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승절 행사

 중국이 다음달 3일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위한 예행연습을 진행했는데 최신 무기가 대거 동원됐고, 병력 만 여명이 참가했단다. 무기 장비 500여 대, 군용기 200대가 동원됐고, 중국 신화통신은 올해 열병식에서 중국은 역사상 가장 많은 전략 미사일을 전시할 예정이란다.
원거리와 중거리•근거리, 신형 미사일 등 7종류를 선보일 것이며 미사일 숫자는 150기를 넘을 전망인데 중국은 2009년 열병식에서 미사일 108기를 공개한 바 있다. 이번 열병식에 동원된 무기 장비 가운데 84%가 신무기로, 중국군의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란다. 신화통신은 또 공중급유기, 전폭기, 전투기, 헬기 등 모든 항공 전력이 총출동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열병식에는 일본군과 직접 싸웠던 항일부대 노병들이 참가하고,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10여 개국이 파견한 군대와 대표단도 참여할 예정이란다.

이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그는 1974년부터 1979년 10월1일까지 아버지와 함께 참석한 우리 국군의 날 행사를 상기할 것이다. 필자는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던 1974년 8월 15일 직후인 10월 1일 지금은 공원으로 변한 여의도 516 광장에서 열린국군의 날  열병식에 참가했다.
         
필자는 ROTC 14기로 1년차인 대학 3학년 때 외대 장교후보생으로 국군의 날 열병식에 참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해 8월에는 다른 대학 후보생 약 200명과 함께 중앙대와 연세대 교정 등에서 행진연습을 하다가 9월부터는 여의도로 가 현역 장병 약 5천명에 합류했다. 추석날에도 그 넓은 광장에서 '걸음마' 연습을 계속했는데 군대를 갔다 온 사람도 그 행사의 분위기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광장을 가득 메운 5천여 장병 중 ROTC와 예비군은 서울대교(현 마포대교) 쪽 좌측 끝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 이유는 현역 장병보다 수준이 많이 떨어져 별도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가 설명을 시작한다. "대통령 각하께서 타신 승용차가 서울 대교를 통과했으므로 곧 이 식장에 도착하시겠습니다."

제병지휘관은 이소동 중장. 그가 마이크로 "부대 차려!"를 외치면 예하 부대장들이 복창하고 장병들은 단상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차려총 자세를 취한다. 대통령이 임석하면 "대통령에 대한 받들어 총" 명령이 떨어진다. 5천 장병의 "충성" 구호가 끝나려면 10초 이상 걸린다. 대통령은 5성의 원수급이니 같은 멜로디가 5번 반복되는 경례음악이 대규모 군악대의 연주로 웅장하게 울려 퍼진다. 남자로 태어나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된 자부심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일 것이다. 필자는 대통령이 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대통령 특별기를 타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1등석을 모두 대통령을 위해 개조한 대형비행기를 타고 야당이 없는 해외로 나가는 기분은 정말 좋지 않겠는가? 필자는 12번 대통령의 해외 여행을 수행했다. 

대통령이 연설하는 기념식이 끝나면 대통령은 제병지휘관과 무개차를 타고 도열해있는 육해공 및 해병대 장병들을 단상에서 오른쪽 끝부터 열병한다. 대통령이 각 부대 앞을 지나기 직전에 부대장은 '우로 봐' 구령을 하고 부대원은 얼굴을 45도로 돌려 지나가는 대통령 얼굴을 따라보다가 정면에서 멈춘다. 더 이상 보면 안된다. 맨 왼쪽에 서있었던 필자도 구령에 따라 우로봐를 했는데 박정희의 얼굴은 인자해 보였다. 키가 작았는데 157센티였다니 정말 작은 거인이었다. 당시에는 필자가 군대생활을 그의 경호실에서 복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열병이 끝나고 대통령이 단상에 복귀하면 분열식이 시작된다. 대통령은 단상에 서있고 장병들이 행진하며 단상 앞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역시 단상의 약 20미터 전방에서 우로봐를 한다. 맨 오른쪽 열은 우로 보지 않고 전방을 응시한다. 이때 남녀 아나운서는 각 부대를 설명한다. 예를 들면 "주황색 유니폼도 산뜻한 여군 부대!" 등이다. 

분열도중 역시 열병에 참가한 군악대가 주옥같은 군가를 우렁차게 연주한다. "원쑤의 적을 행해 밀어나가자. 굳센 우리 앞엔 가랑잎이다. 겨누는 조준 속에 몰려드는 적. 우리는 무찌른다. 추한 가슴들. 우리는 보병이다. 국군의 자랑. 우리는 보병이다. 국군의 기둥, 우리는 보병이다. 국군의 자랑 " 등의 곡조는 장병들의 사기를 한껏 돋우었다. 나는 보병가야말로 최고의 군가라고 생각한다. 분열이 끝나고 식이 마무리되면 일부 정예 부대들은 서울 도심 행진에 나서고 광화문 등지에서 시민들은 꽃가루를 뿌리는 것이다. 

필자는 1974년부터 1978년까지 군대 체험 중 이 국군의 날 행사가 가장 큰 기억으로 남아있다. 통역장교로 군사영어교관, 경호실 번역요원 등 특과로 군 생활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행사가 필자의 국가관과 사생관을 정립하는데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북경에 갈 때마다 천안문 광장을 좋아하는 필자를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이번 전승절 행사는 CNN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마음 속으로 "보병가"를 부르며.... 

군 복무시절 얘기를 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중요한 시점마다 찍어놓은 사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이야 스마트 폰으로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휴대폰은 물론 카메라도 흔치 않았고, 사진기가 있어도 찍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특히 군 내에서 사진기를 꺼냈다가는 "군기가 빠졌다"는 말을 들었을 테니까. 20대 중반 67kg의 젊은 시절의 나와 전우들의 모습을 상기시켜줄 사진이 없다는 것이 나를 한없이 쓸쓸하게 만든다. 전투복, 정복, 하계 약정복을 입은 초급장교의 모습이 그립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 했는데...
 



 

 
 
 

곽중철 (2015-09-08 15:50:21) 
 
9월3일 11시는 2학년 첫 수업이 있는 시간, 교실에서 컴퓨터로 베이징 현장을 연결해 제자들과 함께 꼬박 1시간을 함께 열병식을 지켜보았다. 학생들은 "이래도 돼?"라는 표정들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가슴 설레는 광경들이었으니까...
내가 체험한 우리 국군의 날 행사보다 더 크고 화려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시진핑이 사열 도중 차량의 앞쪽에 단 마이크를 통해 "제군들 안녕하신가?"라고 여러차례 묻고, 장병들이 "인민을 위해 봉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었다. 약 5년 전 배우려다만 중국어를 다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곽중철 (2015-09-22 17:28:18) 
 
[박보균 칼럼] 여의도 광장의 부활
[중앙일보] 입력 2015.09.17
박보균 대기자

 광장은 기억이다. 광장은 이미지를 뿜어낸다. 그것은 압박하듯 덮쳐온다. 천안문(天安門) 광장의 전승절 열병식은 위압적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리무진 훙치(紅旗)에서 외쳤다. 중화 대국의 세상은 선포됐다. 광장의 풍광은 역사로 저장된다.

　그 장면은 여러 상념을 낳는다. 나의 머릿속에 여의도 광장이 떠오른다. 오래전에 사라진 곳이다. 건축가 김석철(국가건축정책위원장)씨와 전화했다. 그는 1970년대 전후 여의도 개발 디자인을 맡았다. 그의 목소리는 탄식이다. “여의도 광장이 없어진 게 너무 아쉽다. 넓은 그곳은 천안문 광장 이상으로 웅대했다.” 그의 회상은 선명해진다. “여의도 개발 때 박정희 대통령은 훗날의 통일에 대비했다. 남북한이 함께 어울릴 통일 광장으로 조성했다.” 통일은 장엄한 미래다. 광장은 컸다. 그 공간에서 장대한 내일에 대비했다.

　나의 감상은 과거로 뻗어간다. 89년 나는 러시아에 갔다. 소련 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야당 총재 때다. 그의 모스크바 방문을 취재했다. 그곳 붉은 광장은 강렬했다. 냉전의 상징 장소였다. 그곳의 초대형 핵미사일의 도열 사진은 압도적이었다. 나는 그걸로 붉은 광장의 크기를 짐작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깨졌다. 여의도 광장의 절반쯤 됐다. 그것은 역설적인 충격이었다. 박정희 시대의 스케일은 광대했다.




　서울에 시청, 광화문 광장이 있다. 김석철의 평가는 실감 난다. “ 1000만 거대 도시와 어울릴 광장이 서울에 있는가.” 광화문 광장은 관광명소다. 하지만 도로와 격리돼 있고 좁다. 군부대 계룡대에 연병장이 있다. 여의도 광장을 대체하기엔 작다.

　여의도 광장의 해체 시점은 97년 4월이다. 담당은 민선 단체장인 조순 시장의 서울시였다. 명분은 공원(약 23만㎡, 6만9000여 평) 녹지와 휴식공간 확충. 아스팔트를 걷어내 푸른 숲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 정책 깃발엔 ‘개발독재 잔재의 폐쇄’라는 구호가 담겼다. 광장은 초라해졌다. 김대중(DJ) 대통령은 취임(98년 2월) 후 다른 관점을 내놓았다. DJ는 “서울에 걸맞은 큰 광장이 필요한데, 여의도 광장을 없애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제동을 걸기엔 늦었다.

　광장은 서사시(敍事詩)다. 국군의 날은 광장의 간판이었다. 그 시절 학생·시민 상당수가 행사에 동원됐다. 군사문화의 어두운 추억이다. 하지만 그것은 광장의 오랜 기억 중 부분이다. 그곳의 서사는 다양하다. 여의도 광장은 일제시대 비행장이다. 1922년 안창남은 단발 쌍엽기로 그곳에서 날았다. 5만 인파가 환호했다. 그는 ‘경성의 하늘’에서 한민족의 웅비를 예고했다.

　1945년 8·15 광복 사흘 뒤(8월 18일)다. 임시정부 선발 비행기가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했다. 광복군 정진대(挺進隊, 이범석·장준하·신일·노능서)가 탄 미군 수송기다. 김구의 임시정부가 고국 땅을 처음 밟은 순간이다. 감동은 벅찼다. “이윽고 (수송기의) 문이 열렸다.… 아, 그때 그 바람 냄새, 그 공기의 열기, 아른대는 포플러의 아지랑이.”(장준하 수기 『돌베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달 18일 여의도 공원에서 C-47 수송기 전시회를 열었다. 장준하가 탔던 비행기와 같은 기종이다. 광장이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광복 70주년 그 행사의 의미와 매력은 더했을 것이다.

　여의도 광장은 부국과 강병을 드러냈다. 60~70년대 그곳에서 베트남 파병, 수출 증진 대회도 열렸다. 그때 이름은 5·16 광장. 87년 12월 대통령선거 때다. 노태우와 야당의 김영삼·김대중 후보가 경쟁했다. 그들은 여의도 광장에서 번갈아 집회를 열었다. 추운 겨울 그곳에 100만 인파가 계속 모였다. 절정에 오른 민주화 현장이었다.

　유럽의 역사는 광장의 역사다. 여의도 광장도 역사의 극적 장소였다. 광복,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동과 파란을 담았다. 하지만 광장의 철거는 허망했다. 그것은 굴절된 역사관이 낳은 비극이었다. 빈곤한 상상력은 도시의 졸작을 남긴다.

　박근혜 대통령은 70년대 후반 여의도 광장에 섰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국군의 날에서다. 박 대통령은 3일 성루 위에서 천안문 광장을 내려다봤다. 대통령은 두 광장을 비교했을 것이다. 여의도 광장은 복원해야 한다. 여의도 공원의 선도적 역할은 끝났다. 그 공원 이후 뚝섬 서울 숲, 북서울 꿈의 숲이 생겼다. 그 공원의 시범 임무는 완수됐다. 여의도 공원에 사람은 적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 아래 한강시민 공원이 있다. 여의도 주민 대부분은 한강 공원으로 간다.

　광장은 재탄생할 수 있다. 여의도 공원의 일부만 남겨놓고 나무는 옮기면 된다. 김석철의 부활 설계는 야심작이다. 그는 국회의사당과 연결해 광장을 재구성한다. 여의도 광장의 야망은 통일이었다. 그 비전은 재생산돼야 한다. 광장은 시대정신을 표출한다.

박보균 대기자 
 
 
 

곽중철 (2015-09-22 17:49:34) 
 
내가 70년대 후반의 516 광장을 추억하는 게시판의 이 글을 올린 것이 8월 24일이었는데 뱍보균대기자가 9월 17일 "516 같은 큰 광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칼럼을 써 감개무량하다.
여기서 떠오르는 노래가 당시 대통령 경호실에서 불렸던 경호원가의 1절이다.

516 넓은 광장에 밝은 빛을 심어주신
 오직 한 마음 잘사는 나라
 디디시는 걸음 걸음마다 겨레위한 근심으로
 밤과 낮을 잊으신 님의 정성 받들어
 우리는 용맹과 지혜와 슬기 또한 가꾸면서
 이 한 목숨 끓는 피 충정으로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