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모음

힘없는 번역사 탓할 일 아니다

매체명 : 조선일보   /   보도일자 : 08-07-04

본문


조선일보 2008-07-04 A25면
[초 점] 힘없는 번역사 탓할 일 아니다
오역(誤譯) 논란
곽중철•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정부가 동물성 사료 금지 완화 조치를 담은 미국 연방 관보 내용을 오역(誤譯)했다는 보도가 나온 얼마 후 MBC PD수첩은 지난 4월 방영분에 담긴 번역의 경우 또박또박 제대로 번역하지 않았거나 의역을 해서 오해의 여지를 남겼다고 해명해 오역 논란이 계속 되고 있다.

지난 정부 때 미국측 통역사들의 통역이 시원찮아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번 정부 들어서는 우리측의 번역이 잇달아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측 통역의 경우 통역의 중요성과 그 메커니즘을 간과하고 전문 통역사를 확보하지 못한 미국 정부에 원초적 책임이 있다면 이번 국내 번역의 경우는 번역사의 자질보다는 그들을 쓰는 사용자인 한국 정부와 방송사가 번역물을 잘못 처리한 책임이 있다.

통역사와 달리 번역사는 전문 대학원의 교육을 거치지 않고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더 많다. 번역사들 개개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번역을 의뢰하는 고객들의 주문은 한결같다. 시간이 촉박하니 최대한 빨리 번역해 달라. 번역료는 규정상 많이 줄 수 없다.
이제 이런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다른 직종과 마찬가지로 번역이라는 직능도 대우와 보수에 비례해 그 중요성이 가늠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미국 연방 관보 내용이나 광우병에 대한 해외 취재 내용 등 중요한 내용을 번역할 때는 힘 없는 번역사의 번역을 그대로 인용할 게 아니라 전문가의 철저한 감수나 변호사의 자문을 거쳐야 한다. 더구나 번역사의 번역을 사용자의 의도에 맞춰 맘대로 고쳐 썼다면 더더욱 번역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것은 번역사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비겁한 책임 회피 행위다.

번역은 반역(叛逆)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확하고 말썽 없는 번역은 힘들다. 정부든 민간이든 지금부터라도 번역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 중요성에 크게 눈떠야 한다.
입력 : 2008.07.03 21:44 / 수정 : 2008.07.04 00: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