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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생각하며] 곽중철/ 통역은 神과 싸우는 일

매체명 : 동아일보   /   보도일자 : 0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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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설립한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에 1기 학생으로 입학해 통역계에 뛰어든 지 21년 이 된 8월. 서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준비기획단에서 회의 동시통역을 총괄하는 조정관 임무를 공식으로 받았다.



26국 정상들의 토론을 16종 언어로 동시통역해야 하는 임무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일이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통역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는데 큰 문제없이 끝난 것이다.



이번 서울 ASEM을 위해 유럽연합(EU)에 속한 열한 가지 언어 통역사 37명이 브뤼셀에서 날아왔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에서 각 6명, 태국에서 3명, 베트남에서 2명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통역사 6명을 투입했는데 이들은 모두 통역대학원을 나와 대학에서 통역강의를 맡고 있는 최고의 재원들이다. 또 16종 언어를 동시에 중계 통역할 수 있는 덴마크제 통역장비를 들여왔다. 통역 임무를 잘 마친(해낸) 데는 뭐니뭐니 해도 이같은 전문통역사들의 노력과 최첨단 디지털 장비의 도움이 컸다.



이번 서울 ASEM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인간이 갖가지 언어를 쓰게 된 것이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처럼 신의 형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새삼 들었다. 쟁쟁한 국가의 정상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 의사를 전달하는 데 그 많은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서로 통할 수 있는 공통하는 언어가 있다고 해도 자국의 위신과 주권이라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통역을 고집해 그 많은 인력과 예산을 써야 하다니…. 필자도 통역사지만 이번에 모인 57명의 통역사들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들은 신에게 도전하는 자들인가, 아니면 신이 선택한 자들인가’ 하고 자문해 보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필자는 통역을 강의하다가 학생들이 힘들어하면 “신이 금지한 인간 사이의 의사를 소통할 수 있게 하는, 신에 거역하는 일이기에 당연히 어렵다”는 말로 달래고 격려한다. 그렇지만 필자는‘통역사는 만들어지기보다 태어난다’고 믿는 편이다. 통역사는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교육받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만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야 한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조리 있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환경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급 통역사들은 특별 대우를 받는다. 이번 ASEM만 해도 하루 500달러 가량의 통역료를 받는 것 외에도 정상들이 묵는 호텔에서 독방을 쓰면서 청와대 경호실에서 발급하는 붉은 딱지의 최고급 통행카드를 받았다. 아무리 무서운 경호원이라도 통역사들을 제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렇게 최종 경호선을 무사 통과해 어두운 통역실(자리)에 앉아 조용히 ‘금지된 장난’ 같은 통역 임무를 수행하고 또 조용히 사라진다. 자신이 원하면 여유 있는 사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통역해야 할 말의 가짓 수가 늘어날수록 통역사의 수와 그들의 수입은 더욱 늘어갈 것이다.



그런 고급 통역사들은 완벽한 통역을 하는 데 필요한 요구사항도 많다. 이번 회의에서도 EU의 수석 통역사는 정상 회담장보다 통역부스의 온도가 높으니 부스에는 냉방을 따로 해달라고 요청해 끝내 관철했다. 그 사람은 “통역은 입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더우면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서른 가지 말을 동시에 통역할 수 있을까



이제 16가지 말을 동시통역하는 우리 사상 초유의 임무는 끝났다. 당분간 우리에게 이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동시통역은 없을 것이다. 몇 년 후 서른 가지가 넘는 말을 통역해야 할 행사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해 비관적이다.



통역이란 신이 바벨탑을 무너뜨리며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을 금지한 것을 가능하게 하려는 시도인 만큼 신이 그런 묘책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최첨단 기술과 장비를 동원해도 내일의 날씨를 정확히 예보할 수 없는 것처럼….





곽중철(한국외대 통역대학원 교수·통역연구소장)
게재일 : 2000년 10월 13일 [29면] 글자수 : 839자

기고자 : 박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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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서는 통역사 57명이 릴레이 통역 을 벌인다.

예컨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우리말로 한 연설을 한국측이 영어로 통역하면 다시 각국 통역사들이 영어를 듣고 자국 언어로 바꿔 전달하는 방식이다.

공식회의에는 유럽연합(EU) 37명, 아시아 회원국 14명 등 외국 통역사 51명과 한국 통역사 6명이 나선다. 하지만 각국 정상들을 수행하며 귀에 속삭이는(whispering) 개인 통역사들까지 포함하면 80여명에 이른다.

한국 통역사 6명은 모두 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 출신으로 지난 5월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등이 공동으로 선발했다.

이번 ASEM에는 26개 정상이 참여하지만 16개 언어만 사용된다. 유럽언어(영어.불어.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그리스어.핀란드어.스웨덴어.덴마크어.네덜란드어) 11개와 아시아 언어(한국어.중국어.일본어.태국어.베트남어) 5개 등이다.

유럽연합을 제외한 25개국 중 8개국은 자국 고유 언어가 없고 인도네시아 와히드 대통령은 영어를 잘해 통역을 사양했다.

정부는 지난해 국제 입찰을 통해 덴마크제 최첨단 통역장비 16대를 도입하는 한편 회의장에 16개의 통역부스도 설치했다.

전체 통역사들을 총괄.조정하는 곽중철(郭重哲)외대 통역번역 연구소장은 16개 언어 통역사가 연설 후 1~2초 이내로 통역을 완료해야 하므로 팀워크에 중점을 둘 예정 이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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