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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뉴스는 ‘CNN 중계방송’

매체명 : 조선일보   /   보도일자 : 0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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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TV읽기/ 이라크 전쟁 뉴스는 ‘CNN 중계방송’


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304/200304070293.html





한국 TV 뉴스는 이번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첫째,
‘CNN 중계방송’으로 다루고 있다. 거의 모든 방송뉴스가 자체 생산은
실종되다시피 하고 CNN을 비롯한 외국방송을 번역하고 있다. 기자는 없고
통역사가 존재한다. 시청자들도 아예 방송사에 “좀 잘하는 동시통역사를
붙일 수 없느냐?”고 요청할 정도가 되었다.

CNN의 브레이킹 뉴스에서는 숨이 꼴깍 넘어가게 현지 특파원이 속보를
전하는데 이곳 한국의 동시통역사는 “에, 또… 그러니까…”를 연발하며
질질 끌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는 (혹은 그녀는) 통역사이지
기자가 아니다. 동시통역이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거니와
통역과 방송은 엄연히 다른 분야다. 문제는 현지 특파원이 아니라 철저히
통역사에게 의존하는 방송사의 보도 방식이다. .

두 번째는 영상에 치중해 뉴스를 만든다. TV는 보는 것이니까 당연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TV 뉴스가 ‘전쟁의 진실’이 아니라
‘그림 구경’내지 짜릿한 컴퓨터 게임처럼 ‘영상중계’에 치중한다는
말이다. 한 예로 현지에 특파원을 보내지 않는 과감한 결정을 한 SBS는
로이터의 화끈한 그림을 받아 편집을 해서 내보내고 있다. 즉 기자가
아니라 영상편집자의 ‘극적 구성력’에만 목숨을 걸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는 도매가 아닌 소매상 뉴스를 하고 있다. 직접 물건을
떼어오기를 마다하고 일찌감치 세계 뉴스의 도매상들을 통해 상품을 건네
받고 한국 방송사 상표를 다시 붙여 되팔고 있다. 이번 전쟁보도를 보면
한국의 방송 3사가 지상파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다시 되파는 동네
유선방송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 번째는 그나마 스스로 외롭게 큰 전문기자를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한
점이다. 걸프전 보도의 히로인라고 할 수 있는 MBC 기자 이진숙을
불러들여 아침 뉴스시간에 앉혀놓고 ‘토크쇼’를 한 것은 한국 방송사에
과연 취재전략과 계획이 있는가 하는 회의를 품게 한다. 오랫동안
예고되었던 이 전쟁을 ‘한국인의 시각으로, 한국 방송기자의 입’으로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바로 이런 한국 방송의 취재부실은 뉴스의 몇 가지 부작용과 연결되어
있다. 얼마 전 하루 아침을 뒤집어 놓았던 ‘빌 게이츠 피살 소동’이
그렇다. 이 오보사건의 발단은 MBC가 ‘CNN 유사사이트’를 보고 낸
긴급속보 때문이었다. 할 말은 많겠으나 결국 한국 방송사들의 ‘CNN
맹신’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모든 뉴스는 CNN으로 통한다’라는
최근의 한국 뉴스가 처한 상황이 불러온 예견된 오보 사건이다.

어린이가 소뿔에 받혀 공중까지 치솟은 ‘잔혹한 영상’도 그렇다.
뉴스제작진은 “특종이다!” 하는 기쁜 속내를 숨기고 내보냈을 것이다.
피가 흥건한 전쟁, 수많은 이들의 생사가 걸린 전쟁을 컴퓨터 게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덤덤하게’ 중계하다 보니 방송사 스스로 무감각해진
것이다. 더구나 남편의 흉기에 찔린 여성의 단말마를 내보내 그 호된
비난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 한국
방송3사의 취재방식도 참으로 어리석다.

(전여옥/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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