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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스무 살 박상영이 펜싱을 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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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8-11 13:05 조회6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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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동서남북] 스무 살 박상영이 펜싱을 즐기는 법
 민학수 스포츠부 차장 입력 : 2016.08.11 03:15

리우올림픽에서 믿기 힘든 대역전극으로 금메달을 딴 남자 에페 박상영은 경기장을 떠나며 좀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

스무 살인 그는 "올림픽은 최고의 축제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즐기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대회를 앞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선수는 많이 봤지만 경기 중에, 그것도 사실상 패배가 눈앞에 어른거리는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한국 선수는 달리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가 5연속 득점으로 4점 차 열세를 뒤집는 마지막 2분 24초는 절대 몰입의 경지였다. 다 잡은 승리를 놓친 헝가리 선수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큰 점수 차를 잘 따라가다가도 의문과 기대가 슬며시 고개를 들며 마음의 평정이 깨지고 고비를 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날 박상영처럼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몰입해 마지막까지 최고의 기량을 펼치는 건 스포츠 심리학과 멘털 트레이닝이 꼽는 최고의 경지(境地)다. 영어권에선 이런 상태를 두고 '존(zone)에 들어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며칠 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꿈의 타수라고 불리던 한 라운드 58타를 친 짐 퓨릭이 "내 몸 안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경기를 하는 것 같았다"고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타이거 우즈와 마이클 조던 등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은 '승부를 즐긴다'는 말을 자주 했다. 마음을 내려놓고 몰입의 경지에 최대한 오래 머물고 싶다는 뜻이었다. 박상영은 주변의 따뜻한 도움으로 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을 쌓을 수 있었다고 했다.

리우로 가기 전 이야기를 나눠본 선수 중 가장 솔직하다고 느낀 선수는 여자 양궁의 기보배였다. 런던올림픽에서 2관왕에 올랐던 그에게 올림픽에 처음 나가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세계인의 축제라는 올림픽에 가보니 그 들뜬 분위기에 마음을 가라앉히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훈련한 만큼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올림픽을 어떻게 즐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습하다 밤을 새우기도 하는 기보배에게 올림픽을 즐긴다는 건 실전도 연습처럼 활을 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로 리우올림픽을 즐기고 있다.

리우올림픽 초반 한국은 기대만큼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세계 1위가 즐비한 유도에서 아쉬운 패배가 많았고 여자 핸드볼 등 여러 구기 종목에서 체력 열세를 드러내는 모습이 안타깝다. 땀방울보다 더 굵은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는 선수들이 자주 눈에 띈다. 팬들은 "올림픽 무대에 선 당신들은 이미 영웅"이라며 격려를 보내지만 그래도 아쉬움을 어쩌지 못한다.

운동에만 모든 걸 걸어야 살아남는 우리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에서 선수들의 이런 반응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박인비와 손연재, 양학선 등 많은 선수의 심리 상담을 했던 조수경 박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우승 같은 결과 자체만을 목표로 삼아온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결과가 나쁘면 쉽게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목표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요"라고 했다. 우리 선수들이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데서 행복을 찾으라'는 멘털 트레이닝의 1장 1절을 되새기며 올림픽을 끝까지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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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곽중철 (2016-08-12 12:13:33) 
 
그가 5연속 득점으로 4점 차 열세를 뒤집는 마지막 2분 24초는 절대 몰입의 경지였다. 다 잡은 승리를 놓친 헝가리 선수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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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누군가에게 헝가리 선수같은 경험을 하게한 적이 있다. 1983년 6월, 파리 통역대학원(ESIT)에서 3년의 유학을 결산하는 졸업시험에서 순차/동시 통역용 한국어 연설 두 개를 읽어준 사람은 나의 합격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전두환대통령 아프리카 순방 출국 성명]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읽어내려갔다. 시험장에 한국인이라고는 그와 나 뿐이었다.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 다른 사람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연설문이 많지 않던 시절, 그 연설은 내가 우연히 몇 번이고 연습해본 것이었다. 내가 못 따라오리라고 맘놓고 성의없이 읽어 내려가던 낭독자는 당황했다. 더 빨리, 더 불분명한 발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20여분간을...

나는 당시 독이 올라있었다. 박상영 선수처럼 즐기기는 커녕, 시험에 떨어지면 인생이 끝난다는 절박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학생 근시와 망막염으로 눈 앞의 사물이 두 개로 보이고, 앞에 않은 심사위원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읽는 속도가 더 빨라져도 내 동시통역은 좀비처럼 그의 낭독 속도를 따라 갔으리라. 낭독관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으리라", 헝가리 선수처럼.

통역이 끝난 후 한국어를 모르는 심사위원들에게 낭독자가 불어로 연설내용을 브리핑하면서 "이 말도 통역됐나요? 이 말도 통역했나요?" 하면서 계속 고자질하듯 했으나, 시험관들은 "다 통역이 되었다"고 확인하면서 20만점에 18점을 주었고, 나는 합격했다. 그 날 합격자는 탄자니아 남학생과 나 둘 뿐이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티타임에서 심사위원장이 나와 악수하며 "My colleague!"라고 축하할 때, 낭독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내가 합격했음을 알고 실망해 떠나버린 것이었다. 박상영에게 그런 훼방꾼은 없었기 때문에 그는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어느 경우가 더 어려웠을까?

다른 신문을 보니 박 선수 모친이 전국의 사찰에서 108배를 했다고 한다. 내가 합격소식을 국제전화로 고향의 부모님께 알렸을 때, 어머님은 "어제 밤 꿈에 촛불 하나가 폭포 수 밑에서 꺼지지 않고 타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강의하면서 제자들에게 "집중하라, 진도개처럼 물고 늘어져라. 호랑이에 물려가도 바짝 정신차리면 산다"고 하는 얘기는 산 체험에서 나오는 말이다.

참 오랜만에 33년 전 얘기를 했다... 
 
 
 

dimartino (2016-09-05 19:30:17) 
 
그 한국인 낭독자는 같은 한국인으로서 왜 그랬는지.. 동양인 최초로 파리 통번역대학원 한-영-불 국제회의 졸업생이 같은 한국인이 되는것이 배가 아팠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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