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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번역기계 과대 선전 자제하라

매체명 : 조선일보   /   보도일자 : 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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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AI 번역기계 과대 선전 자제하라

  •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입력 : 2017.08.24 03:07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지난 2월 어느 대학에서 열린 인간 대 AI의 번역 대결에서 번역사들이 압승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인공지능 번역회사들은 자사 번역기의 발전상에 대한 과장 홍보를 계속하고 있다. 아침마다 "우리 번역기가 이만큼 발전했네, 어느 자동 번역기에 도전했네"라는 식의 홍보 기사가 잇따르고 있다.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의 통번역을 책임진다고 장담한 회사도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국제체육대회의 안내 통번역이나 하려고 외국어를 전공하거나 통번역대학원에 가는 학생은 없다. 그냥 두면 대학 어문학과들이 정원 미달되고, 통번역대학원의 경쟁률도 뚝 떨어질지 모르겠다.

언어란 체스나 바둑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 지능의 최고 영역이다. 인간의 말에는 바둑보다 훨씬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제 번역기가 아무 문제 없이 의사소통을 대신해 줄 것이라는 예단이 계속되고 있다. AI 회사들의 번역기 과대 선전을 언론이 그대로 보도하기 때문이다. 외국어와 통번역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를 괴롭히던 외국어 문제가 사라지고, 비싼 대가를 요구하던 전문 통번역사들은 할 일이 없게 됐다"는 듯한 분위기다. 작년 방한한 미국 모 인터넷 기업 회장은 전문 통역사에게 "수고했지만 당신 직업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갔단다.

자동 번역기 회사들의 과잉 홍보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단추 하나만 누르면 즉시, 무료로, 완벽한 번역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인간 번역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통번역 전문가들은 대기업들이 돈을 쏟아붓는 홍보의 파도 속에서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전달하지 못하고 냉가슴을 앓고 있다. 골치 아픈 외국어를 더 이상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헛된 희망에 많은 젊은이가 외국어 학습을 등한히 하고 세계어인 영어의 중요성마저 인정하지 않을 기세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얻는 정보의 90% 이상이 영어로 나오는데 완벽하지 않은 인공지능의 번역만 믿고 정보를 간접 취득하는 사람과 탄탄한 영어 능력을 바탕으로 직접 취득하고 분석하는 사람 중 누가 세상에서 앞서 나가겠는가.

 

번역기계 운영사들은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표현력에 못 미치는 부분이 많음을 알면서도 눈 가리고 아웅 하면 안 된다. 인간 번역의 파생상품인 기계 번역은 이런 과장 선전이 계속되면 거품처럼 한순간에 꺼지는 날이 올 수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3/20170823036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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