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현장 이야기

[문화비전] 나는 왜 번역을 하는가(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7-12-10 11:58 조회3,254회 댓글0건

본문

서 숙 이화여대 교수·영문학

 입력 : 2007.12.07 22:53

작년 여름에 번역 발표한 미국 소설로 생각지도 않았던 상을 받게 되었다. 미국 소설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지난 20여 년간 영미 소설을 10여 권 번역했다. 두어 권은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았고, 나머지는 혼자 좋아서 시간과 기운을 내어 조금씩 번역했다.

작품을 고를 땐 기준이 있다. 재미와 교훈을 갖춘 문학성은 기본이다. 우리 말로 첫 번역인지, 혹시 소개되었더라도 다시 하고 싶은 것인지, 언어적 훈련과 정서적 몰입이 강한 것인지도 중요한 기준이다. 원어로 된 책을 읽고 우리 글로 옮기고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는 일은 외국 문학 전공자가 누리는 호사(豪奢)이고 의무이다.

‘번역은 일종의 거울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번역을 하면서 다름 아닌 나 자신을 알게 된다는 뜻에서 그렇다. 영미 소설을 우리글로 옮기면서 제일 큰 낭패를 겪을 때는 우리말에 대한 내 무지와 부딪칠 때이다. 어려운 영어 문장은 다음 일이다. 영어가 어렵다 한들 남의 나라 글이니 배우면 되고 그들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정작 우리글의 어휘와 문법을 잘 모를 때는 그 자괴감을 견디기 어렵다. 별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과는 잘도 웃고 떠들면서 정작 제 부모 또는 자신과는 불화(不和)하는 그런 경우인 것이다.

우리글에 대한 무지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다. 이는 개인적이면서도 세대적인 것이다. 윗세대의 자산이던 한문과 단절되고 일본어의 후유증 속에서 영어를 배운 해방 첫 세대. 구체적인 삶의 터전은 절반으로 축소되었고, 타의(他意)에 의해 좁아진 공간에서 부대끼며 삶이 왜소해질 때 자기 글과 말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을 존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번역이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번역되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고유성을 확인받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이 달라도, 피부색과 성별이 달라도 그들 역시 우리처럼 거대 조직 속에서 함몰되지 않고 자신을 지키고 고뇌하고 모색하고 도전하기도 한다. 나와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유대감이 탄생한다.

근대(近代)가 번역을 통해 타자(他者)를 알고 모방하면서 형성되었다면 지금 세계는 영상 매체와 인터넷으로 무장하고 전(全)지구적, 탈(脫)경계적 차원으로 진입하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차이와 획일화를 동시에 두려워하면서. 우리들 개인 개인이 직면한 과제는 이 같은 글로벌 논리를 꿰뚫고 삶의 진정성을 지켜내는 일이다. 혼자가 아니라 공동 전선으로.

번역은 이처럼 전지구적 획일화가 우려되는 탈경계사회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개인의 삶의 진정성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외국어를 모국어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낯선 풍습과 문화를 우리 언어 질서로 녹여 들이는 작업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만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창작 행위가 나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면 번역이 나를 변화시키는 제2의 창작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사회의, 특히 대학의 번역 환경은 반(反)창조적이다. 학문적·예술적 수월성을 검증받은 작품들을 공들여 번역해도 연구 업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번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제도가 개선되어 전공자들이 제2의 창작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어라는 민족어를 쓰는 우리가 거대한 글로벌 쓰나미에 실종되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며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길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