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 말미에 정 차장이 앞으로의 소망을 물었다.
“국가 발전의 장래는 인재 육성에 달려 있다. 기회가 되면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새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담소를 나누던 그때만 해도 두 사람이 상상이나 했을까. 20년 후 대통령직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일 거라고.
박성현·류지원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psh@joongang.co.kr
곽중철 (2008-01-07 10:21:50)
"Place me in your eyes and close, Let me in your eyes live.”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국왕과 속마음을 터놓게 된 시의 첫 구절이다. 이 당선자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시절이던 2007년 4월 두바이의 국가경영 전략을 알아보고자 이 도시를 찾았다...
(주) 당시 이 후보를 수행 통역했던 우리 통대 26기 졸업생도 그 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곽중철 (2008-01-10 15:59:33)
이 당선자, 힐 면담자리서 영어실력 '과시'
李당선인-힐 면담 `화기애애'
서울시장-주한대사 시절 얘기꽃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10일 면담은 시종 화기애애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당선인은 지난달 당선 직후 한반도 주변 4강 주한대사들의 예방을 받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와도 국제전화로 통화를 하는 등 외교무대에 선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는 대선 축하를 겸한 상견례 차원이었다면 이날 면담은 힐 차관보가 특사는 아니지만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갖고 오는 등 사실상 특사 자격으로 방문했다는 점에서 공식 외교 행보의 첫 시험무대라는 의미가 컸다.
힐 차관보 입장에서도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1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새 정부의 외교기조나 대북정책의 변화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듯한 태도였다.
이 당선인은 이날 만남에서 그의 ‘실용외교’ 구상을 설명하고 북핵문제 해결과 6자회담에서 한.미간 공동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한.미간 전통적 우호관계의 복원 및 공고화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 공개한 이날 모두발언은 개인적 친분을 거론하는 등 웃음이 묻어나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당선인은 별도 통역없이 직접 대화를 나눌 정도의 영어실력을 ‘과시’했다.
이 당선인은 접견실에 들어선 뒤 힐 차관보를 향해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했고, 헨리 해거드 주한 미 대사관 1등 서기관에게도 “선거 때 고생했다”고 격려했다.
이에 힐 차관보는 “제가 주한미국 대사로 있을 때 당선인이 저를 서울명예시민으로 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말한 뒤 “제 딸도 서울광장에서 스케이트 타던 일을 있지 못한다. 그 때 제 딸이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많이 이용한 사람으로 선정됐던 것을 지금도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당선인이 “따님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미국으로 돌아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일하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힐 차관보는 이어 “지난주 금요일 부시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동안 한국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눴다”며 “부시 대통령은 당선인과의 (지난달) 통화를 매우 즐거워했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또 갑자기 골프 얘기를 꺼내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굿(good) 골퍼’라기보다는 ‘패스터(faster) 골퍼’다. 18홀을 금방 돈다”고 말하기도 했다.
뒤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 힐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하면서 취임식 사절단을 언급하는 등 공식적인 대화로 넘어갔다.
힐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문을 연 뒤 “빠른 시간 안에 미국을 방문해서 대화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 당선인의 방미를 공식 초청했고, 이 당선인은 “부시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위한 각별한 초청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힐 차관보는 이어 “취임 경축 사절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보낼 계획이 있다”고 전했고, 이 당선인은 “대단히 환영한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문제와 핵폐기 문제도 화두에 올랐다.
이 당선인은 “북한 인권문제는 전략적 차원이 아니라 인류적,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힐 차관보는 북핵문제와 관련, “새 정부 출범 전에 핵문제에 관한 완전한 신고절차가 이뤄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폐기단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면담은 힐 차관보가 “(양국의) 두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서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기를 기대한다”고 재차 조속한 방미 초청의사를 피력하면서 45분여만에 마무리됐다.
면담에는 당선인 대미특사로 선임된 정몽준 의원과 박진 인수위 간사, 주호영 대변인, 임태희 비서실장, 권종락 당선인 보좌역이, 미측에서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 대사, 폴 헨리 미 NSC 6자회담 담당과장,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등이 참석했다.
입력 : 2008.01.10 11:30 / 수정 : 2008.01.10 15:13
곽중철 (2008-01-16 14:31:08)
MB의 ‘서바이벌 잉글리시’
“어! 어서와요” → “어! 유아 베리 웰캄”
유려하진 않아도 농담할 정도
“어! 유아 베리 웰캄(you’re very welcome).”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로 당선 축하 인사를 온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순간 취재진에서 나지막한 웃음이 터졌다. 억양이 이 당선인이 경상도 사투리로 “어! 어서 와요”라고 말할 때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틀렸다곤 할 수 없지만 “유어 웰컴”이 주로 “천만에”라는 뜻으로 쓰이는 만큼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시바우 대사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원어민 외교관이 구사하는 수준 높은 영어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고는 어렵지 않은 어휘와 표현들을 엮어 가며 막힘없이 자신의 뜻을 전달해 냈다. 두 사람 간에 빠르게 오가는 대화를 지켜보던 주변의 태도는 금세 바뀌었다. 이처럼 이 당선인의 ‘생존 영어(Survival English)’ 실력은 수준급이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보좌해 온 한 측근은 “유려한 영어솜씨는 아니지만 이 당선인이 외국인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영어로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캠프가 배포한 이 당선인의 신상명세 중 ‘외국어 실력=영어(대화 가능)’는 이런 평가를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이 당선인은 영어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5일 주한 외국투자기업 신년 인사회에서도 영어로 연설을 했다. 지난해에도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선 영어로 연설한 뒤 질의응답까지 했다. 서울시장 자격으로 2006년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통역 없이 행사장을 누비며 영어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대선 직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당선인은 영어를 잘하는 일 중독자”라고 보도했다. ◆"말하기보다 듣기 능숙한 현장 영어”=이런 이 당선인의 영어실력은 현장에서 다져진 것이다. 국내 어학교육이 신통찮던 1960년대 중반 현대그룹에 입사해 70년대 초부터 세계 각국을 누비며 비즈니스 현장에서 영어를 배운 것이다. 한 측근은 “경험으로 배운 영어라 그런지 이 당선인은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숙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이 당선인은 공식 행사의 영어 연설문 작성은 자문교수단의 도움을 받고 있다. 국내 최고 외교영어 전문가로 꼽히는 연세대 국제대학원 이정민 교수가 그중 한 명이다. 남궁욱 기자 [J-HOT
곽중철 (2008-01-16 15:05:59)
이명박 당선인 “한국에 투자하라… 어려움 풀어주겠다”
“여러분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 대신 나는 여러분의 어려움을 풀어 주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CEO) 특유의 기지와 매너로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 당선인은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주한외국인투자기업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한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당초 이 당선인은 한국어로 연설할 예정이었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영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당선인은 파워포인트로 소개된 경제성장률 추이 등을 설명하며 “한국이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민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여러분과 같은 외국 기업인들이 도와준 결과이기도 하다”며 참석자들을 치켜세웠다.
이어 그는 “제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보잉) 747’ 비행기를 탄 까닭이 아니라 ‘747’로 알려진 경제정책 공약 때문이었다”며 본론에 들어갔다.
이 당선인은 747공약(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 강국)의 의미를 설명하며 “한국이 고성장을 회복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시민으로서 응당한 의무를 다하면 G7국가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그는 747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며 “여러분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애정 어린 조언과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한국 경제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고 소득세가 높고,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정책 결정과 집행의 괴리, 과거 정부의 법치주의 훼손 등을 지적했다.
그는 “솔직히 말씀드려 이런 문제를 단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최단 시일 안에 해결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정책 과제를 정리하고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미 오버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대표는 “대통령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직접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shocked)”며 “파워포인트로 만든 자료가 마치 사업 설명회를 하는 것처럼 알기 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요베 쓰네오(伊與部恒雄) 서울저팬클럽(SJC) 이사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 기업 CEO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며 “더 큰 기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윌리엄 오벌린 AMCHAM 회장, 한스 베른하르트 메어포르트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회장대행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당선인 측에서는 임태희 비서실장, 주호영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이 당선인은 이날 접견에서 미국 인사들의 답변에 대해 배석한 통역자가 통역을하려 하자 때때로 손을 들어 제지한 뒤 직접 대화를 했으며, 미국측 참석자들도 직접 농담을 건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곽중철 (2008-01-06 09:17:15)
비즈니스 감각이 통할까 (뉴스위크)
GQ(세계화 지수) 높고 판단력, 인맥, 지도력 돋보이지만 지나친 기업가 마인드는 걸림돌
Place me in your eyes and close, Let me in your eyes live.”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국왕과 속마음을 터놓게 된 시의 첫 구절이다. 이 당선자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시절이던 2007년 4월 두바이의 국가경영 전략을 알아보고자 이 도시를 찾았다.
모하메드 국왕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이 당선자는 손을 내밀며 이 대목을 읊었다. ‘나를 그대의 눈 안에 넣어주세요. 내가 그대의 눈 안에 살게 해주세요’라는 뜻의 이 구절은 실은 모하메드 국왕이 지은 시의 한 부분이다.
동양에서 온 처음 보는 이 남자의 입에서 자신의 시가 뜻밖에 흘러나오자 모하메드 국왕은 일순 폭소를 터뜨렸다. 흔히 이런 류의 만남에 감돌게 마련인 긴장감은 단박에 걷혔다. 이 당선자는 시인이기도 한 두바이 국왕의 시를 인사말에 쓰고자 미리 준비해 두었다.
방문객의 기지와 성의에 감동한 국왕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시를 짓게 된 내밀한 사연까지 이 당선자에게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친구처럼 대했고, 대화도 막힘이 없었다”고 그 자리에 배석했던 서울대 조동성 교수(경영학)는 전했다.
“한 사람의 국왕과 한 사람의 유력한 대선주자의 첫 만남은 서먹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당선자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후 이어진 40여 분간의 환담에서도 두 사람이 대화를 주도했다. 당초 두바이 경제를 잘 아는 조 교수가 양측을 조율하며 테이블 분위기를 이끌어갈 참이었지만 한번 가까워진 두 사람은 물 흐르듯 영어로 말을 나눴다. 특히 다음달(5월)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던 모하메드 국왕은 청계천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당선자는 자신이 직접 안내하겠다며 날짜까지 수첩에 기록할 정도로 금세 친해졌다. “이 당선자처럼 처음 보는 사람을 순식간에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는 별로 못 봤다”고 조 교수는 말했다.
조 교수와 이 당선자의 해외 동반 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현대건설에서 27년 몸담아 불도저형에다 성격이 딱딱하리라 예단하면 낭패를 본다고 그는 말했다. 조 교수는 이 당선자에게 문학소년 같은 ‘soft culture’(연성 문화) 분위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두바이에서 만난 기자들과도 소탈하게 어울렸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두바이 국왕을 대하는 이 당선자에게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긴장감을 풀어줄 능력을 보았다.”
이 당선자는 24세에 현대에 입사해 20대 이사, 30대 사장, 40대 회장 등 27년간 일했다. 현대건설 사장을 맡은 70년대 후반부터는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 나가 있을 때도 많았다고 당선자 스스로 돌이킨 일(‘신화는 없다’)도 있다.
당선자 부속실의 김희중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 해외출장 통계를 못 낼 정도”라고 말했다. 당선자의 서울시장 재임 기간의 해외출장 횟수(11회)가 오히려 초라할 지경이다. 이 당선자가 전임 시장들보다 해외 출장 빈도가 높은 편(서울시 국제협력과)인데도 말이다.
출장 횟수와 국제 감각이 반드시 정비례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그래도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 견문은 쌓이게 마련이다. 세계화라는 구호가 울려 퍼진 1990년대 이후의 한국 대통령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인의 삶과 일의 근거지가 국내였다면 당선자는 27년을 비즈니스맨으로 일하며 국내외를 오갔다.
살아온 방식과 활동 반경이 역대 대통령과 이 당선자는 많이 다른 셈이다. 허철 현대철배 전무는 1984년부터 4년간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회장의 비서로 해외출장 길을 수행했다. “당시 이 회장은 수행원보다 현지 사정에 더 밝았다.” 한 달이 멀다 하고 출장 길에 올랐으니 당연했다.
또 “일반 관광이 아니라, 대기업의 최고 책임자로서 방문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었으므로” 해외 경험에서 얻는 수확이 훨씬 컸다고 허 전무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당선자는 왕성한 해외활동에서 나름의 국제적 자산을 다졌음 직하다.
“아마도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제외하면 국제화 감각에서는 역대 대통령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전 ‘서울사랑’ 편집주간 강용진 박사는 강조했다.
현대건설 재직 시절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이 당선자가 특유의 유머 감각과 세련된 매너로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한다. 특히 국제적인 매너는 중요하고 까다롭다. 당시 중동 지역 공사 거의가 정부 발주여서 왕가 사람들과 상대할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건설부 등 관계 부처 장관직도 거의 왕자들 차지였다. 이들 대부분은 유럽 등 서구 유학파 출신이어서 세련된 옷차림과 교양을 갖춰야 그들의 호감을 샀다. “이명박 당선자는 그 점을 잘 알았고, 다양한 외국 경험과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능숙하게 대처했다”고 허 전무는 말했다.
“평소 사무실에 당시 드물었던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을 구비해 놓았고, CNN 같은 뉴스 채널도 보면서 세계 정세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당선자는 목표를 위해 묵묵히 기다릴 줄도 안다. 서울시장 시절인 2003년 10월 독일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이 당선자는 도이체 방크 부사장, 코메르츠 방크 부사장 등 프랑크푸르트의 유력 금융인과 언론인들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서울 상암동에 조성 중이던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국제자본이 적극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였다. 오찬을 마친 이 당선자는 다음 일정으로 자리를 옮기고자 승용차에 올랐다. 이때 밖에 있던 코메르츠 부사장이 다른 오찬 참석자와의 대화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차량 진행방향을 가로막는 줄도 몰랐다.
수행원이 길을 내 달라고 말하려고 차에서 내리자 이 당선자가 말렸다. 5분 이상을 그렇게 기다렸다고 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내가 초대한 손님이 용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예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이 당선자를 수행한 강용진 박사는 말했다.
영어가 잘 따라줘야 인맥도 붙는다. 앞서 두바이 국왕과의 면담에서 그랬듯이 이 당선자의 영어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데 지장이 없어 보인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2006년 3월 워싱턴 방문 당시 특파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특파원이 이 당선자가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받아낼 돈은 확실하게 받아낸다. 그러면 됐지 않으냐”고 답했다. 외국의 빚쟁이를 영어로 닦달할 정도로 자신 있다는 말이다. 임성빈 국제관계 특보는 “당선자가 비즈니스 영어를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런 일도 있었다. 서울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6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연사로 초청을 받았다. 숙소에서 행사장까지는 1㎞ 남짓한 작은 길이 있었다. 차로 가기엔 가까워 일행과 함께 걸어간 그 길이 거의 1시간이나 걸렸다.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악수하고 안부를 전하느라 지체됐던 까닭이다.
빌 게이츠 MS 회장, AIG금융그룹의 마틴 셜리번 회장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 10여 명과 우연히 만나 인사를 나눴다고 2005년 9월부터 이 당선자 해외 순방을 수행한 박대원 외교특보는 전했다. 대부분 현대그룹 재임 시절과 국회의원으로 있는 동안 사귄 인맥들이다.
이 밖에도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퓰러 이사장, 러시아 연방 내 칼믹공화국 일륨지노프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등도 가깝게 지낸다. “저명인사들과 영어로 대화할 정도면 영어 구사능력이 짐작되지 않느냐”고 박 특보는 말했다.
당선자와 입사 동기인 박재면 전 현대건설 회장은 이명박 당선자의 영어실력보다는 강인한 체력의 ‘스포츠 접대’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싱가포르의 어느 회의에서 ‘bilateral’(쌍방의)과 ‘unilateral’(일방의)의 뜻을 헷갈려 할 정도로 영어실력은 평이했다고 기억한다.
당선자가 현대건설 사장이고 박 전 회장이 부사장이던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들과 테니스를 즐겨 쳤다고 한다. 어떤 날은 발을 삐고서도 주변의 만류를 듣지 않은 채 사우디 왕자와 밤새도록 테니스를 쳤다. 그 다음날, 왕자와 둘이서 회의에 들어간 당선자는 하루 만에 공사를 따내는 집중력과 체력을 보여줬다.
이처럼 이 당선자는 곳곳에서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축에 속한다. 이 당선자와 서울시 직원 10여 명이 2006년 1월 다보스의 태국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직원 중 한 명이 태국 여주인에게 영어로 더듬더듬 식사 주문을 하자 이 당선자가 끼어들었다.
일행 10여 명이 먹을 요리를 태국말로 술술 주문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현대 입사 후 첫 근무지였던 태국에서 배운 말의 일부를 그때까지 잊지 않은 덕이다.
“40년도 더 된 말을 기억해 내는 걸 보고 기억력이 비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박대원 외교특보는 말했다. 다른 이들도 수긍한다. 허철 현대택배 전무는 이 당선자가 “기억력이 뛰어나며, 두뇌회전이 빠르고 판단이 명석하다”고 기억했다.
당선자와 함께 호흡해 본 인사들은 당선자의 더 큰 장점으로 국제적 균형감각을 꼽기도 한다. 임성빈 특보는 “당선자는 보편적인 국제 시각에서 우리나라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뛰어나다”고 말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객관화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국제사회에서 남과 대화하려면 먼저 자신과 한국에 대한 시각이 건전하고 현실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2006년 3월 서울시장 자격으로 워싱턴을 방문한 당선자는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웬디 커틀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측 수석대표와 만났다. 이 즈음 국내에서 반FTA 시위가 한창 고개를 들었다.
당선자는 이들과 만나 한·미 FTA가 반드시 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여론이 들끓고 있어 입장표명을 자제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본인의 소신을 숨기지 않았다”고 박대원 특보는 말했다. 연장선상에서 국내 여론의 변덕이나 굴곡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강용진 박사는 전한다.
어떨 때는 오만해서 민족자주를 부르짖다가, 어떤 때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휩싸이는 국내 정서적 기복을 못마땅해 했다고 한다. 강 박사는 “자신이 현대에서 성공해 한국인이라는 긍지는 대단하지만 의식적인 측면에서 한국 의식의 세계화는 더 발전해야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조깅, 테니스, 수영 등으로 건강을 챙긴다. 해외출장 길에도 매일 오전 5시면 일어나 달리기를 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골프채는 거의 잡지 않는다. 한마디로 시간이 아까워 골프를 안 친다고 한다.
서울시장 시절에는 자신은 물론이고 공무원들이 골프에 빠지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할 일 많은 공무원들이 골프나 쳐서 되겠느냐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고 주변에서 전한다.
국제감각과 열정에 비해 사람의 처지를 배려하려는 노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현대 시절 해외출장 때는 아랫사람의 고충이 심했다. 비행기를 타더라도 당시 이명박 회장은 일등석을, 비서진은 이코노미석을 타게 마련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일등석 승객이 내린 뒤 이코노미석 승객이 내린다. 비서진이 짐을 찾고 세관을 통과해 공항 밖으로 나오면 일찌감치 나와 기다리던 이 회장은 꾸물댄다고 야단치기 일쑤였다고 허철 전무는 돌이켰다. “시간 허비를 아까워한 습성 때문”이라고 허 전무는 풀이했다.
중앙일보의 이여영 기자가 지난 11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목격담에도 세심한 배려가 아쉬운 이명박 당선자의 일면이 보인다. “모든 토론이 영어로 진행된 이번 포럼. 진행 요원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시통역 이어폰을 가져와 이 후보의 귀에 걸어주려 했다.
이 후보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순간적으로 진행요원의 손을 탁 쳤다. ‘괜찮습니다’ 하고 웃으며 말해 줬으면 보기에도 더 좋았을 텐데, 배려의 마음으로 통역기를 가져다준 그분의 표정이 왠지 민망해 보였던 것은 내 착각일까. 꼭 사장님에게 혼나는 말단 직원의 모습 같았다.”
물론 어려운 이를 보살피며 따뜻한 정을 나눌 줄도 안다. 한·중 수교 전의 일이다. 현대건설 이명박 회장 비서실에 지린성 조선족 청년이 부친 우편물이 왔다. ‘한국문화와 문학을 알고 배우려는데 책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며 책을 보내 달라는’는 사연이었다.
비서실에서는 별다른 반응을 기대하지 않은 채 이 회장에게 편지를 전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이 회장은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직접 몇 권의 책을 골라 서신과 함께 보내주라고 지시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 청년과 이 회장은 몇 달에 한 번씩 편지를 교환하는 사이가 됐다.
한 측근 인사는 상당기간 지켜본 이 당선자의 특징을 이렇게 조명했다. “이 당선자는 기업마인드를 가졌다. 그러나 너무 과도할 정도로 기업주의적이다. 또 사업가여서 된다 싶은 건 일단 모방하려 드는 심리도 있다.” 지난 9월 말 공식 발표까지 하고서 무산된 부시 대통령 면담 계획도 이런 범주에서 이해된다.
반면, 서울대 조동성 교수는 당선자를 “국제적인 활동이 생활이 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당선자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리라고 말한다.
“한국은 사람을 틀에 집어넣어 보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판한다. 아무리 잘해도 한 가지를 못하면 꼬집어댄다. 외국은 전체를 보며, 부분을 트집 잡지 않는다. 이 당선자는 그런 사회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한편, 허철 현대택배 전무가 지난 11월 펴낸 신앙 에세이 ‘네 인생의 라스트 피치를 올려라’는 이 당선자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오래된 인연을 소개한다. 1980년대 중반 서울 계동 현대 사옥 6층 현대건설 회장 비서실에 방송국 기자가 문을 두드렸다.
당시 현대건설 이명박 회장은 직장인들의 우상이자 정주영 명예회장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촉망 받는 CEO로 언론의 단골 취재원이었다. 카메라 기자와 함께 접견실 문을 두드린 사람은 문화방송(MBC) 정동영 차장이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인터뷰에 앞서 30분 일찍 정동영 차장이 도착했다. 두 사람은 차를 함께 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 말미에 정 차장이 앞으로의 소망을 물었다.
“국가 발전의 장래는 인재 육성에 달려 있다. 기회가 되면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을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새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다”고 이 회장은 말했다. 담소를 나누던 그때만 해도 두 사람이 상상이나 했을까. 20년 후 대통령직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일 거라고.
박성현·류지원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psh@joongang.co.kr
곽중철 (2008-01-07 10:21:50)
"Place me in your eyes and close, Let me in your eyes live.”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셰이크 모하메드 두바이 국왕과 속마음을 터놓게 된 시의 첫 구절이다. 이 당선자는 한나라당 대선주자 시절이던 2007년 4월 두바이의 국가경영 전략을 알아보고자 이 도시를 찾았다...
(주) 당시 이 후보를 수행 통역했던 우리 통대 26기 졸업생도 그 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답니다....
곽중철 (2008-01-10 15:59:33)
이 당선자, 힐 면담자리서 영어실력 '과시'
李당선인-힐 면담 `화기애애'
서울시장-주한대사 시절 얘기꽃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의 10일 면담은 시종 화기애애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당선인은 지난달 당선 직후 한반도 주변 4강 주한대사들의 예방을 받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와도 국제전화로 통화를 하는 등 외교무대에 선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는 대선 축하를 겸한 상견례 차원이었다면 이날 면담은 힐 차관보가 특사는 아니지만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갖고 오는 등 사실상 특사 자격으로 방문했다는 점에서 공식 외교 행보의 첫 시험무대라는 의미가 컸다.
힐 차관보 입장에서도 북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 1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새 정부의 외교기조나 대북정책의 변화 등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듯한 태도였다.
이 당선인은 이날 만남에서 그의 ‘실용외교’ 구상을 설명하고 북핵문제 해결과 6자회담에서 한.미간 공동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한.미간 전통적 우호관계의 복원 및 공고화의 필요성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 공개한 이날 모두발언은 개인적 친분을 거론하는 등 웃음이 묻어나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이 당선인은 별도 통역없이 직접 대화를 나눌 정도의 영어실력을 ‘과시’했다.
이 당선인은 접견실에 들어선 뒤 힐 차관보를 향해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인사했고, 헨리 해거드 주한 미 대사관 1등 서기관에게도 “선거 때 고생했다”고 격려했다.
이에 힐 차관보는 “제가 주한미국 대사로 있을 때 당선인이 저를 서울명예시민으로 해준 것을 잊지 못하고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말한 뒤 “제 딸도 서울광장에서 스케이트 타던 일을 있지 못한다. 그 때 제 딸이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을 많이 이용한 사람으로 선정됐던 것을 지금도 얘기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당선인이 “따님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미국으로 돌아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일하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하기도 했다.
힐 차관보는 이어 “지난주 금요일 부시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동안 한국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눴다”며 “부시 대통령은 당선인과의 (지난달) 통화를 매우 즐거워했다”고 친근감을 표시했다. 또 갑자기 골프 얘기를 꺼내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굿(good) 골퍼’라기보다는 ‘패스터(faster) 골퍼’다. 18홀을 금방 돈다”고 말하기도 했다.
뒤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 힐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하면서 취임식 사절단을 언급하는 등 공식적인 대화로 넘어갔다.
힐 차관보는 “부시 대통령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문을 연 뒤 “빠른 시간 안에 미국을 방문해서 대화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 당선인의 방미를 공식 초청했고, 이 당선인은 “부시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위한 각별한 초청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힐 차관보는 이어 “취임 경축 사절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보낼 계획이 있다”고 전했고, 이 당선인은 “대단히 환영한다”고 말했다.
북한 인권문제와 핵폐기 문제도 화두에 올랐다.
이 당선인은 “북한 인권문제는 전략적 차원이 아니라 인류적, 보편적 가치에 입각해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힐 차관보는 북핵문제와 관련, “새 정부 출범 전에 핵문제에 관한 완전한 신고절차가 이뤄지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폐기단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면담은 힐 차관보가 “(양국의) 두 대통령이 조속한 시일 내에 만나서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기를 기대한다”고 재차 조속한 방미 초청의사를 피력하면서 45분여만에 마무리됐다.
면담에는 당선인 대미특사로 선임된 정몽준 의원과 박진 인수위 간사, 주호영 대변인, 임태희 비서실장, 권종락 당선인 보좌역이, 미측에서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 대사, 폴 헨리 미 NSC 6자회담 담당과장,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등이 참석했다.
입력 : 2008.01.10 11:30 / 수정 : 2008.01.10 15:13
곽중철 (2008-01-16 14:31:08)
MB의 ‘서바이벌 잉글리시’
“어! 어서와요” → “어! 유아 베리 웰캄”
유려하진 않아도 농담할 정도
“어! 유아 베리 웰캄(you’re very welcome).”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로 당선 축하 인사를 온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에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순간 취재진에서 나지막한 웃음이 터졌다. 억양이 이 당선인이 경상도 사투리로 “어! 어서 와요”라고 말할 때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틀렸다곤 할 수 없지만 “유어 웰컴”이 주로 “천만에”라는 뜻으로 쓰이는 만큼 어색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버시바우 대사와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원어민 외교관이 구사하는 수준 높은 영어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시했다. 그러고는 어렵지 않은 어휘와 표현들을 엮어 가며 막힘없이 자신의 뜻을 전달해 냈다. 두 사람 간에 빠르게 오가는 대화를 지켜보던 주변의 태도는 금세 바뀌었다. 이처럼 이 당선인의 ‘생존 영어(Survival English)’ 실력은 수준급이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보좌해 온 한 측근은 “유려한 영어솜씨는 아니지만 이 당선인이 외국인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며 “영어로 농담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선 당시 캠프가 배포한 이 당선인의 신상명세 중 ‘외국어 실력=영어(대화 가능)’는 이런 평가를 점잖게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이 당선인은 영어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5일 주한 외국투자기업 신년 인사회에서도 영어로 연설을 했다. 지난해에도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선 영어로 연설한 뒤 질의응답까지 했다. 서울시장 자격으로 2006년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통역 없이 행사장을 누비며 영어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대선 직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당선인은 영어를 잘하는 일 중독자”라고 보도했다. ◆"말하기보다 듣기 능숙한 현장 영어”=이런 이 당선인의 영어실력은 현장에서 다져진 것이다. 국내 어학교육이 신통찮던 1960년대 중반 현대그룹에 입사해 70년대 초부터 세계 각국을 누비며 비즈니스 현장에서 영어를 배운 것이다. 한 측근은 “경험으로 배운 영어라 그런지 이 당선인은 말하기보다 듣기에 능숙한 것 같다”고도 말했다. 이 당선인은 공식 행사의 영어 연설문 작성은 자문교수단의 도움을 받고 있다. 국내 최고 외교영어 전문가로 꼽히는 연세대 국제대학원 이정민 교수가 그중 한 명이다. 남궁욱 기자 [J-HOT
곽중철 (2008-01-16 15:05:59)
이명박 당선인 “한국에 투자하라… 어려움 풀어주겠다”
“여러분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 대신 나는 여러분의 어려움을 풀어 주겠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CEO) 특유의 기지와 매너로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 당선인은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주한외국인투자기업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 한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당초 이 당선인은 한국어로 연설할 예정이었지만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영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이 당선인은 파워포인트로 소개된 경제성장률 추이 등을 설명하며 “한국이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민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여러분과 같은 외국 기업인들이 도와준 결과이기도 하다”며 참석자들을 치켜세웠다.
이어 그는 “제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보잉) 747’ 비행기를 탄 까닭이 아니라 ‘747’로 알려진 경제정책 공약 때문이었다”며 본론에 들어갔다.
이 당선인은 747공약(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 강국)의 의미를 설명하며 “한국이 고성장을 회복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고 세계 시민으로서 응당한 의무를 다하면 G7국가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그는 747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며 “여러분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애정 어린 조언과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한국 경제정책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부족하고 소득세가 높고,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정책 결정과 집행의 괴리, 과거 정부의 법치주의 훼손 등을 지적했다.
그는 “솔직히 말씀드려 이런 문제를 단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은 최단 시일 안에 해결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정책 과제를 정리하고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미 오버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대표는 “대통령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직접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shocked)”며 “파워포인트로 만든 자료가 마치 사업 설명회를 하는 것처럼 알기 쉬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요베 쓰네오(伊與部恒雄) 서울저팬클럽(SJC) 이사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일반 기업 CEO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며 “더 큰 기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윌리엄 오벌린 AMCHAM 회장, 한스 베른하르트 메어포르트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회장대행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당선인 측에서는 임태희 비서실장, 주호영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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