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번 째 겨울에 돌아보는 옛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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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2-14 13:52 조회1,35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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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의 추억 - 외대 통역대학원 한영과 교수 곽중철 -
새해 초에 제출해야 하는 두가지 논문을 쓰려 학교에 나왔는데 일손은 잡히지 않고 자꾸 상념만 떠오릅니다. 그 중 한가지는 파리 유학시절 겨울 방학에 스키 여행을 떠났던 일. 유학생활에 여유가 있어 그랬던 게 아니라 네 커플이 모여 숨막히는 파리를 탈출하려 함께 염가 스키 여행을 떠났던 겁니다.
유학시절이 자꾸 기억되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아쉬움이 많은 기간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유학 온 후 두번째로 맞은 동계 방학---당시 공부가 너무 힘들어 같은 동네 옆 아파트에 사는 공학도 부부의 인도로 파리 시내 순복음 교회에 나가 난생 처음 기도를 했습니다.
거기서 만난 세 부부가 의기투합해 스키여행을 가기로 하고 장소는 스위스 남부의 씨옹(Sion)이라는 쥬라 산맥에 있는 도시로 정했습니다. 산장(chalet)의 콘도 하나를 빌렸고 공학도의 후배 한사람과 처녀 신도 한사람도 끼여 총 네 커플이 되니 부담이 크지 않았습니다.
두 차량에 나눠타고 도착해보니 가격에 비해 새로 지은 산장은 통나무 집으로 따뜻하고 깨끗했습니다.
스키 장비와 리프트의 렌탈 가격도 싸 유럽은 역시 우리나라보다 살기 좋은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는 부유한 특권층만 스키를 탔기 때문에 우리 중 제대로 스키를 배운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모두들 스키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스키를 빌려 기초 강습도 받지 않은 채 리프트를 타고 산을 올라갔습니다. 리프트로 가다가 넘어지고. 리프트를 타다가 넘어지고, 내려 오다가는 수없이 넘어지고...
그래도 그때는 젊었기 때문에 스스로 깨우치면서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둘째날 리프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고 여유가 생겨 노래까지 흥얼거렸는데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가 절로 나왔습니다.
해가 지면 산장에 내려와 준비해간 한국 음식을 끓여 먹고 벽난로에 둘러앉아 깔깔대고 웃으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지요. 엉터리라도 스키를 배웠다는 자부심에 모두들 흐뭇했습니다.
귀국 후 우리를 교회에 인도했던 조 박사는 백혈병으로 갔습니다. 그가 입원한 경희 대학병원에 갔을 때는 면회도 되지 않았지요. 파리에서 얻은 아들까지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가 이 세상에 살기에는 너무 착하다고 일찍 데려가신 것일까요?
또 한사람은 대전에 있는 충남대학의 경제과 교수가 되었고, 후배 공학도는 카이스트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있던데 늦게 나마 결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짝이었던 처녀는 파리 지사원과 결혼해 귀국해 아들 딸 낳고 '아줌마'가 되어 있답니다.
나는 귀국 후 1995년쯤 강원도의 피닉스 파크에서 다시 스키를 배웠습니다. 여유없이 살다 보니 제대로 배운 스포츠가 없었는데 2년에 걸쳐 초급, 중급 과정을 밟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15년전 스위스에서는 어떻게 리프트를 타고 올라 갔을까 궁금해지더군요.
같이 갔던 친구들과 젊었던 그 시절이 그리웠던 것은 물론입니다. 그래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노래보다는 추억에 젖었지요.
이제 내 나이에 스키를 타다가 다리를 부러뜨리는 예를 많이 보기 때문에 스키 타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스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아쉬움 보다는 그렇게 살았지만 왜 주위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더 자주 만나며 더 신경을 써주지 못했을까가 더 후회되는 49살의 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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