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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어느 번역가의 화형식(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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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8-10-07 10:24 조회2,5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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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사일언] 어느 번역가의 화형식
                              원영희·성균관대 대학원 번역학과 대우교수

 올해 초만큼 번역이 우리 사회 전반에 민감한 주제어가 된 적도 드물다. 한 가지 용어를 어떻게, 왜 그렇게 번역했느냐는 추궁에 가까운 질문과 갖가지 변명에 가까운 대답으로 한동안 나라 안이 떠들썩했다. 번역은 언제나 문제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번역엔 언제나 문제가 있다. 원문에서 얻고자 하는 정보의 중요성이 개인마다 다르듯이, 번역가가 원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옮겨야 하는 정보의 무게를 잴 때, 외적 압력과 번역가 개인의 도덕성이 번역문에 영향을 주므로 사실 전달에 형평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문자 대 문자(word to word) 번역인 직역 혹은 축자역(逐字譯·literal translation)으로부터 번안(adaptation)에 이르기까지 아주 넉넉한 번역의 범주가 번역가에겐 오히려 저주일 수도 있다.

게다가 번역가는 아주 작은 단어가 나라를 뒤흔들 만큼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개념이라 해도 주어진 원어에서 번역어로 옮겨야만 한다. 원문 종류도 문학작품은 물론 논문, 외교문서에서 계약서, 노래 가사, 그리고 영화 자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번역가는 매 순간 최고 결정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책임에 따른 희생도 각오해야 한다.

1546년 8월 초. 파리 모베르 광장에서는 얼마 전까지 가장 능력 있는 번역가로 불리던 에티엔 돌레(Etienne Dole t·1509~1546)의 화형식이 있었다. 37세의 돌레는 이미 많은 저술과 번역을 했는데 단 몇 줄의 두드러진 신학적 오역 논란으로 인해, 그리고 그의 능력을 질시하는 이들의 음모로 인해 한줌의 재가 되고 말았다. 때론 생명을 걸기도 해야 하는 번역. 오늘의 번역가들은 과연 무엇을 걸고 번역을 하는가?

입력 : 2008.10.06 22:45 / 수정 : 2008.10.0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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