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사모음

김연아 영어 단상

매체명 : 조선일보   /   보도일자 : 09-04-06

첨부파일

본문


 [편집자에게] 김연아 영어 단상(斷想)
• 곽중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조선일보 입력 : 2009.04.05 23:19 / 수정 : 2009.04.06 02:30


최근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는 수상 후 가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여 또 다른 칭찬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연아의 영어 교사가 엄마 박미희(52)씨로, 박씨는 딸이 어릴 때부터 하루 3~4시간씩 차에 태우고 훈련장을 오가는 시간에 영어 테이프를 끊임없이 듣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역시 영어 인터뷰를 거뜬히 해내는 축구의 박지성, 골프의 박세리와 최경주, 수영의 박태환 등 모두가 엄마 덕에 영어 테이프를 들었을까? 그들의 공통점은 엄마의 정성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데서 나오는 자신감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어학습의 비결 중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 영어를 배우려고 조기유학을 가기보다는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란 모국어든 외국어든 그 내용(콘텐츠)이 중요하다. 표현할 내용만 확실하면 말은 어떻게든 흘러나온다. 말이 안 되는 사람은 할 말이 없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뿐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언론이 서투르게 보도하는 이슈 중 하나가 특정인의 영어실력에 관한 것이다. 최근 모 대학을 수석 졸업한 여학생을 두고 외국어에도 능통해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했다. 이 말은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비올라•첼로를 다 연주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한 우리 선수가 외국 언론과 영어로 인터뷰하면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고 보도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녹음된 테이프를 들어 보면 그냥 무난히 의사 전달하는 수준이다. 오늘 컨디션이 어땠고, 무엇이 쉬웠고 어려웠으며, 앞으로 더 잘하겠다. 감사하다는 말뿐인데 무엇이 크게 어려울까?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과장 보도가 나오는 걸까?

현재 미국대사로 있는 한덕수 전 총리도 영어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서기가 곤란하다고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언론 하마평에는 그의 양복 주머니에 최신 영어 표현을 적은 수첩이 있을 정도로 노력한다는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는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국사에 바쁠 텐데 작은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모습을 국민이 좋아할까?

세계를 제패하는 우리의 골프•축구•수영•스케이트 선수들이 운동 실력만큼 영어에서도 완벽하지는 않다. 때론 우승컵을 받고 몇 마디 하는 영어다. 조기영어 교육에 지친 학생과 부모가 열등감을 느끼며 부러워할 수준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 언론은 히딩크,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벡 등 네덜란드 출신 축구감독들의 엉터리 영어는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