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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없는 사회(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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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8-03-05 11:38 조회3,4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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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각주 없는 사회
 출처없는 벽돌 갖다 올리니
 매번 허물고 다시 세우는 격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저작권 위원회 위원

 입력 : 2008.03.03 23:04 / 수정 : 2008.03.04 02:53

이번에는 달라지나 했더니 장관 등 고위직에 내정된 교수출신자들에 대한 논문표절 시비가 재연되고 있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때 당했던 현재의 야당은 당시 야당이었던 지금의 여당 대변인이 발표했던 성명문에서 이름만 바꿔 그대로 여당을 공격하였다. 여야가 달라졌으나 공격무기는 동일한 셈이다.

변호사로 있을 때 어떤 대학교수의 표절 사건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가 표절한 논문을 쓴 사람 중에는 아직 대학에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연구소에 근무하는 소장 학자가 있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표절 사건에서 소장 학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제지간으로 연결된 폐쇄적인 학계 분위기상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젊은 두 변호사인 워랜과 브랜다이스는 1890년에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프라이버시권'이라는 논문을 이 학교 학술지에 발표하였다. 28페이지 분량의 이 짧은 논문은 미국 법학논문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서, 심지어 이 논문이 미국 법학에 끼친 영향을 연구한 논문이 있을 정도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훗날 브랜다이스는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이 된다.

교수도 아닌 30대 소장 변호사들이 쓴 논문이 3세기에 걸쳐 다른 논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논문 간 연결통로인 각주(脚註·foot note)의 전통이 확고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후속 연구자들이 이 논문을 인용하면서 끊임없이 각주에 출처표시를 하였기 때문에 그 논문의 존재가 빛이 났던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담당했던 표절 사건에서 떳떳하게 소장 학자의 글을 각주에 밝히고 썼으면 됐을 것을 그 교수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면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항간에는 심지어 각주가 적어야 권위 있는 논문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이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본문의 주장을 보완하기 위해 잔글씨로 꼼꼼하게 그 논거를 대고 반대논거를 반박하며 그 출처를 소상히 밝힐 때 비로소, 그 주장에 대한 검증이 용이하게 되고 학문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간혹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논문이 SCI(과학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집에 실리는 것이 자랑스럽게 보도된다. 그런데 더욱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인용이 많이 되는 논문으로 선정되는 것이다.

해방 후 60년이 훨씬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학문이 없고 서구와 일본의 학문에 여전히 의존적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것은 왜 신뢰받지 못하는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나 필자는 각주가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베끼는 사람의 심리는 자신이 주로 베끼는 논문이나 저서를 가급적 각주에 표시하지 않는다. 표절임이 쉽게 들통 나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금 가져오고 비본질적인 부분을 신세 진 논문만 잔뜩 인용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국내 논문을 신뢰하지 못하고, 매번 외국 것만 가져다 쓰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런 수고를 덜기 위해서는 각주를 제대로 달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후학자는 앞선 자의 어깨를 딛고 더 멀리 내다 볼 수 있다. 벽돌을 한 장씩 쌓아 올리듯 학문과 문화가 그렇게 진전되는 것인데, 출처 없는 벽돌을 갖다 올리니 매번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 것이다.

본문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은 개발시대의 논리다. 진정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본문 못지않게 각주가 중요하다. 각주 없는 사회는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 



 

 
 
 

곽중철 (2008-03-05 13:35:42) 
 
[만물상] 표절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입력 : 2008.02.22 22:56 / 수정 : 2008.02.22 22:59 프랭클린 루스벨트 부부를 다룬 '평범하지 않은 시대(No Ordinary Times)'로 1995년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 저술가 도리스 굿윈이 2002년 표절 논란에 휘말렸다. 그녀가 1987년 출간했던 '피츠제럴드가(家)와 케네디가'가 다른 책 세 권을 베꼈다는 것이었다. 하버드대 박사로 존슨 대통령 참모였으며 하버드에서도 오래 가르쳤던 굿윈이었기에 언론과 학계가 술렁였다.

▶굿윈이 표절했다는 책 중 하나인 '캐슬린 케네디'(1983년)의 저자 린 맥타가트는 AP통신 인터뷰에서 "누군가의 책을 무단으로 베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심장과 내장을 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굿윈은 "각주(脚註)를 충분히 붙였기 때문에 모든 문장에 인용 부호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녀는 평판에 큰 상처를 입었고 퓰리처상 심사위원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자연과학 쪽에서도 표절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1988년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프레이저 교수가 예전 발표한 논문 4편이 다른 사람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학교를 떠났다. 2003년 인도 구마온대 부총장인 물리학자가 스탠퍼드대 연구진의 블랙홀에 관한 논문을 베껴 유럽 학술지에 기고했다가 사퇴했다. 인도에선 2007년에도 첸나이 안나대 과학자들 논문이 미국 학술지에 실린 스웨덴 교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판명돼 시끄러웠다.

▶대통령 사회정책수석비서관에 내정된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가 제자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02년 발표한 '가정 정보화' 연구가 6개월 전 지도학생의 석사논문과 제목, 연구목적, 사용 데이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교수 출신 고위인사가 표절 시비에 말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06년 김병준 교육부총리, 2007년 이필상 고려대 총장이 표절 의혹 때문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돼 물러났다.

▶선진국에선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자기 생각과 남의 생각을 정확히 구분해 표시하도록 교육시킨다. 대학생들은 "표절하면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학문 정직성 메모'에 서명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표절 불감증에 빠져 있었다. 국내 대학에서 몸에 밴 표절 습관을 해외유학 가서도 무심코 되풀이했다가 곤욕을 겪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교육부가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여섯 단어 넘게 인용할 때는 표절로 판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니 좀 달라질지. 무엇보다 표절은 용서받지 못할 지적(知的) 사기(詐欺)라는 사회적 인식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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