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에 동시통역 공부 시작해 인기 통역강사 된 한민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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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영어> 30대 중반에 동시통역 공부 시작해 인기 통역강사 된 한민근 씨/프로필/JOEINYOO
2005. 6. 28. 21:29/ 출처 국제영어교육박람회|탐
30대 중반에 동시통역 공부 시작해 인기 통역강사 된 한민근 씨
20년째 통역대학원 입시 강의를 하고 있는 한민근 씨. 사람들은 그가 외국 한번 안 갔다왔다고 말하면 “그런데 어떻게 영어를 잘하냐?”고 반문한다. 고아원에서 자라며 모진 가난을 이기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그는 공부는 돈 들여야 잘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평일 낮 오후 서울 종로 시사영어사 303호 강의실. 강의실 주인인 한민근(58) 씨는 교재에 뭔가 열심히 적는 학생에게 “주석도 영어로 달아야 실력이 는다”고 한 수 지도한다. 동시통역 강의만 20년째인 베테랑 강사 한민근 씨. 영어학원에 처음으로 동시통역대학원 입시반을 만들어 수백, 수천 명의 학생을 지도하는 그 역시 한때는 잘나가던 동시통역사였다.
올림픽 준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84년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을 졸업해 공화당 레이건과 민주당 몬데일 대통령 후보의 토론회 방송부터 각종 국제회의며 기업 세미나, 대학의 학술 토론회까지 그의 무대는 넓었다. 요즘은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텔레비전에 종종 얼굴을 비친다. 얼마 전엔 문법부터 회화까지 한 번에 마스터하는 방법을 다룬 '한민근 잉글리시(한국번역출판사)'라는 책도 냈다.
“외국인들이 저의 통역을 듣고 나면 어디에서 공부했냐고 물어봐요. 한국에서만 쭉 공부했다고 하면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또 묻죠. 영어 잘하는 비결은 한 가지예요. 열심히 하는 거고 요령 부리지 않는 것, 그러면 영어 실력은 당연히 늘게 되어 있어요.”
고아원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어린 시절
“6·25 전쟁이 한창이던 6살 때 부산에서 아버지가 미군 총에 맞아 돌아가셨어요. 살림만 하셨던 어머니는 두 아들 데리고 살아가기 위해 아는 분 도움으로 고아원에 일자리를 얻었고 그때부터 저희 가족은 고아원에서 생활했어요.”
사춘기를 지나서도 집안 사정이 크게 좋아지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교육열 덕분에 부산 동아대 건축학과에 들어갔다가 지금의 대구대학교인 사회사업대학에 편입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학비를 댈 길이 묘연해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가 11년 만인 31세에 졸업했다. 사회복지사로 취직은 했지만 그는 좀더 벌이가 좋은 직장을 원했다. 그래서 무역영어 시험을 치르고 무역 회사에 취직했다. 월급은 전보다 두 배는 많았다. 이후 종교서적 출판사에서 번역사로 4년간 일하며 통역대학원을 알게 되었고 30대 중반 나이에 대학원 준비를 했다. 그러나 무역 영어와 번역 일을 하며 영어 실력을 쌓았다고는 해도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도 붙기 힘들다는 통역대학원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선 모두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3개월 동안 외국인 회화학원 다니면서 공부했어요. 나머지 시간에는 열심히 단어 공부하고요. 합격했죠. 아내는 저더러 '당신 천재 아니냐'는 말까지 하더군요.”
그는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3시간씩 공부했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엉덩이 한번 들썩거리지 않았고, 밥을 먹으면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졸업할 때 그는 당당히 전체 3등의 성적을 거두었다.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들은 영어는 잘해도 한국말을 못해서 중도에 포기하곤 해요. 단순히 영어만 잘해선 통역을 할 수 없어요. 회화 실력만 뛰어나도 안 되죠. 국제회의 영어는 단어나 구조가 일반 회화와는 달라 문법을 모르고선 이해할 수가 없죠.”
80년대 당시 통역 한번 나가면 하루에 25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러나 매일 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 통역입시 준비반 강의를 개설하고 강사 생활을 병행하면서 그는 전문 강사가 되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을 볼 때 가장 흐뭇하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 된 일인지 최선을 다해 공부하려는 이보다는 최선을 다해 요령을 터득하려는 학생들이 더 많다고 한다.
“찍는 연습해서 토익 시험 보고, 한 달 두 달 반짝 공부해 영어 회화만 능숙하게 하려는 것 같아요. 겉보기엔 실력이 는 것 같지만 요즘 대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오히려 저희 때만 못하다고 생각해요.”
'밥 먹었니' '오늘 날씨 어때?' 같은 평범한 대화는 외국인처럼 유창하게 하지만 학생들은 영자지 신문 사설 하나도 읽고 제대로 이해를 못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대충 뜻만 이해하면 되지 않느냐”는 거다.
“외국인들과 잡담만 하려고 엄청난 사교육비 들여가며 공부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영어 교육이 문법 위주여서 회화를 못한다는 말이 돌면서 다들 문법은 제쳐두고 회화에만 신경을 쓴 탓이죠. 하지만 문법을 모르곤 외국 전문 서적이나 학술 세미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그 자리에 설 수도 없어요.”
영어 잘하기 위해 떠나는 조기 연수니 유학이니 따위가 못 미덥다는 그는 자식 둔 어머니들 만나면 자녀 교육에 돈 들이는 것보다는 잘하려는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충고를 하곤 한다. 다른 비결을 더 물어온다면 문법을 소홀히 하지 말란 말도 한다. 쉽게 배운 영어는 어려운 자리에서 통하지 않는다고. 요즘도 많은 이들이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지만 열에 아홉 요령부리는 학생은 일찌감치 공부를 포기한다. 의지박약은 돈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그가 예순 가까이 살며 느낀 삶의 지혜이다.
글 이선정 사진 이진한 기자(magnum91@chosun.com) 여성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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