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모음

한·미 정상 망신시킨 미국 통역사

매체명 : 중앙일보   /   보도일자 : 06-10-10

첨부파일

본문


 [내생각은…] 한·미 정상 망신시킨 미국 통역사 [중앙일보]

미국 최고위 관리들의 영어 발언이 한국어로 잘 통역되지 않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회담한 뒤 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에서 데려온 여성 통역사가 팔레스타인 당국(authorities)이라는 말을 권위로, 비핵화 선언을 비핵화 동맹으로 옮기자 기자단에 동요가 일어났다. 게다가 라이스 장관의 발언을 다 옮기지 않거나 중요한 부분을 누락하자 많은 신문이 이를 기사화했다. 지난달 14일 워싱턴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새로 고용된 미국 측 남성 통역사도 나을 것이 없었다. 금방 눈치챌 수 있는 오역이 없어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녹화 테이프를 자세히 들어보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말 가운데 제대로 통역된 게 거의 없었다. 몇 가지만 보면 우선 한.미관계는 강하고도 매우 중요한 관계라는 첫 발언을 강력한 … 그런 관계라고 얼버무렸다. 제일 심각한 것은 부시가 미국이 한반도 안보에 변함없는 의지를 갖고 있다(committed)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미국 정부는 한반도의 안보에 책임을 여전히 지고 있다는 메시지로 전달된 점이다.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는 오역이었다. 이어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시기 문제를 잘 해결하라고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당부했다는 말은 미국 국방장관과 한국의 상대가 적절한 날짜를 잡기로 결정했다고 통역됐다. 전작권 관련 발언이 그렇게 느슨하게 전달돼서는 안 됐다. 또 저 기자가 노 대통령께도 질문했느냐는 부시의 질문을 통역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었느냐고 전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부시에게 대답을 잘하셨습니다라고 했고, 한국 측 통역은 이를 영어로 통역했다. 부시는 얼떨결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까지 나갔다. 외국인 기자들이 이런 어색한 장면에 와-하고 웃어버렸으니 두 정상이 망신을 당했다고도 볼 수 있다.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5개국을 평화적 동맹의 5개국, 핵무장 국가의 위협 인식을 핵무기 확인, 김정일이 핵무기 계획을 포기하면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을 제(부시)가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엉뚱하게 옮겼다. 심지어 6자 회담을 통해 북한에 전달한 메시지는 6자 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둔갑했다. 지난해 라이스 장관 발언의 오역 후 우리 외교부에서 미국의 통역은 영원한 숙제라고 토로했지만, 문제는 미국 정부가 통역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데 있다. 미국 제일주의, 영어 제일주의에서 나온 무심함을 버리지 않는 한 오역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실력과 경험을 겸비한 한국 출신 미국 시민권자를 찾지 못한다면 관례를 깨고 차라리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통역사로 근무하는 통역대학원 출신들에게 통역을 시켜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곽중철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장

2006.10.09 20:52 입력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