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가 된 트럼프 대통령 통역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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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07-31 10:53 조회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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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가 된 트럼프 대통령 통역 임무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명예교수 곽중철 010-5214-1314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첫날부터 국제 통역계에서 악명이 높아진 인물이다. 격식 없는 화법, 종종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문장 구조, 문법을 초월하는 즉흥성, 그리고 정치적 함의가 얽힌 말장난(pun)은 통역사들에게 단순한 언어 장벽을 넘어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집권이 현실이 된 지금, 그 공포는 되레 강화되고 있다. 최근 열린 여러 정상회담에서 그는 몇 번이나 상대 측 통역사의 영어 발음을 문제 삼았고, G7 관련 회담에서는 이탈리아 총리가 수행 통역사의 말문이 막히자 본인이 직접 영어로 통역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왜 트럼프는 통역사들의 악몽인가?
첫째, 그의 발화는 통상적인 연설문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우린 아주 위대한 일을 했어요, 정말로. 아무도 우리처럼 못했죠, 믿기 힘들 만큼!” 같은 말은 수사적 강조가 반복되고, 정보의 논리적 순서가 없다. 통역사는 문장의 끝까지 들어야 문맥이 잡히는데, 트럼프의 발언은 문장 자체가 종결되지 않거나 “Believe me”, “Okay?” 같은 여운으로 흐려진다.
둘째, 단어 선택이 자의적이다. 통상적인 외교 수사 대신 “nasty”, “beautiful deal”, “fake”, “loser” 같은 감정어가 등장하며, 이는 상대국 수반의 체면이나 언론의 해석을 고려할 때 고스란히 옮기기 곤란한 부담을 안긴다. 정중한 대응을 요구하는 다자외교 무대에서는 더더욱 통역사가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다.
셋째, 뉘앙스를 타는 은어적 표현과 문화기반 농담이 문제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단순한 구호조차 문화적 함축이 강해 직역이 불가능하고, “I have the best words” 같은 자기풍자도 문맥과 청중 이해 수준에 따라 달리 전달돼야 한다. 이런 표현들은 기계적 번역을 넘어 ‘해석’이라는 고차원적 작업을 요구한다.
넷째, 트럼프 발언의 행간의 의미를 읽는 것도 문제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외교 문서는 점잔 빼는 표현으로 가득 차 있어서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고 했다. 트럼프의 화법은 그 정반대인 강경 일변도이지만, 화자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은 마찬가지이다. 이 경우 발언의 수위에 천착하는 대신 트럼프의 본심을 알려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데 최근의 이란 핵시설 공습 이후 대국민 담화에서는 이란에게 '지난 8일간 목격한 것보다 훨씬 더한 비극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나 이란 정권의 종말을 암시하는 말은 없었다. 오히려 '평화를 선택해라(make peace)'는 두 단어가 600자가 넘는 트럼프 연설의 키워드였다. 실제로 트럼프가 이스라엘과는 달리 이란의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의 은신처 공습에 반대했음이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이 같은 트럼프의 심중이 대국민 담화에서도 은연 중에 드러난 셈이다.
트럼프 통역사에게 필요한 건 ‘언어력’보다 ‘정신력’
트럼프 시대의 통역은 단순한 언어기술이 아니라 심리적 내성, 외교적 감각, 그리고 유연한 즉흥 대응 능력을 모두 요구한다. 이탈리아 총리의 사례처럼 지도자가 직접 ‘통역’을 하는 사태는 단순한 언어 혼란이 아니라, 통역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붕괴를 의미한다. 이는 외교력 자체의 위기를 뜻할 수도 있다.
해결책은 있는가?
근본적으로는 트럼프 자신의 언어 습관이 개선되어야 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통역 시스템의 다층화가 필요하다.
사전 브리핑 강화: 발언 패턴, 비유, 고유표현에 대한 통역 팀 내 사전 분석 및 시뮬레이션 훈련이 필수적이다. 트럼프 발언에 특화된 예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필요도 있다.
동시+순차 병행 전략: 트럼프처럼 즉흥성이 강한 화자의 경우, 동시통역 도중 일정 구간은 순차로 전환해 정리하는 방식이 효과적일 수 있다.
발언 통제 장치 마련: 외교적 자리에서는 일정 시간 이상 발언을 제한하거나 문답 형식을 유도해 통역이 정보 구조를 잡기 쉽도록 해야 한다.
AI 통역 보조 활용: 실시간 AI 분석을 통해 화자의 패턴을 예측하거나 메타정보(강조 단어, 감정 등)를 시각적으로 통역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기술적 보완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통역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외교의 ‘보이지 않는 손’이자, 국제 정치의 리스크 조정 장치다. 통역사들이 기피하게 되는 지도자는 역설적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신뢰도와 예측 가능성을 훼손시키는 인물일 수 있다. 트럼프 2기의 통역 공포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현 외교 질서의 경고음인지도 모른다.
조만간 이루어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무사한 통역이 가능할까? 미국 측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1기부터 그를 통역한 미 국무부의 한국 출신 여성 통역국장이나 더 젊은 후배가 나오면 부담감이 작을 것이다. 반면 우리 측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 수행 통역 준비를 시작한 외교부의 남성 서기관이 대기 중이라는 설이 있다. 우선 그에게 행운을 빌 뿐이다.
끝으로, 워낙 자유분방한 트럼프의 화법 때문에, 현장성이 생명인 통역에는 어찌 보면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라는 고참 통역사들의 칭찬 아닌 칭찬도 있기는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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