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訪美연설문 마지막 한 장 사라져 관계자들 사색됐는데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3-06-21 13:21 조회4,717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댓글목록
곽중철님의 댓글
곽중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클릭! 취재 인사이드] 대통령 訪美연설문 마지막 한 장 사라져 관계자들 사색됐는데…
신동흔 여론독자부 차장이 전하는 '대통령 연설문의 세계'
신동흔 여론독자부 차장
입력 2013.06.20. 03:06
15
신동흔 여론독자부 차장
신동흔 여론독자부 차장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the West Wing)’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동(棟)인 웨스트윙의 일상(日常)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드라마 속의 백악관 참모들 가운데 항상 펜과 종이를 손에 들고 때로는 혼자 중얼거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연설문 담당인 공보수석입니다. 대통령의 모든 연설 원고를 책임진 그는 딱맞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합니다.
그는 사전에 대통령 및 참모들과 브레인 스토밍을 갖고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한 다음 원고를 작성해 대통령에게 전달합니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온 그는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해 멋진 원고를 씁니다. 다른 참모들이 공보 수석에게 달려와 “오늘 연설 좋았다, 잘 썼다”고 얘기하는 대목도 나옵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첫 지명될 당시 유명한 ‘담대한 희망’ 연설문을 썼던 존 파브로는 오바마 대통령을 따라 백악관에 입성해 2008년 사상 최연소(만 23세) 백악관 참모가 됐습니다. 파브로는 대통령 최측근에서 5년 넘게 일하다가 올해 초 백악관을 떠나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연설문 담당자들은 어떨까요. 저는 얼마 전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던 강원국 전 청와대 비서관(1급)을 만나 조선일보에 기사화했습니다.( ☞ 기사바로가기)
강원국 전 청와대 비서관
강원국 전 청와대 비서관
1990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강씨는 대우그룹에서 김우중 회장의 연설문 담당자로 일하다가 그룹이 해체된 2000년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연설문 담당 행정관(4급)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5년)을 포함해 8년간 대통령 연설문 담당으로 일한 ‘대통령 연설문 전문가’입니다.
2008년 효성그룹 회장실 상무로 일하다가 벤처기업 임원을 거쳐 최근 한 출판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가 체험한 대통령들의 연설문 준비 스타일은 어땠을까요?
'선생님'처럼 세밀하게 수정지시한 김대중, 현장 애드립 좋아한 노무현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연설문 담당자들은 원고를 쓸 때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김 전대통령이 ‘선생님’처럼 원고에 수정사항을 빽빽하게 메모해 비서들에게 돌려보냈기 때문이랍니다.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 옆에 ‘일본식 표현이니 앞으로는 사용하지 마세요’라고 채점하듯 써서 원고를 내려보냈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원고에 하얀 여백이 거의 안 남아 있을 정도로 빽빽하게 수정된 원고가 돌아오기도 했답니다. 수정할 내용이 많아서 더 쓸 공간이 없으면 아예 녹음을 해서 카세트 테이프를 연설문 담당 비서들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면 연설문 담당 비서들은 그 테이프를 틀어놓고 그대로 원고를 작성해 연설문을 썼다고 합니다. 강 전 비서관은 “고생해서 원고 초안을 보냈는데 테이프가 돌아오면 허탈하기도 하고 대통령의 바쁜 시간을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밤 10시에 회의를 열어서 연설문을 다시 쓰자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날은 꼬박 밤샘을 해야 하지요. 대통령이 직접 밤을 새며 연설문을 쓴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음날 오전 10시에 행사가 있는 날이었는데, 바로 12시간 전인 전날 밤 10시에 관저에서 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연설문이 완전히 바뀔 판이었는데 노 전 대통령이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날 온 사무실은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스탭들이 분야별로 나눠 연설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쓰고 있을 때 새벽 3시쯤 전화가 왔답니다. 노 전 대통령이었죠. “잘 되어가고 있나요?”, “지금부터 내가 할테니까 다들 눈 좀 붙이세요. 지금까지 쓴 것을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즉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날 새벽 연설 담당 참모들이 잠시 눈을 붙일까말까 쉬고 있는데, 새벽 5~6시쯤 다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내가 좀 써서 다시 보냈어요. 그런데 아직 마무리를 못했어요. 뒤를 좀 부탁합니다.” 강 전 비서관이 메일함을 열어보니 연설문 원고가 마무리가 됐고 뒷부분 인사말 정도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장 ‘애드립’으로 참모들을 애먹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느 해인가 3·1절 연설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일본을 비판했는데, 이는 원래 연설문 원고와 달랐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5년 동안 3·1절 연설에서 한일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노 전 대통령는 연설문에 없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이름까지 거론했다고 합니다. 이는 아주 오래된 외교 관례를 깬 것이었지요. 이 일로 강 전 비서관은 민정비서관실의 조사를 받고 경위서까지 냈다고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청중에 대한 예의”라며, 항상 미리 준비한 원고대로만 연설한 반면, 노 전 대통령은 현장 분위기가 좋을 때나 앞서했던 발언자의 연설 내용과 자신이 준비한 말이 겹칠 때, 즉석에서 생각난 아이템이 있을 경우 어김없이 즉석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표현이나 문장을 두번 쓰는 것을 유독 싫어해 기업도시나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할 때마다 다른 원고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전국 대도시마다 축구경기장을 완공할 때, 기념 연설을 했는데, 도시가 바뀌어도 원고 주요 내용은 똑같았다고 합니다.
세부 표현보다 큰 틀 중시한 김영삼, 원고를 통째로 거의 외운 노태우
강 전 비서관은 역대 청와대 연설문 담당자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다른 대통령들에 얽힌 얘기도 들려줬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연설문 원고를 거의 고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참모들을 그만큼 신임해 비서들이 갖고온 연설 원고를 혼자 3번 정도 소리내 읽어본 뒤 “좋다”고 얘기하면 대부분 끝났다고 합니다.
저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대통령이 연설문을 고치고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중요 국사(國事)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이란 판단에서입니다. 특히 밤을 새가며 연설문을 직접 쓰다가 몸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큰 일이겠지요. 김 전 대통령의 경우, 독특한 억양과 발음 때문에 연설문을 쓸 때 절대 써서는 안되는 금기어(禁忌語)가 있었다고 합니다. ‘관광’ 같은 단어가 포함됐는데요, 당시 연설문 담당자들은 금기어들을 크게 써서 사무실 벽에 붙여 놓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모범생 스타일이었답니다. 언제인가 미국 방문 중에 비서들이 실수로 연설문 원고에서 마지막 한 장을 빼놓고 인쇄해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을 대통령이 연단에 오른 뒤에 알았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모두 사색이 돼 떨고 있을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연설을 마쳤다고 합니다. 미리 전달한 원고를 다 외웠기 때문에 인쇄된 원고의 마지막 장이 빠져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제서야 참모들도 노 대통령이 연설문을 다 외우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 연설문에 대해 2%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라든가,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보다,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식의 명문장을 남긴 반면, 우리나라 대통령의 연설문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개 언사(言辭)’을 중시하는 미국 정치문화와 대부분의 중대사는 막후(幕後)에서 이뤄지는 한국 정치 문화와의 큰 간극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저는 국어 교과서에도 대통령의 연설문이 통째로 실리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