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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오역-반역(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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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8-05-17 10:14 조회2,7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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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오역-반역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좌우명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붓글씨로 써서 선물했다. 박진 당시 공보비서관이 “큰 길에는 정문이 없다”는 뜻이라고 그 뜻을 영어로 직역했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고 의역했지만 여전히 그는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생각 끝에 “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는 의미”라고 미국식으로 설명했더니 비로소 클린턴 대통령이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영국에 ‘번역자는 반역자(Translators, traitors.)’라는 속담이 있다. 특정 언어로 된 문장이나 문서를 같은 뜻의 다른 나라 말로 정확하게 옮기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다. 번역과 통역은 원어에 충실하되 상대방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옮기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반면, 통역이 즉석 재치를 필요로 한다면 번역은 원문의 내용에 관한 전문 지식을 요구한다. 최근 ‘고품격 영어상식 칼럼 100-관사편’을 펴낸 이윤재 한반도영어공학연구원장은 신문 기고문을 통해 오역에 무심한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학자들의 칼럼을 보면 장애인을 지칭하는 ‘피지컬리 챌린지드(physically challenged·육체적 어려움에 맞서는)’를 ‘신체적으로 도전받는’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대로 하면 ‘장애인이 정상인에게 신체적으로 도전받는’이라는 주객전도가 된다.” 그는 이런 경우를 오역도 훨씬 넘어 반역(反譯)이라고 했다. 원래의 의미와 정반대로 번역했다는 말이다. 이 반역은 근본적으로 무지하거나 소명 의식이 없을 때 나타난다.

영어로 쇠고기(beef)라는 단어는 ‘불만 사항’이라는 속어로도 쓰인다. ‘비프 세션(a beef session)’은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는 파티가 아니라 불만 사항을 털어놓고 해결책을 찾는 간담회라는 뜻이다. 그래서인가. 동물성 사료금지 완화 조치를 담은 미국의 관보 내용을 우리 정부가 오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문을 둘러싼 국민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고노 이치로(河野一郞) 도쿄외국어대 명예교수의 말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번역가는 단순히 외국의 콘텐츠를 소개하고 번역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관점에서 융화할 수 있는, 정확하고 올바른 번역을 추구하는 소명 의식이 필요하다.”

[[황성규 / 논설위원]]

기사 게재 일자 200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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