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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경 광 장] 공인 법정 통역사 도입 시급하다

매체명 : 매일경제   /   보도일자 : 08-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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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경 광 장] 공인 법정 통역사 도입 시급하다 2008.05.02(금)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니 남한 인구 가운데 2%가 외국인인 셈이다. 농촌 총각 10명 중 4명이 외국인 아내를 맞이하고 있으며, 신혼부부 중 15%가 국제결혼으로 맺어진다고 한다. 싫든 좋든 우리는 다인종ㆍ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것이다.

이런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려면 많은 관련법과 제도 정비가 필요한데 통ㆍ번역을 전공하는 입장에서는 우선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 농촌으로 시집 온 외국 여인이 남편에게 맞아 갈비뼈가 부러지며 죽어갈 때 그 억울한 사정만이라도 누군가가 정확히 전해줘야 할 것 아닌가? 특히 생명과 자유라는 소중한 인권이 좌우되는 법정과 의료 분야 통역에 있어서는 정부가 공인하는 통역사 제도가 하루빨리 정립되어야 한다.

국내 외국인들이 민형사상 문제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도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불이익을 받고 억울하게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많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가더라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돼 생명마저 위협당하는 일도 있다.

우리 법정에서는 현재 법정 통역인증제도가 없어 대학원생 등 검증되지 않은 인력이 하루 10만원도 안 되는 보수를 받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통역을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부가 제정하는 엄격한 인증제도를 통해 반드시 자격 있는 통역사가 책임지고 관련 통역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통역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이다. 양쪽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한다고 해서 모두 유능한 통역사가 될 수는 없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하게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사실은 양쪽 언어가 다 미흡해 오역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 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LA의 법정에서는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통역사가 재판을 그르친다고 한다. 자격 있는 전문 통역사가 아니면 억울한 외국인 거주자를 도우려는 선의와 상관없이 오역으로 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

법정에서 심문을 받던 피고가 그후 저는 경찰에 자수했습니다라고 했다. I turned myself in to the police after that이 맞겠다. 그러나 경험이 일천한 아마추어 통역사가 무심코 I made a confession이라고 옮기면 자백했다고 오역을 한 것이다. 죄를 자백하였으니 재판 할 필요도 없이 유죄를 인정한 것이다.
또 편견이나 동정에 영향받지 않는 정확한 통역을 위해서도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인 전문 통역사가 있어야 한다. 이미 늦었지만 우리 입법부와 사법부가 힘을 합쳐 법정통역사 인증제도를 도입해야 할 때다. 그 토대 위에서 정부 인증을 받은 통역사가 형사법 절차의 처음부터 끝까지 통역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면서 글로벌 한국의 사법체제 정의와 형평성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올해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로스쿨 제도가 시행된다. 이 제도의 본격 출범과 함께 법정 통역사 인증제도를 실시하기에 아주 좋은 적기다. 이런 선진 법률 교육제도도 국내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외국인 거주자를 위한 정확한 통역을 제공하지 않고는 결코 글로벌한 수준에 이를 수 없다.

우리 땅에 같이 사는 외국인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세계 속의 한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법정이나 병원에서의 통역은 광의의 지역사회 통역 범주에 든다. 어렵지만 최고난도의 통역은 아니다. 인증제도만 확립되면 기존 국내 통ㆍ번역사 교육 역량만으로도 얼마든지 유능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우리 법조계와 입법부가 하루빨리 공인 법정 통역사 제도를 위한 절차를 밟아줄 것을 촉구한다.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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