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통역의 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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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의 미 공습테러가 발생한 지난 9월 11일. 지구촌 패밀리들은 TV를 통해 "영화보다 더 숨막히는 현실"을 지켜보며 할말을 잃었고, "어떻게 이런 일이~"하는 황당한 심정으로 뉴스속보를 듣느라 TV앞에 모여 들었다. 물론 국내 방송사들은 24시간 뉴스채널인 미국 CNN을 직접 연결시켜 현지의 생생한 모습을 방영하며 열띤 속보 경쟁에 돌입했다. CNN의 앵커들은 상기된 얼굴로 뉴스를 진행했고, 현장의 기자들은 긴박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국내 TV 시청자들은 불평을 토해냈다. 동시통역하는 과정에서 "에...음..." 등의 불필요한 말이 섞여 나오는 등 통역이 영 매끄럽지 못해 귀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통역이 다소 안정을 찾긴 했으나 시청자들은 "우리 나라에 영어 잘하는 사람이 이렇게 없냐"며 동시 통역에 대한 수많은 비난을 쏟아냈다. 이야기 하나 - "왜 "동시"에 안되는 것일까?" 도대체 이유는 무엇일까? 왜 "동시통역"이라면서 진짜 §동시§는 안되는 것일까? 국내에 동시통역 대학원이 생긴지도 어언 20년-.명쾌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1983년 대한항공기 격추사건과 랭군 폭파사건 당시 위성뉴스통역을 처음 시작했고 YTN 국제부장 등 5년간 기자로 활동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제자양성에 힘쓰고 있는 곽중철 교수(49, 통역번역센터 소장). 가을 햇볕이 교정을 내리쬐던 날 곽교수의 방을 노크했다. 만남 하나 - "가장 어려운 통역 분야중 하나이기 때문" 곽중철 교수는 먼저 "영어를 잘하는 것"과 "통역을 잘 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라며, "CNN 뉴스통역"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통역 중 하나로 꼽았다. 그리고 TV의 동시통역이 미흡해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일단 동시통역은 자신이 통역할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잘 할 수 있다. 국제회의의 경우, 통역을 의뢰 받으면 회의 주제나 관련 전문용어, 연설문 등을 사전에 입수, 충분히 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뉴스통역은 불시에 사고가 발생하는 데다 통역사들조차 급박한 상황에서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통역에 임하기 때문에 매끄러운 통역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송계 일각에서는 뉴스 통역을 위한 전문 통역사의 양성이 매우 시급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기도 하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이유로 경험이 풍부한 통역사들은 방송뉴스통역을 아예 기피하고 있는 현실은 또 다른 문제점이다. 대부분의 통역대학원 졸업생들은 IT나 금융, 컨설팅 분야를 중심으로 취업, 통·번역사로 활동한다. 그중 최고 수준의 통역사는 역시 국제회의 통역사.이번 테러참사가 벌어진 9월 중순은 통역의 성수기로 실력있는 고참 통역사들은 이미 각종 국제회의에 예약이 돼 있었고, 당일 갑작스런 섭외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 외에 방송 송수신 장비들이 종종 문제를 일으켜 통역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예를 들어, 시청자들에겐 잘 보이고 잘 들리는 화면이 방송국사정으로 통역사에게는 끊기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통역사는 하루아침에 실력 없는 통역사로 낙인찍힐 수 있다. 이 때문에 방송뉴스통역을 3D(Difficult, Dirty, Dangerous)통역으로 부른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속사포처럼 내뱉는 기자들의 말을 따라 가야 하니 어렵고, 방송사에서 갑자기 마련하느라 완벽한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통역실에서 방송진행자의 지시를 받으며 능숙하게 통역을 해내야 하니 조금은 더럽고, 전국 시청자들을 상대로 통역을 하다 보니 약간 실수를 해도 욕먹기 십상이어서 위험하다는 뜻이다. 또한 방송뉴스통역은 특별한 영역의 통역이다. 기자, 앵커들의 말을 통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론용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곽교수는 "사람들이 방송뉴스통역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애정어린 격려를 보냈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만남을 정리했다. 이야기 둘 -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약한 사람은 누구?" 미 테러사건과 동시통역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야기 중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일부 방송국의 기자들이다. 이들은 12일 새벽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건을 바라보며 뉴스보도는 물론 동시통역 역할까지 훌륭히 소화해 냈다. 기자들에겐 통역사들이 넘어야 할 장벽인 "뉴스감각"과 "언론용어"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가장 차분한 진행으로 눈길을 모았던 MBC의 김상운 기자(45, 국제부 차장). 흔히 "동시통역대학원"이라고 말하는 통역번역대학원 출신이다. 통역사의 능력을 갖고 기자로서 맹활약하고 있는 그를 문화방송 국제부에서 만나봤다. 만남 둘 - "생방송보다 편안…다음엔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김기자는 당일 새벽과 아침방송에서 뉴스보도와 동시통역을 하며 그러했던 것처럼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TV에 얼굴이 나오거나 할말을 외워야 하는 생방송의 경우가 오히려 더 긴장이 돼요. 하지만 통역을 할 땐 그렇지 않았죠. 자유롭게 조금은 구부리고 있을 수도 있었고, 메모도 해가며 소리만 들으면서 말만 하면 됐죠. 재미있었습니다." 처음 방송뉴스통역을 하는 통역사들이 접하게 되는 방송에 대한 두려움은 17년간 기자생활을 해온 그에겐 문제도 아니었다. 본래 유학을 가고 싶었던 김기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유학대신 외국어대 통역대학원의 길을 선택했고, 84년 문화방송에 입사했다. 그리고 지난 97년 미국 정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워싱턴에 특파원으로 파견돼 그곳에서 3년을 지냈다. 뿐만 아니라 보스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국제정치학을 전공, NATO에 관한 내용을 졸업논문으로 연구한 경험이 있다. 테러 및 군사와 관련된 속보에서 그의 활약이 단연 두드러져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이다. 20여년간 쌓아온 세계 정치, 경제, 문화에 관한 지식과 기자생활이 능숙한 뉴스 동시통역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사회 각 분야에는 전문가가 있어요. 남의 분야는 인정해 주어야지 그렇지 않다면 전문가가 불필요하지 않겠어요? 앞으로는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기면 잘하건 못하건 간에 통역사에게 하라고 할겁니다"라며 자신은 평범한 기자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다만 방송뉴스통역에 관심을 갖고있는 통역대학원 후배들을 위해 그는 "신문, 특히 영자지와 한국신문을 자주 읽어 시사적인 것을 많이 알고 있어야 해요. 돌발적 사건이 터졌을 때는 배경을 알고 있으면 더 잘 이해가 가는 법입니다"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기자는 현재 외신에서 접하는 실제적인 정보나 도움이 될만한 아이템을 모아 MBC 유일의 외신 프로그램인 §지구촌 리포트§를 키워나가고 있다. 이야기 셋 - "방송뉴스통역 전문 통역사는 없나?" "왜 동시는 안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방송뉴스통역의 어려운 점을 이해하고 나니 또 하나의 궁금증을 생기게 한다. "그렇다면 방송통역은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항상 준비가 부족한 통역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발 앞서 걷고 있는 통역사들을 만나보았다. CNN의 한국내 송출을 위임받은 CSTV Korea의 젊은 통역사들이다. CSTV가 유료 케이블채널이라는 한계로 많은 시청자들이 테러 당시 "준비된 통역사"들의 활약상을 지켜보진 못했지만 이번 테러사건을 계기로 방송뉴스통역분야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그 진가를 발휘했다. 만남 셋 - "저희가 활동중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많은 통역사들이 나름대로의 이유로 기피하는 방송통역, 그 일을 하겠다고 두팔 걷고 뛰어든 윤순옥(30), 한형민(29), 이은희(28), 도선화(28)씨. 지난 1월부터 CNN뉴스를 연구하며 7월부터는 CSTV 시험방송을 통해 실전경험을 쌓고 있다. 모두 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을 올해 졸업한 신참 통역사들.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덕분에 방송뉴스통역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겠다는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네 사람 모두 "위험이 따르는 만큼 성공할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한다. 통역하는 사람으로서 욕심날수 밖에 없는 분야다. 때문에 어떤 모험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가 돼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미국 테러당시 통역사들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 자신들이 처음 CNN 뉴스통역을 시작할 때 비슷한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많은 연습을 거쳤고 7월 중순엔 첫 방송을 시작했다. 실제로 방송에서 동시통역을 시작하자 오히려 연습때보다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흡족했다. 방송이라는 것이 주는 두려움에서 탈출하고 어느 정도 편안해 질 때쯤에 대사건이 터졌다. 약 9개월 가량 뉴스를 다루고 있었던 터라 미국과 중동지역을 둘러싼 갈등의 흐름을 알고 있었고, 관련된 유명인사의 이름이나 직책 등도 낯설지 않았다. 사건당일 통역사 4명이 공중파 방송처럼 밤새도록 다양한 속보를 전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언론용어를 노련하게 사용하며 §준비된 통역사§로서의 임무는 톡톡히 해냈다. 순수 국내파인 윤순옥씨와 한형민씨는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자신들이 터득한 영어공부 잘 하는 방법을 단 세 글자로 표현했다. "열심히"가 정답이라는 것. 한씨가 "획기적인 방법, 귀가 한번에 뚫리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10시간 투자하면 10시간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법이죠"라고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방송뉴스통역 분야의 선두에 서서 힘찬 행진을 하고 있는 "당당녀"들과 "홍일남"의 가장 큰 바람은 한가지. 방송위원회에서 CNN채널과 관련된 한국어 더빙 문제를 허가해 주는 것이다. 현재는 당국의 정식 허가를 받지 못해 하루 몇차례씩 시험방송의 형식으로 정시뉴스를 동시통역하고 있는 형편. 이은희씨는 "정식 허가가 나서 방송시간이 늘어나면 전문 통역사들도 증가할 것이고, 우리도 더욱 실력을 쌓아서 생방송 뉴스도 동시통역으로 멋지게 해낼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수 있을 것이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4명의 통역사들은 오늘도 시사상식공부는 물론이고 각종 신문을 꼼꼼하게 읽으며 뉴스감각과 언론용어를 익히고 있다. 향후 이들의 활약에 큰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스포츠서울닷컴| 김동희 기자 dhkim@sportsseoul.com = 스포츠서울 e매거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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