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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를 통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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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11-20 02:53 조회3,3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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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시에 아침을 먹고 잠을 더 잤습니다.
점심 때부터 오늘 통역할 야구와 농구 관련 기사를 정독하고
 경기 용어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무심코 들었던 투수의 자책점(earned runs),
페널티 지역 득점(points in the paint) 등 배워야할 부분이 많았습니다.

오후 6시에 대만과의 야구 결승과 9시 남북한 남자 농구 후 통역을 배정받고
 택시타고 먼저 야구 경기장으로 가 제자와 서울에서 온 그의 남편 이렇게 셋이서 한국 응원단에 끼여 경기를 보았습니다. 결과는 금메달, 추신수에게 대박이 터졌습니다.

시상식을 끝내고 은메달 대만에 이어 기자회견을 하는데 사회자, 류현진, 추신수, 조범현 감독, 저
 이렇게 앉았습니다. 류현진은 합동훈련 시 몸이 좋지 않았는데 격려해 준 감독 이하 코칭 스텝과 열심히 싸워준 선배들께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한겨레 신문 기자의 병역관련 질문을 받은 추신수는 기다렸다는 듯
"병역문제를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만을 위해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국가대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영광의 자리기 때문에 참가했다. 야구가 좋아서 야구 선수가 되었고, 이왕 선수가 된 이상 국가 대표가 되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등이 아닌, 1등이 되기 위해 열심히 뛴 결과 금메달을 땄다. 너무 기쁘고 아직 꿈을 꾸는 것 같다. 미국에서 살며 운동하고 있기에 경기장에서 미국 국가만 듣다가 오늘 시상식 애국가를 듣고 뭉클해서 운 것 "이라는 요지의 답변을 했습니다. 나는 조감독과만 악수를 나누고 남자 농구 남북한 전이 끝나가는 눙구장으로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도착하니 개임은 96:66으로 끝나 있었고 뛰어서 회견장으로 갔더니 북한의 오 감독과 선수 1명이 예의 중국어 통역을 데리고 나왔다가 남한 팀이 나오지 않자 일단 퇴장했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통역을 시작하기 전 중국 측에서 북한을 절대 North Korea라 하지 말고 DPRK로 통역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북한은 중국에게도 뜨거운 감자임이 분명했습니다. 나는 통역 중에 그 부탁을 잊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 중국어 여성 통역을 데리고 나오니 통역도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 북한 관련 질문 답변은 그녀가 중국어로 통역하면 중국 통역사가 영어로 통역하고, 남한 관련 문답은 내가 영어로 통역하고  중국 통역사가 중국어로 통역하고... 복잡하지요?
그런데 나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88서울 올림픽 당시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네 차례의 IOC 주재 남북 체육회담에서도 두개의 통역 부스에서 나와 북한 통역사가 각각 통역을 했으니까요. 그때의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경험많은 나이든 통역사가 척척 통역을 해주니 중국의 담당자들이 내일 모레 21일에 있는 남한의 경기에도 꼭 통역으로 나와달라고 하더군요. 더 재밌는 경기가 없다면 기꺼이 가야지요.
오늘도 통역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아직 체력은 되는데 순발력이 젊을 때만큼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었습니다. 30대에는 거의 매일 고위 인사들의 순차통역을 하면서 나 자신도 놀랄만한 순발력을 발휘했는데... 자정을 넘기고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조용히 노래를 읊조렸습니다.  ---청준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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