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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영어를 통해 본 영어학습 비결

매체명 : 조선일보   /   보도일자 : 0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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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칼럼] 이명박 영어를 통해 본 영어학습 비결

▲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장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영어 실력에 대한 기사를 잇달아 읽었다. 당선자가 통역 없이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고 연설까지 영어로 하는데 과연 그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호기심에서 나오는 보도들이다. 우선 당선자는 통역 없이 충분히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필자는 1990년대 초 정주영 현대 그룹 회장의 통역을 해보았다. 그는 영어를 직접 구사하지는 않았지만 상대방의 영어를 눈치로 거의 다 알아들었다. 특히 공사금액 같은 숫자가 나오면 통역을 통해 확인하는 철저함을 보였다. 그에게는 미사여구가 아니라 사업이 중요했다. 이 당선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대건설에 입사해 수많은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현장에서 영어를 익혀 직접 구사하게 됐을 것이다.

당선자 영어의 비결은 자신감이다. 그는 자신의 영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통한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영어로 농담을 해도 웃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친다. 사람들은 상대방의 지위가 높을수록 상대방의 말에 더 큰 주의를 기울여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 당선자는 현대그룹의 회장직을 거쳐 서울시장, 이제는 대통령까지 되었기에 그의 말은 훨씬 더 잘 먹힌다. 상대방이 그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못 알아들으면 듣는 사람만 손해다.

물론 이 당선인의 영어에는 특유의 억양이 있다. 한 사람의 외국어는 그가 구사하는 모국어의 거울이다. 모국어를 들어보면 외국어 수준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모국어만큼만 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고, 모국어의 억양이 대부분 외국어에 그대로 묻어난다. 이 당선인의 영어에도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영어에는 충청도 사투리 억양이 강하다. 그가 고교 시절 미국에 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하던 영어와 거의 차이가 없다. 결코 원어민 수준의 유창한 영어가 아니다. 그런데도 막중한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영어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감이 있으면, 외국어에도 그 자신감이 나타나고, 이상한 발음과 억양은 오히려 그의 언어적 카리스마가 되어 상대방을 휘어잡는다.

히딩크를 제외한 본프레레나 베어벡 같은 축구 대표팀 감독들의 영어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축구협회의 통역을 거쳐 큰 문제없이 전달됐다. 세계의 챔피언인 우리의 박지성, 박세리, 최경주, 김연아, 박태환 등도 이제 국제무대에서 제법 훌륭한 영어를 구사한다. 문제는 영어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의지만 뚜렷하면 말은 그냥 나온다. 조기 유학으로 대변되는 영어 학습 열풍의 동조자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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