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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 필요 없어진다고?

매체명 : 매일경제   /   보도일자 : 0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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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통역이 필요 없어진다고?

점점 많은 사람이 이런 속도로 국제어인 영어를 배워 모두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통역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가 요즘 영어학습 광풍에 휩싸이다보니 전문적 지식을 갖춘 오피니언 리더들이라는 사람들조차 이따금 이런 질문을 던진다.그러나 이 질문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세계화의 흐름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엉뚱한 질문에 속한다.유럽연합(EU) 회원국 25개국의 20개 언어를 서로 통역하느라 고달픈 딜레마에 빠져 있는 유럽에서도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염려가 한국에서 먼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유럽과 북미 이외 지역에선 처음으로 지난 5월 23일부터 사흘간 서울에서 열린 세계통번역대학원협회(CIUTI) 연차총회는 이런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글로벌 시대에 그 역할이 증대되고 있는 통번역사들에 대한 국내 인식을 제고하고 통번역 교육의 전문성에 대한 이해를 확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통역이 몇 십년 내에 필요없어지지 않을 이유는 많다.첫째, 세계 각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고,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영어가 급속도로 국제어가 되고 있지만 각국은 각기 다른 영어를 쓰고 있다.어지러울 정도로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각국은 상이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상이한 영어 어휘와 문장을 쓰고 있고, 같은 단어와 구문이라도 나라마다 그 의미에 차이가 존재한다.따라서 중국에서 서로 다른 지방의 중국 방언을 서로 통역해야 하듯이 각국의 영어를 서로 통역해야 하는 경우마저 생길 수 있다.국제회의에서 각국의 서로 다른 영어의 차이를 파악해 상호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도록 할 수 있는 인력이 전문 통역사들이다.
통역이 필요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통역사의 역할이 더 까다롭게 변할 뿐이다.둘째, 세계인들이 통역 없이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시도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각국의 상이한 문화적 측면들이 간과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이다.영어란 것이 세계인의 공통분모가 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언어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도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많아지고 있지만 정말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적듯이 전세계에서도 영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했다고 자신하는 사람 중 객관적으로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그들을 위해 일반인들보다 정말로 영어를 잘해 그들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할 진짜 전문 통역사는 더 크게 필요해질 것이다.셋째, 외국어란 성경의 바벨탑 얘기에 나오듯 신이 만든 것이다.원래 하나였던 말을 갖가지 언어로 갈라놓은 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그것을 다시 영어로 통일하겠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다시 신에 도전하는 일이다.신은 인간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쉽게 할 수 없도록 갖가지 언어를 만들었고, 그를 통역할 수 있는 재능을 받은 사람이 통역사가 되어 의사소통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통역은 신이 병을 준 뒤에 준 약이기에 통역은 그만큼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이번 서울 CIUTI 연차총회에서도 결코 통번역이 필요없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염려하며 그 대책을 논의하지는 않았다.오히려 영어가 세계어가 되고 있는 세상에서 기존의 역할을 변화시켜야 하는 통역, 번역사들을 양성하기 위해 각 학교가 어떻게 교과과정과 교수법을 바꿔야 할 것인가 등을 활발하고 심도있게 논의했을 뿐이다.이번 총회는 아시아를 대표한 한국의 전문 통번역 교육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국내외에 확인시킨 기회였다.고급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유럽과 북미의 통번역대학 교수들에게 개최 도시 서울과 개최국 한국의 역동적인 모습을 체험케 함으로써 우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심화시킨 자리였다.특히 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은 아시아 최초로 임기 3년의 이사직에 선임돼 동서양의 더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장]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6.06.06 17:4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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