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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통역관 신혜영의 실수

매체명 : 경제포커스   /   보도일자 : 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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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전문칼럼

통역관 신혜영의 실수

기사승인 19-05-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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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정상회담에는 통역이 필요 없다. 70여년을 분단된 채 살아왔어도 남북은 말이나 글 만큼은 아직 서로 큰 어려움 없이 이해한다. 다행이다. 그런데 미북 정상회담은 다르다. 워낙 역사성이 크고 남북한 말과 미국 영어가 섞이니 회담을 통역하는 관리들도 각광을 받았다. 미국 측 통역 이연향 국무부 통역국장은 이제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곽중철 교수
 
북한의 1호 통역관이었다가 문책 당했다는 신혜영은 미북 2차 정상회담 당일인 지난 2월 28일 정상 간 대화 통역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단다. 이날 회담에서 합의 무산을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한 가지 더 얘기할 게 있다"고 했는데, 신혜영이 미처 통역하지 못한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리를 떴단다. 김정은 입장에선 통역이 결정적 실수를 저지른 셈"이라 문책 당했단다.

회담 이틀 동안 모 방송국에서 대기하며 입수된 모든 화면을 통역했던 필자는 이에 동의하기 힘들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7년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이 당시 친구들로부터 '영어벙어리'라는 놀림을 받았지만 "한 가지 더 얘기할 게 있다 (I have one more thing to talk about)"는 짧은 말조차 영어로 직접 할 수 없었을까? 직접 못했다면 통역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Wait!" 라는 한마디도 못했을까?     

신혜영은 다른 실수도 저질렀단다. 단독 정상회담에서 외신 기자가 김정은에게 "협상을 타결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리고 확대 정상회담에서 다른 기자가 "미국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것에 준비가 돼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신혜영이 멈칫했고, 미측 이연향 통역국장이 통역하게 한 것이 "신혜영의 국제무대 경험 부족에 따른 실수"란다. 필자는 이 지적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원래 정상회담에서는 통역관이 자기나라 정상의 말만 상대국 언어로 통역한다. 즉 트럼프의 영어를 이연향이 한국어로 김정은 위원장에 전달하고, 김정은의 북한 말은 신혜영이 영어로 트럼프에 전달한다.

다시 말하면 미북 정상회담 중에 신혜영은 영어로만, 이연향은 한국어로만 통역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상 처음으로 북한의 지존에게 외신기자가 영어로 질문했고, 더 나아가 김정은이 한국어로 답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두 통역관도 놀랐겠지만 외신의 영어 질문을 이연향이 한국어로 통역한 것은 신혜영의 임무를 가로챈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다. 질문에 대한 김정은의 한국어 답변을 신혜영이 영어로 통역한 것도 당연하다.

흔히 국제무대에서 오해가 생기면 "통역이 잘못됐다"고 책임을 돌리는 사례는 많았다. 하지만 이번 미북회담의 실패를 신혜영에게 일부라도 돌리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필자는 1차회담의 1호 통역사 김주성도 통역 실수 때문이 아니라 이연향에 어울리는 여성으로 교체된 것이라고 본다.

신혜영도 통역에서 이렇다 할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위기 쇄신' 차원이 아니라면 문책 당하거나 교체될 이유가 없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3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한껏 편안해진 모습의 신혜영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녀는 처음 등장한 2차회담에서도 '지존' 김정은과 눈을 맞추는 (eye contact) 전문 통역사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곽중철 교수 한국외대 통번역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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