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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야기

언론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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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4-02-03 00:00 조회3,5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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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에서 자주 쓰는 말에 <언론 플레이>란 것이 있습니다.
언론 플레이란 언론이 자연스레 취재해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언론에 자신이나 자신의 업적이나 주변 상황을 알려
 자기에게 유리하게 보도되도록 조작하는 거지요.
자신이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시론>등의 형식으로 기고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현대는 자기 PR의 시대>라고,
어느 정도의 언론 플레이는 필요할 때도 있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도 지난 몇 년동안 지칠 줄 모르고
 언론 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잊을 만하면 언론에 나타나 동료들을 심란하게 합니다.

그 환멸은 무엇보다 아래와 같이
<자기 PR>의 항목이 빤히 정해져있다는 데서 옵니다.
이런 속물 근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표현은
<한국 최초>란 말입니다.

1. 나는 이 분야를 한국 최초로 공부해
20여년 동안 독보적 위치를 지켜왔다
---(주위 동료들이 인정해줘야하는데
 자기만 그렇다고 주장합니다. 문외한인 기자를 속이고
 몽매한 독자들을 오도하는 거지요).

2. 외국에서 <한국 최초>로 이 공부를 한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이 때 외국에서 혼자 공부를 했기에
 외국 학교의 동정을 받고, 다른 한국 학생과의 경쟁이 없어
 쉽게 독무대를 만들 수 있었음은 결코 인정도, 자각도 못합니다).

3. 나는 지금도 국내에서 외국 유학 시절만큼 공부를
 하고 있다. 그래서 내 통역은 완벽하고
 통역상 실수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먹고 사는 사회생활은 언제 합니까?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직접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불만이고
 같이 통역해본 후배들은 쉬쉬합니까?)

4. 나는 정상회담을 많이 통역했다
---(정상회담을 통역해 본 사람은 많습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정상회담 통역 경력을 20년 가까이 자랑하면서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었다고 떠벌립니다.
그 나라 외교부에서
<이번부터는 우리나라에 체재하는 당신 후배 통역사를
 쓸테니, 당신이 굳이 서울서 비행기 타고 올 필요없다>고 하는데도
<내 돈으로라도 갈테니 꼭 날 계속 써달라>고 해놓고
<모든 양국 정상회담은 그 나라의 간곡한 요청으로 내가 통역했다>고
 하는 것은 정말 <눈가리고 아옹>이지요.

또 정상회담은 꼭 어려운 것도 아니며,
통역사의 역할은 <서비스>에 불과합니다.
국가 기밀을 많이 알게 됐지만
 통역사 윤리 때문에 입을 다문다고요?
진짜 국가 기밀이나 비밀스런 중요한 얘기는
 통역사를 쓰지 않고, 외무부 장관이나
 외교 안보 수석 등이 대신 하지요.
국가 정상들은 어찌 보면 애기들 같아서
 다른 전문가들보다 통역이 쉬울 경우도 많습니다).

5. 내가 쓴 박사 논문이 한국 최초, 최고의 논문이고
 내가 최초의 관련 박사 취득자이므로
 후배들은 모두 내 지도를 받아야한다.
내가 외국 모교의 강의를 맡는 등 잘나가니까
 사람들이 나를 시기해 모함했다.
---(최초의 논문인만큼 외국 학교에서 모르는
 한국어 얘기를 자기 맘대로 각색해 썼기 때문에
 그 논문을 구해본 후배들은 <발가락으로 써도 그만큼은 쓰겠다>고
 실망하고 있습니다. 학문이란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한이 없는 것인데 혼자 후학들을 지도합니까?
외국의 출신학교에서 한국인 후배들에게 지도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누가 시기했습니까? 이 말도 자가발전입니다.
외국서도 강의했음을 새삼 자랑하려는 수사법입니다.
그 강의에 재정지원은 누가 했습니까?
그렇게 주위의 혜택을 많이 받고도 자신만의 입신양명을 위해
 후배들의 앞길을 막은 것은 누굽니까?
그러는 동안 본인은 자신의 독무대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주위사람들을 시기하고, 서로 이간질하고,
모함해 이 학교를 떠나게 만들었습니까?)

6. 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최초의> 상훈을 많이 받았다
---한국 국내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을 기만해
 받아낸 상임을 부끄럽게 생각해야할 텐데
 지칠 줄 모르고 자랑합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상관하지 않고 자랑하는 그 후안무치가
 정상인들을 질리게 합니다. 어찌보면 외국의 상훈은
 조국의 이해관계를 저버리고 외국 편을 든 대가일 수도 있는데...).

7. 나는 관련 서적과 논문도 제일 많이 썼다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논문이나 저서는 없고
 엇비숫한 내용으로, 수필처럼, 상황 보고서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제사보다 젯밥에만 신경을 쓰는데
 어찌 깊이있는 연구를 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데...
최근 나온 우리 통역 연구소 논문집 7호를 봐도
 유난히 내용이 없는 논문 두개가 눈에 띱니다.
첫 페이지 밑에는 학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고 돼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학교 연구비는 그렇게 쉽게 써도 되는 겁니까? ).

8. 나는 사람들이 자꾸 불러대 너무 바쁘다
---(그런 교수들을 poli-fessor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학교에 있을 게 아니라 여의도로 가야합니다.
국회에, 정계에 진출해야합니다.
그래야 국가 전체 발전에 기여하지요.
학교란 무대는 너무 좁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교육방송에 나와
 자신의 전공도 아닌 영어를 잘하는 법을 강의해
tele-fessor가 되었더군요.
그러니 정작 자신이 맡은 과나 강의는 소홀할 수 밖에 없지요.
수업준비를 안해와 이렇다할 강의 내용도 없이
 또 제 자랑만 하고, 시험문제는 신뢰성과 공정성을 잃고,
결과적으로 자기과 학생들을 학교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들로 만듭니다.
학생들은 불평도 못하고, 그 잘 나가는 교수 눈치만 보며 살아야하니까요.
But charity begins at home).

 9. 나를 지도해준 외국 학교 교수를 잊을 수 없다
---(그 교수와 자신을 동일하게 보이도록 유도하는,
 <전이(轉移, trasnfer)>라는 선전 기법이지요. 그 교수가
 그 분야 세계에서 진정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는
 차후의 문젭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속아 넘어가지요).

10. 나는 부부관계가 좋고, 배우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적극
 후원하는 최고의 조력자다
---(누가 물어봤나요? 빈 수레가 요란하지요).

이처럼 자기 자랑을 하지 않고 못배기는 사람들은
 뿌리깊은 complex(열등감)가 있기 마련입니다.
신체적으로 유난히 작다든가 뚱뚱할 수도 있고,
일류 고교에서 공부를 잘했는데도 2차 대학에 들어왔지만
<난 죽지 않았다, 1차 대학 간 동기들보다 훨씬
 잘 나가고 있다>고 부르짖는 거지요.
도대체 지금이 어떤 시댄데 아직
 출신 고교가 자랑거리가 됩니까?

이런 사람들의 플레이에 놀아나는 언론도 문젭니다.
대부분 기자들의 약점은 외국어에 약한 것이기 때문에
 외국어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막연한 외경심을 가지고 관련 기사를 과대 포장합니다.
특히 새내기 기자들은 취재 대상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야 기사가 많이 읽히기에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합니다.
언론의 역기능 가운데 하납니다.

그 결과 수많은 고교, 대학생들이 재능과는 상관 없이
<나도 저렇게 돼야지>하는 현실성없는 꿈을 꾸며
 이루지 못할 목표에 시간과 정열을 투자합니다.
결국 국가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지요.

한 방송국 프로그램에 <성공시대>란 것이 있었습니다.
각계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방송 제작자들이
 잘난 점만 부각시키고, 과대 포장해
<이 사람은 완벽한 인간>으로 그려
 시청자들에게 열등감과 질투심을 유발하면서
 시청률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거기 출연한 지 얼마 안돼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많은 것은
 참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최근 체육계 인사 K씨도 아주 좋은 예입니다.

헛된 자기 PR은 꼭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무리하게 권력을 휘두른 사람들이 모두
 감옥에 가는 것과도 같은 이치지요.

우리 모두 속물 근성을 버립시다.
세상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 것이고
 하늘이 보기에 인간이란 얼마나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깨닫고
 자기 PR 좀 자제하면서,
겸손하게 삽시다.
물론 저 자신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곽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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