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대통령의 눌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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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행동하는 대통령의 눌변
젊을 때 대통령 통역을 한 경험이 있고 날마다 국내외 대통령 연설로 통역 강의를 하는 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유심히 살펴왔다.
선거 연설이나 TV 토론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발음이 부정확하고 이상한 시옷 발음이 많이 나는 것에 대해 걱정이 앞서곤 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후 인터넷 검색에서 상위에 오른 과거 영상을 보고 모르던 것을 알게 됐고, 그 나이에 특히 경상도 사나이가 발음이나 억양을 고친다는 것은 난망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발음은 문제 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지역 선대본부장을 맡게 됐을 때 부산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연설에 바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말은 떠듬떠듬 유창하지 않게 원고를 보면서 읽었습니다만 저는 제가 아주 존경하는, 나이는 저보다 적은 아주 믿음직한 친구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확히 지적한 것처럼 문 대통령은 변호사 시절인 15년 전에도 말이 유창하지 않았고 자신이 쓴 원고를 보면서 읽었다. 이제 앞으로 5년, 대통령이 쓸 수 있는 투명 전자 원고 화면(텔레프롬프터)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더 나아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대통령 취임사에 이어 광주에서 5·18 기념사를 할 때도 그 좋고 감동적인 원고를 웅변으로 살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년 기념식에서의 추도사는 훨씬 나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간절한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내용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좋다. 눌변이라도 좋다. 자신이 직접 손질하는 원고에는 진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못해도 좋다. 훌륭한 통역사를 두면 되니까. 더 중요한 것은 말보다 진심이요, 소통이요, 그 말을 실천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직전 대통령이 몇 가지 외국어를 구사하면서도 `유체이탈 화법`으로 국민을 절망시켰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새 대통령의 눌변에는 개의치 않고 실천하는 그의 대통령직 수행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련다. 어차피 우리는 말만 잘하는 사람에게는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은 숭문어눌의 전통이 있으니까. 말은 못하지만 행동으로 취임 초기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는 문 대통령의 지속적인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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