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중철 ㅣ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봉준호 감독의 통역사 최성재(샤론 최)씨는 특히 유튜브 채널에서 더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이 지난 1월 초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직후 할리우드 잡지 인터뷰에서 진행자는 봉 감독과 이야기하던 도중 지난해 5월 프랑스 칸 영화제부터 통역으로 각광받던 최씨에게도 소감을 물었다. 행사장에서 통역사가 개인적 질문을 받은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지난 수십년간 통역사 관련 보도는 아주 단편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통역을 맡아온 미 국무부 통역국장 한국인 여성이 지난 하노이 정상회담 때까지 한국 언론의 취재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기생충>이라는 영화와 함께 세기의 감독이 된 봉준호 덕분에 최씨의 인기는 그 미국 통역사에 대한 추억을 덮어버리면서 연일 유튜브를 도배하고 있다. 최씨 자신도 놀라고 있을 것이다.
그의 통역을 두고 일부는 비판적일 수 있으나, 한국 최초의 통역사인 필자도 최고의 평가를 내리고 싶다. 40년 통역과 통역 강의를 마치고 은퇴한 필자에게도 그의 통역은 놀랍다. 먼저 그는 전문 통역 교육을 받지 않았다지만 뛰어난 언어 감각을 지닌 타고난 통역사다. 미국의 한 사회자는 그가 봉 감독의 말을 받아 적는 작은 수첩이 비결인 것 같다며 행사 후 그 수첩을 갖고 싶다고 농담했지만, 그런 수첩이 다가 아니다. 수첩에 모든 말을 받아 적을 수가 없기에 그는 봉 감독의 말을 단기 기억력으로 다 머릿속에 담은 뒤 짧은 순간에 그 말을 분석해 자연스러운 영어로 옮기는 것이다. 통역 훈련과 상관없이, 감출 수 없는, 타고난 재주다.
그는 통역 이전에 한국어 분석 및 이해력이 거의 완벽해 보인다. 미국 대학을 나온 그는 미국 대학생들에 뒤지지 않을 어휘력과 자연스러운 표현력을 구사한다. 봉 감독은 자기 영화에 나올 배우를 캐스팅하듯 통역사를 골랐고, 멋지게 성공했다고 본다. 자신도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역사를 선발한 제1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그것이 영화에 대한 지식과 이해력이었다고 본다. 최씨는 직접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한 영화인이라 하지 않는가?
국내외 영화인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아무나 이해할 수 없고 특히 최고의 국제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하며 같은 수준의 전문용어와 속어를 구사하는 봉 감독의 말을 통역하려면, 30년 가까이 연상인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거나 그의 이마 위에 앉아 있어야 한다. 최씨는 그렇게 통역을 했다.
통역의 성패는 우선 말을 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봉준호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고 통역의 어려움과 민감성을 알고 통역사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최씨는 지난 7개월 동안 봉 감독과 공범이었다. 그는 봉 감독을 존경하고 좋아한다. 봉 감독이 말할 때는 그를 보며 고개 숙여 메모를 하지만, 통역할 때는 상대방과 눈 맞춤을 한다. ‘아이 콘택트’는 복싱뿐 아니라 통역을 할 때도 필수다.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하다. 최씨는 그러면서도 결코 겸손과 성실성을 잃지 않는다.
지난 20년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면서 소수의 ‘타고난’ 통역사를 보는 것은 인생의 즐거움이었다. 필자는 최씨의 통역을 지켜보면서 다음에는 또 어떤 타고난 통역사가 나타날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