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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비결 보여준 대통령

매체명 : 조선일보   /   보도일자 : 0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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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칼럼] 영어의 비결 보여준 대통령
곽 중 철•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입력 : 2008.04.24 21:57
게재: 조선일보 2008.04.25 A 29면


▲ 곽 중 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최근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서 영어를 어색하지 않게 하는 한국 대통령을 보는 감회를 새삼 느꼈다. 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연 박정희 대통령 이후 노태우, 김대중 등 전 대통령이 미 의회와 유엔 총회장 등에서 영어로 연설한 예는 있지만, 이 대통령처럼 자신감 넘치는 즉석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했다.

이 대통령은 뉴욕에서 투자설명회를 할 때 텔레 프롬프터(연설 원고가 나오는 투명판)를 이용해 영어 연설을 했다. 기초적인 R과 L, P와 F, B와 V 발음이 불안하게 엇갈렸지만 내용의 전달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한국의 대통령이기에 그의 말은 훨씬 더 잘 먹혔다. 못 알아들으면 손해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말을 이해하고 박수를 쳤다.

이번 방미 기간 중 이명박 영어의 백미는 캠프 데이비드 도착 직후에 발휘되었다. 골프 카트에 막 타려는 순간 부시가 You want to drive?라고 물었고, 이 대통령은 즉각 Can I drive? I will try라고 했다. 이동 중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더 나아가 Who is guest?(누가 손님인가)라고 조크를 던지는 순발력도 보였다.
그 다음날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을 하러 걸어 나오면서 먼저 회견장에 나와 김윤옥 여사 옆에 앉아 있던 로라 부시 여사에게 손짓하며 Good morning, Laura라고 외친 넉살은 수많은 해외 여행과 과거 워싱턴 연수 생활의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자신의 영어 농담이 분명히 남을 웃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의 우리말 모두 발언 중간에서 주한 미군 규모 동결 합의를 설명한 뒤, 부시 대통령을 돌아보며 그렇죠?라고 동의를 구한 것도 노련한 커뮤니케이터의 모습이었다. 부시도 기다렸다는 듯 Yes, thats an accurate statement(정확하다).라고 맞장구쳤다.

사람이 같은 말을 할 때, 같은 말로 의사를 통할 수 있을 때, 그 만남의 효과는 훨씬 더 커지는 법이다. 작년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IOC 총회에서 올림픽 공식 언어인 영어와 불어로 연설한 것이 동계 올림픽을 평창으로부터 빼앗아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대통령의 이번 방미 성과는 그의 자신감 있는 영어 덕에 더 큰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외국어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이상한 발음과 억양은 오히려 언어적 카리스마가 되어 상대를 휘어잡을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이 현재의 영어에 그치지 않고, 더 정확한 발음에 신경 쓰고 다소 과장된 제스처와 웃음소리를 자제해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래서 조기 유학이 아니라 실력과 자신감, 꾸준한 실전을 통한 연마가 영어 학습의 비결임을 온 국민에게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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