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왜곡하는 언론의 오역 (feat. 곽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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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왜곡하는 언론의 오역 (feat. 곽중철)
입력 2015.11.15 (17:26)수정 2015.11.15 (19:13) 미디어 인사이드
<앵커 멘트>
언론이 다루는 국제 뉴스의 영역이 넓어지는 가운데, 번역을 정확하게 하지 않아 논란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잘못된 번역으로 본래 의미를 왜곡하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인데요.
오역은 국제 관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만큼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반복되는 언론의 오역 논란, 무엇이 문제인지 김진희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달,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 프린스턴 대학의 앵거스 디턴 교수.
디턴 교수의 연구 업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1년 전, 국내에서도 출간된 그의 책이 화제가 됐습니다. 상당수 언론은 이 책에서 불평등의 긍정적 효과가 큰 것으로, 디턴 교수가 분석했다고 전했습니다.
<자료 녹취> 매일경제(10.12) : "피케티와 달리 디턴 교수는 불평등의 부정적 기능보다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저서 '위대한 탈출 :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를 통해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점을 입증했다."
그런데 이같은 보도는 잘못된 번역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국내 출판사가 책 원문을 그대로 정확하게 옮기지 않아 내용이 왜곡됐다는 겁니다.
<자료 녹취> 한겨레(10.31) :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원문에 있던 내용 등을 상당수 생략하거나 축소한 채 번역이 이뤄져 결과적으로 디턴을 불평등을 옹호한 학자로 왜곡했다며 해당 출판사인 한경비피에 의혹을 제기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미국 프린스턴대 출판부도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료 녹취>프린스턴대 홈페이지 : "한경BP가 발간한 이 책에는 영문판 내용에서 변경·삭제된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런 변경과 새 서문은 저자와 프린스턴대 출판부 어느 쪽에 의해서도 점검 또는 승인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번역본을 낸 출판사는 고의적인 왜곡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기존 책을 회수해 새 번역본을 출간하기로 했습니다.
<자료 녹취>한국경제신문출판사 블로그 : "독자들에게 원문을 100% 그대로 전달하는게 옳지만 내용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읽기 편하게 만드는 과정의 하나로 편집한 것임을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이처럼 번역은 큰 논란을 불러올 만큼 민감한 문제인데도, 번역 오류를 범하는 기사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달, 세계 보건기구가 가공육과 적색육을 발암물질군으로 분류한다고 발표한 자료와 관련해서도 , 오역에 따른 오보가 속출했습니다.
<자료 녹취>세계일보(10.27) : "(보고서는)매일 50g의 가공육을 먹으면 직장암에 걸릴 위험이 18%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직장과 결장, 모두를 뜻하는 대장암을 직장암만으로 축소해, 잘못 번역하는가 하면...
<자료 녹취> 문화일보(10.27) : "매일 50g의 가공육을 먹으면 직장암에 걸릴 위험이 8%로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18%를 8%로 잘못 전하기도 했습니다.
<자료 녹취> 연합뉴스(10.30) : "보고서는 전세계 연간 암환자 3만4천여 명이 과다한 육류섭취 식습관으로 사망했다고 인용하며..."
또, 한 통신사는 '육류 섭취' 관련 암 사망자 수가 3만4천여 명이라고 보도했지만, WHO 자료에는 '가공육' 관련 암 사망자 수로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번역은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 언론 등 수십여 곳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습니다.
한 언론사가 잘못 번역하고 다른 언론사들도 검증 없이 따라 쓰다보니 줄줄이 오보를 한 겁니다.
<인터뷰>이효성(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오역에 의한 보도는 객관성 관점에서의 어떤 정확성의 문제가 있다, 라고 생각이 되고요. 속보성에 내몰리다 보니까 그런 오역 사례가 나타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외교적 사안의 오역은 더욱 민감한 문젭니다.
지난 9월, 한중정상회담 때, 상당수 언론은 시진핑 주석이 '한중 관계가 역대 최상’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발표된 공식 번역문에 '최상’이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전문 번역을 거치지 않고 빨리 보도하려다 생긴 결과였습니다.
<인터뷰> 곽중철(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 "사실 외교 언사를 보면, 그렇게 최상급을 쓰는 경우가 드뭅니다. 상당히 중립적으로 해서, 어떤 해석에 오해가 나지 않도록 그렇게 발언을 하는데, 그렇게 뭐 역대 최고라든가 아니면 그 어느때보다 좋은 관계다 이런 발언이 나오면 상당히 주의를 해야 돼요."
또, 지난해, YTN은 미국 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을 인터뷰한 내용을 잘못 보도해 큰 혼란을 일으켰고, 결국 사과방송을 했습니다.
<자료 화면> YTN(2014.5.30) : "박 대통령이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할 경우 한국도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서겠다"고 언급한 적이 없음에도 영문 기사 원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부 단어에 대한 해석 오류로 결과적으로 오보를 하게 됐습니다."
사실, 오역의 상당수는, 확인만 제대로 해도 줄일 수 있는 ‘실수’에서 비롯됩니다.
지난 2월, SBS와 연합뉴스 TV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해외여행지에서 싹쓸이 쇼핑을 한다며 일본 유통업체 점원의 인터뷰를 내보냈습니다. SBS 현재 관련 동영상을 삭제한 상태입니다.
<자료 화면> 연합뉴스TV(2.9) : "비데 재고가 전혀 없습니다. 브랜드와 상관없고 오전에 갖다 놓으면 오후에 다 팔립니다."
하지만, 점원이 한 얘기는 비데가 아니라 전기밥솥이 많이 팔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SBS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출석해, 중국 CCTV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라고 설명했습니다.
<자료 녹취> 2015년 제9차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록 : "CCTV 보도내용에서 일본어를 중국어로 번역해서 자막을 내보냈습니다. 그 자막 내용이 잘못됐었는데 그 부분을 미처 확인을 못하고, 그 자막내용을 한국말로 번역해서 사용하면서..."
또, 올해 초, KBS의 한 시사프로그램은 가구를 만들어 파는 한 다국적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고 전하며, 미국 경제학자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실제 인터뷰 내용과는 정반대로 번역이 됐습니다.
방송에선 ①가격이 20% 가량 차이가 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로 번역됐지만, 실은 '드문 일이 아니다'였고, ②어느 것도 더 비싸거나 저렴한 경우를 '찾을 수 없다'가 아니라, '제시할 수 있다'였습니다. ③또한, 한국과 다른 나라 사이에 가격 차이가 크다는 게 '놀랍다'가 아닌 '놀랍지는 않다'였습니다.
제작진은 잘못 번역을 했다며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습니다.
심지어, 같은 프로그램에서 오역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교육방송 EBS의 한 프로그램은 ‘과체중’이라는 의미의 단어를 ‘부재중’으로 표기하는 등, 한 달 동안 무려 일곱 건이나 번역 관련 오류를 저질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주의'를 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오역이 계속되는 데는 제작진 개인의 잘못을 넘어 언론사의 구조적 책임도 크다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서옥식(전 언론중재위 중재위원) : "‘오역’ 관련서 저자 오역을 했을 때, 스스로 고쳐주는. 소위 언론 용어로 게이트키핑이라고 할까 이런 기능이 좀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오역이 막 나갑니다. 오역이라는 게 얼마나 피해가 크냐면, 이게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거거든요."
정보화 시대에서 잘못된 번역은 한 언론사의 실수로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오역은 사실을 왜곡해 전달하고,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립니다.
<인터뷰>곽중철(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 "언론이 오역을 하면, 그건 충격이 사회 전반, 국가 전반에 미치는 거니까 그건 아주 잘못된 거죠. 그러니까 그런 오역이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사에서 철저히 검증을 하고 확인을 하고 내보내야 됩니다."
정확한 번역은 사실 보도를 원칙으로 하는 언론의 기본입니다.
외국어를 정확히 전하는 것은 물론, 그 의미까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더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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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김진희 기자 hydrog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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