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료를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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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4-25 09:13 조회4,0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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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료를 올려라
한국통번역사협회(KATI) 이사 곽중철(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010-5214-1314
이 나라의 1세대 통역사로서, 3년 전 설립된 (사)한국통번역사협회의 발기인 중 한 사람으로 최근 불거진 한-EU FTA 협정문 오역사태에 대한 언론보도를 관망해왔다. 그 중 가장 핵심을 찌른 보도는 정부부처가 고급 번역사를 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예산 문제라는 것. 즉 번역사들이 정부 부처에서 2000~3000만원 정도 연봉의 계약직 인력으로 고용돼 대개 1년~1년 반 정도 경력을 쌓은 후 대기업으로 이직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환하면 억대 연수입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책임자는 "1300쪽의 협정문 전부를 전문인력에 맡기면 2억6000만원이 들어 내부에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 계산대로라면 번역료가 1쪽에 20만원인데 법무법인이 아닌 영세한 번역회사에서 1쪽에 20만원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쪽에 기껏해야 10만원이다. 그나마 외국어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더 낮아진다. 사태가 터진 후 법률 전문가들이 감수한 부분에서도 오역이 적잖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우리말 번역도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공기관에서 번역을 의뢰 받을 때 언제나 듣는 소리는 “가능한 한 빨리 번역해달라. 그러나 번역료는 예산 규정상 많이 줄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느 실력 있는 번역사가 공기관의 번역을 맡겠는가? 특히 영어 같은 경우는 일감이 넘치는데 “정부의 번역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봉사하라”는 말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런 현실의 밑바닥에는 뿌리깊은 번역 경시 풍조가 있다. 필자가 통역대학원 1기로 졸업한 당시 국내 통역료는 하루에 20만원이었고 최근에는 100만원 가량이니 30년 만에 5배가 되었다. 그러나 번역료는 그렇지 못하다. 프리랜서 번역사들의 몸값은 천차만별로 A4 용지 한 장 기준의 번역료는 적게는 장당 2000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편차가 매우 커 번역사들의 수입이 10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번역은 아직까지 “영어를 조금 잘 하거나, 영문과만 나오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 대학원에서도 1년에 150명 가량의 졸업생 중 “번역만 전문으로 하겠다”는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교수가 논문이나 저서를 펴낼 때보다 역서를 펴내는 연구 점수가 여전히 낮은 현실이 학자들마저 번역을 경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는 반대임을 보면서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말썽이 된 것이 외국어로의 번역이 아니라 우리말로의 번역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반성의 계기를 준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는 영어 위주의 언어 교육을 시키면서 모국어를 경시해왔다. 모국어 없는 외국어가 무슨 소용일까? 모국어를 온전히 못하는 자가 외국어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한자를 배우지 않은 한글세대가 그 어려운 한자투성이 협정문을 자신 있게 번역할 수 있을까? 이번의 한국어 오역 사태도 어쩌면 모국어 경시 풍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모국어를 경시하는 고위직과 직접 번역을 한 우리 말에 서툰 젊은 실무자 및 인턴 직원들의 합작품일 것이다.
정부 예산 규정이 있다 해도 일부 힘있는(?) 부서에서는 상당한 번역료를 주고 번역을 시킨다. 결국 성의를 가지고 특별예산을 책정해 결제를 받으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규정 운운’하는 것은 게으른 실무자들의 무사안일이 원인일 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년부터라도 공기관의 번역료 예산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만원을 주면 만원 짜리 번역이, 10만원을 주면 10만원 짜리 번역이 나온다. 이번 FTA 협정문 같은 경우는 전문 번역사들에게 일을 맡기면서 번역료에 법률 전문가들의 감수비까지 포함시켜야 했다. 번역료가 2-3억이 든다 해도 오역이 불러올 국가적 손해는 2-3조에 달할 수 있다. 정부가 베푸는 수많은 오ㆍ만찬 등 체면치레 행사들의 예산을 조금만 줄이면 된다. 정부와 국회는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내년 예산 책정 및 심의 시 번역료를 상향 조정하라. (끝)
한국통번역사협회(KATI) 이사 곽중철(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010-5214-1314
이 나라의 1세대 통역사로서, 3년 전 설립된 (사)한국통번역사협회의 발기인 중 한 사람으로 최근 불거진 한-EU FTA 협정문 오역사태에 대한 언론보도를 관망해왔다. 그 중 가장 핵심을 찌른 보도는 정부부처가 고급 번역사를 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예산 문제라는 것. 즉 번역사들이 정부 부처에서 2000~3000만원 정도 연봉의 계약직 인력으로 고용돼 대개 1년~1년 반 정도 경력을 쌓은 후 대기업으로 이직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환하면 억대 연수입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의 책임자는 "1300쪽의 협정문 전부를 전문인력에 맡기면 2억6000만원이 들어 내부에서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 계산대로라면 번역료가 1쪽에 20만원인데 법무법인이 아닌 영세한 번역회사에서 1쪽에 20만원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1쪽에 기껏해야 10만원이다. 그나마 외국어를 우리 말로 옮길 때는 더 낮아진다. 사태가 터진 후 법률 전문가들이 감수한 부분에서도 오역이 적잖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우리말 번역도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공기관에서 번역을 의뢰 받을 때 언제나 듣는 소리는 “가능한 한 빨리 번역해달라. 그러나 번역료는 예산 규정상 많이 줄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느 실력 있는 번역사가 공기관의 번역을 맡겠는가? 특히 영어 같은 경우는 일감이 넘치는데 “정부의 번역을 가문의 영광으로 알고 봉사하라”는 말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런 현실의 밑바닥에는 뿌리깊은 번역 경시 풍조가 있다. 필자가 통역대학원 1기로 졸업한 당시 국내 통역료는 하루에 20만원이었고 최근에는 100만원 가량이니 30년 만에 5배가 되었다. 그러나 번역료는 그렇지 못하다. 프리랜서 번역사들의 몸값은 천차만별로 A4 용지 한 장 기준의 번역료는 적게는 장당 2000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편차가 매우 커 번역사들의 수입이 100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만큼 번역은 아직까지 “영어를 조금 잘 하거나, 영문과만 나오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 대학원에서도 1년에 150명 가량의 졸업생 중 “번역만 전문으로 하겠다”는 사람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교수가 논문이나 저서를 펴낼 때보다 역서를 펴내는 연구 점수가 여전히 낮은 현실이 학자들마저 번역을 경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는 반대임을 보면서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 말썽이 된 것이 외국어로의 번역이 아니라 우리말로의 번역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반성의 계기를 준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는 영어 위주의 언어 교육을 시키면서 모국어를 경시해왔다. 모국어 없는 외국어가 무슨 소용일까? 모국어를 온전히 못하는 자가 외국어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한자를 배우지 않은 한글세대가 그 어려운 한자투성이 협정문을 자신 있게 번역할 수 있을까? 이번의 한국어 오역 사태도 어쩌면 모국어 경시 풍조 때문에 일어났다고 본다. 모국어를 경시하는 고위직과 직접 번역을 한 우리 말에 서툰 젊은 실무자 및 인턴 직원들의 합작품일 것이다.
정부 예산 규정이 있다 해도 일부 힘있는(?) 부서에서는 상당한 번역료를 주고 번역을 시킨다. 결국 성의를 가지고 특별예산을 책정해 결제를 받으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규정 운운’하는 것은 게으른 실무자들의 무사안일이 원인일 뿐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년부터라도 공기관의 번역료 예산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만원을 주면 만원 짜리 번역이, 10만원을 주면 10만원 짜리 번역이 나온다. 이번 FTA 협정문 같은 경우는 전문 번역사들에게 일을 맡기면서 번역료에 법률 전문가들의 감수비까지 포함시켜야 했다. 번역료가 2-3억이 든다 해도 오역이 불러올 국가적 손해는 2-3조에 달할 수 있다. 정부가 베푸는 수많은 오ㆍ만찬 등 체면치레 행사들의 예산을 조금만 줄이면 된다. 정부와 국회는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내년 예산 책정 및 심의 시 번역료를 상향 조정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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