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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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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11-27 01:04 조회3,3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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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마지막 날인 오늘은 저녁 7시에 남자농구 한중 결승전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느긋하게 제자와 함께 호텔 옆 중식당으로 향하던 중 긴급 전화를 받았다. 2시 여자 핸드볼 3/4위전에서 통역요청이 들어왔다는 거다, 어제 밤 새벽에 돌아와 아침도 먹지 못한 제자대신 내가 가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 탔다. 중간에 공식차량으로 갈아타고 경기장에 도착하니 경기는 끝나고 우리가 카작스탄을 이기고 동메달을 땄단다.
주장 이민희 선수는 어제 일본 팀에 진 패인을 묻는 질문에 "이길 줄 알았는데 경기 도중 일본이 우리를 이기려고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고 나왔음을 알았다. 아마도 우리가  너무 자만했던  것 같아 후회가 크다"고 고백했다. 방심하면 코베가는 세상??

막 시작되는 중일 결승전을 보지도 못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좀 있다 농구장으로 갔다. 관중이 몰릴 것에 대비해 통제가 강화돼 통역사도 약 30분이나 입장을 못했다. NBA 기준으로 만들었다는 15,000 석의 경기장에 들어가도 자리가 없어 입구에 서있다가 회견장으로 가 TV 중계를 보기로 했다.
편파판정도 물론 있었지만 중국팀이 강했다. 특히 미국 NBA에서 뛴 바있는 왕지지 선수는 중국집 사장처럼 생겼지만 장신(212cm)에도 우리 하승진과는 달리 특히 골 밑에서 몸놀림이 날렵했다. 33세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한다는 그는 중국인들의 영웅이었고 후배 선수들에게도 존경 받아 시상식 후 동료들이 각자 받은 금메달을 모두 그의 목에 걸어주며 경의를 표했다. 회견에 먼저 나온 우리 유재학 감독과 감성철 주장은 서둘러 먼저 소감 발표 후 질문을 받고 떠났다.

뒤에 남은 중국 팀의 미국인 Donewald 감독과 왕지지 선수는 사랑하는 중국 기자들의 애정어린 질문 공세에 즐거워 했다. 감독은 자신의 영중 통역사가 있어 따로 통역을 시키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 농구팀을 3번 통역했는데 덕분에 선수들 이름과 등번호를 거의 다 외워 2002 월드컵 통역 후 축구에 이어 농구도 좋아하게 될 것같은 느낌이다.특히 유 감독은 작은 체구에 신경질적인 외모, 다혈질의 발언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1번 유희종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을 얼굴이었다. 나는 농구 가드(guard)는 볼 배급만 하는 줄 알았는데 제일 작은 양동근은 팀내 최고 득점을 하는 간판 스타였다. 내일은 마라톤과 폐막식이 있는데 우리가 입상할 가능성이 있을까? 마라톤 금메달을 따면 <인간 승리>의 통역을 감동적으로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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