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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사용자 늘수록 양질의 통역 제공해야

매체명 : 조선일보   /   보도일자 : 0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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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4.09.19 17:29 49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9/200409190125.html



[독자칼럼] 영어 사용자 늘수록 양질의 통역 제공해야
곽중철 한국외대·통역번역대학원 교수


▲ 곽중철
한국외대·통역번역대학원 교수
필자는 지난 5월 말 영어, 불어, 스페인어 등 3개 국어로 진행된 세계여성지도자대회(GSW)에 이어 얼마 전에는 영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4개 국어로 진행된 세계검사협회(IAP)의 통역 업무를 무사히 끝냈다. 두 회의에 초빙된 외국인 통역사들은 한국인 통역사들이 우리나라 대표들의 한국어 연설을 옮긴 영어 통역이 “다른 어느 나라의 현지어 통역보다 우수해 다른 언어로 릴레이 통역하기가 수월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주최측이 통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우수한 국내외 통역사들을 초빙하는 데 적절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예산을 아끼자고 검증되지 않은 통역사들을 싼값에 고용했다면 회의 결과는 투자한 막대한 예산을 헛수고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들어 영어가 국제어가 되고, 영어를 축으로 다른 언어로 통역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보면서 통역사들마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영어를 할 수 있게 되면, 모든 회의가 영어로만 진행되어 몇 년 안에 통역은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첫째, 세계적으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은 모국어로는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지만, 외국어로는 외국어 실력 만큼만 말할 수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과 영어로 협상을 벌일 때 우리가 불리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국제적인 모임에서 모국어로 얘기를 하고 이를 외국어로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통역사를 써야 한다.

둘째, 영어는 지역과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발음이 다를 뿐 아니라 같은 단어에 대한 개념도 서로 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그만큼 빨리 진화하는 영어를 따라잡을 만큼 부단히 노력하는 집단이 통역사들이다. 그들은 국제회의 일정에 따라 세계 각국으로 비행하면서 매일매일 달라지는 영어를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각국에 그런 통역사들이 필요 없을 만큼 ‘진화하는 영어’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어를 정말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듯, 통역사라고 모두 통역을 정말 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질 높은 통역사를 골라 쓰는 것은 통역사를 사서 쓰는 고객들의 권리다.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검증된 통역사를 가려내는 고객들의 눈도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수한 통역사라면 진화하는 영어를 따라 잡으며 통역의 대상이 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의 각종 정보를 부단히 학습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영어가 국제어가 됨에 따라 사라질 것은 통역 그 자체가 아니라, 양질의 영어 통역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이비 통역사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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