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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학생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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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6-17 14:57 조회3,5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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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학기 말에 제출된 리포트에서 한 재학생이 피력한 의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당사자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겠으니 내용만 참고해 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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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수업시간에 각자의 통역에 대해 크리틱을 받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는 하면 안 된다 교육을 받긴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실제로 교수님들과 훌륭한 선배들의 통역 best practice를 모아 놓은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그 속에서 각자에게 맞는 모델을 찾아 본받고 그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목표설정을 하기가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고수 선배들이 직접 통역하는 것을 녹음 혹은 녹화한 자료를 입수하는 것은 물론 제한된 경우에 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했다면 그 동안 가능한 범위에서도 유용한 자료들이 꽤 모아졌을 것이고, 저처럼 통역사로 태어나지 못했고 창의력도 부족한 후배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학습 자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답) 나도 프랑스의 ESIT를 3년이나 다녔고, 유럽에서 매년 열리는 셰계통역학교협회(CIUTI) 총회를 이제 6년이나 참석했지만 그런 데이타베이스가 있다는 학교는 못봤습니다. 대부분 학교가 <Swim or sink!>의 모토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교는 방향만 제시하고 길을 찾는 것은 학생들 몫이라는 원칙이지요.

우선 통역의 녹음은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지적재산권 문제도 있고, 통역사나 주최 측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TV 동시통역은 시간에 맞춰 들어볼 수 있고 인터넷 화면을 캡쳐해 반복 청취도 가능하며 , 국제 회의에 가서 통역을 들어보는 것은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노력할 문제이입니다. 그것이 기업과 다른 점이지요. 통역은 그 시점의 순간적 예술이라 몇 년전의 통역은 best practice 가 아니라 이미 전설입니다. 신성일/ 엄앵란의 영화를 보고, 고복수의 노래를 듣는 것과 같습니다. 젊은 강사들의 얘기를 듣고, 개인적으로 부탁해 회의장을 찾아 통역을 들어보세요. 통대 교수진이란 그런 데이타베이스를 만들만큼 한가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강의하고, 논문쓰고, 실제 통번역을 하며 생활비에 보태야하는 중산층입니다.

그런 데이타베이스의 도움을 받겠다는 발상은 손 안대고 코풀겠다는 안이한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데이타베이스는 구축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리지널 연설문을 확보하고, 실제 연설과 통역을 녹음해 보관하는 일은 그 일만 하는 교수를 확보한다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문) 국내 최고의 GSIT 재학생으로서 자신도 부끄러운 점 셀 수 없지만 실제로 그곳에 들어가 보니 과연 듣던 대로 최고더냐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우리학교에는 이러 이러한 교수님들이 계신다는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통역사로 태어나지 않은 범재이기에 일주일에 14시간 수업과 독학 이외에 외대 GSIT에서만 얻을 수 있는 플러스 알파가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 플러스 알파를 눈앞에 두고도 못 찾고 있다고 꾸짖으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답) 전문 통번역 과정을 2년에 마치는 일은 정말 어려운 과업입니다. 4년을 해도 시간이 모자를 일입니다. 나는 매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온 학생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를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우선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실력은 데이타베이스가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야합니다. 데이타베이스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시간 강사를 포함한 교수진의 강의를 듣고 질문을 하고, 신문을 보며 시사를 이해하고, 끝없이 자습과 그룹 스터디를 하며, 실제 통역현장을 찾아다닐 수는 여건이 된다면 그것이 플러스 알파입니다.

나는 30년 전 한 번도 통역을 해보지 않은 교수진으로부터 통역을 배웠습니다. 통번역이 말 놀음이 아니요, 지식 싸움이며 의미의 전달이라는 진리도 내 스스로 깨친 후 후배들에게 거품을 물며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통대 재학생은 역전의 용사들로부터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배우고 있기 때문에 2년에 과정을 마칠 수 있는 겁니다. 나는 4년이 걸렸지요. 4년을 2년으로 줄일 수 있는 환경이 플러스 알파 아닙니까? 아주 큰 알파지요.

나는 8년 후면 퇴임이지만 다른 전임은 아직 평균 1 8년이 남았습니다. 나 이후의 통대 앞날은 그들이 책임지겠지요. 나는 12년 전 모교에 임용된 후 비뚤어진 학교를 바로잡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 통대는 <학생들이 실력대로 평가 받고, 졸업 후에는 실력대로 돈을 버는> 공정한 운동장(level playground)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현 재학생으로서 공정하지 못한 관행이 있으면 말해보세요. 내가 규정의 두 배인 12년 만에 안식년을 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나는 할만큼 했다고 자부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학생으로서 할 일은 하지 않고, 학교가 날 위해서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는가만 묻고 있습니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태도이지요. 플러스 알파가 아니라 학교 내외에 깔려있는 기본 데이타베이스도 활용하지 못하면서 플러스만 찾고 있습니다. 스터디 룸이 부족하다고 불평하지만  오후에 학교 4.5.6층을 가 보세요. 텅텅 비어 있습니다. 설령 알파의 데이타베이스가 있다고 해도, 활용할 수 있는 실력과 성의가 없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실력 배양을 해놓고 학교 탓을 해야지요. 있는 자원과 환경도 이용하지 못하면서 더 많은 지원을 요구함은 무리입니다.  우선 연설을 이해하는 청취력부터 기르세요. 데이타베이스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예요. 기초 실력도 없으면서 고급 데이타를 찾으면 뭘합니까?

이래도 불만이 있다면 그런 데이타가 있는 다른 학교로 가세요. 다른 통대를 다니다가 우리 통대에 온 학생들이 <다른 학교와 비교가 안된다, 완전히 다르다>고 증언하고, 다른 통대와 시내 학원가에서 왜 우리 통대를 하늘 같이 생각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우리 통대를 다닐 이유도, 그럴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 Now, ask, what you can do for your school! (끝)


곽중철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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