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투자진흥청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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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7-12 17:32 조회3,58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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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을 씨름했던 검찰총장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파리에서 뜻밖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AIIC(국제회의통역사협회) 회원명부에서 당신의 연락처를 찾았다. 7월 6일 파리에서 약 2시간의 불-영-한 동시통역이 있는데 파리에 와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평소에도 유사한 문의는 종종 있었고, 학교 강의에 매여 영한 통역의 경우 제자를 보낸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불어가 끼여있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설마하면서 요청비용을 써보냈더니 정말 국제전화가 와서 "와달라"는 겁니다.
세상에 아무리 통역을 중시하는 유럽이지만 2시간 통역을 시키기 위해 1,000 유로가 넘는 통역료에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야하는 서울에서 오는 비지니스 클래스 항공권에, 3박의 1류호텔 숙박비도 부담하겠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4일 아침 출발해 현지 시간 4일 오후 파리 CDG 공항에 도착하니 주최 측이 예약한 콜택시가 기다렸다가 파리 15구의 노보텔(257 RUE DE VAUGIRARD)로 모셔다 주었습니다. 하루를 쉬면서 시차를 극복하는 도중 이멜로 도착하는 회의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더니 "혼자서 하는 식사는 영수증을 주면 환불하겠다"는 약속도 하더군요.
회의는 프랑스 투자 진흥청(AFII, 영어로는 Invest in France Agency)이 한국기업인들을 위한 설명회였습니다. 당일 1시반 다시 주최 측이 불러준 콜택시로 14구의 회의장소로 갔습니다. 통역 파트너는 외대 통대를 중퇴하고 내가 졸업한 파리통역대학원 ESIT의 한불 번역 과정을 수료한 후배 여성이었습니다. 주불 한국대사와 주 파리 한-불 상공회의소장의 한국어 연설을 내가 영어로 통역하면 옆 부스의 프랑스 통역사가 불어로 통역하고, 나머지 프랑스 기업인들의 불어 연설은 우리 둘이가 불한 통역을 나누어 했습니다. 실로 불한 통역은 오랫만에 해 보는 것이라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million 이라는 숫자는 불어도로 million이지만 billion은 billion이 아니라 milliard 라는 불어단어가 따로 있었음를 부스 속에서 깨달으며 통역하는 식이었습니다.
만족은 하지 못했지만 "잘 떼웠다"고 자위하며 통역을 마치는 순간 프랑스 투자진흥청장이 "한국의 평창이 201 8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고 축하하더군요. 그 때가 현지 시간 6일 오후 5시를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진흥청을 나와 1980-83 유학시절 중 첫 1년을 보냈던 같은 14구의 대학기숙사촌(Cite Universitaire)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내가 살던 영국관의 2층방을 바깥에서 다시 핸드폰으로 찍어두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며 도대체 프랑스란 나라와 파리란 도시, 불어란 와국어는 나랑 무슨 인연이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답니다...
다음 날 오전 급행 전철(RER)을 타고 3시간 전에 다시 CDG 공항에 도착했더니 여행객이 너무 많아 공항이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세계 제1이라는 인천 공항의 우수한 인력과 극도로 효율적인 입출국 절차가 실로 그리웠습니다. 수많은 여행객이 초조하게 긴 줄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카운터 앞에선 여행객, 그리고 옆의 동료 직원과 천연덕스럽게 쓸데없는 농지꺼리를 주고받는 지상 여직원은 한 대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아, 그리운 고국이여...
세상에 아무리 통역을 중시하는 유럽이지만 2시간 통역을 시키기 위해 1,000 유로가 넘는 통역료에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야하는 서울에서 오는 비지니스 클래스 항공권에, 3박의 1류호텔 숙박비도 부담하겠다니 놀라운 일이지요.
4일 아침 출발해 현지 시간 4일 오후 파리 CDG 공항에 도착하니 주최 측이 예약한 콜택시가 기다렸다가 파리 15구의 노보텔(257 RUE DE VAUGIRARD)로 모셔다 주었습니다. 하루를 쉬면서 시차를 극복하는 도중 이멜로 도착하는 회의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더니 "혼자서 하는 식사는 영수증을 주면 환불하겠다"는 약속도 하더군요.
회의는 프랑스 투자 진흥청(AFII, 영어로는 Invest in France Agency)이 한국기업인들을 위한 설명회였습니다. 당일 1시반 다시 주최 측이 불러준 콜택시로 14구의 회의장소로 갔습니다. 통역 파트너는 외대 통대를 중퇴하고 내가 졸업한 파리통역대학원 ESIT의 한불 번역 과정을 수료한 후배 여성이었습니다. 주불 한국대사와 주 파리 한-불 상공회의소장의 한국어 연설을 내가 영어로 통역하면 옆 부스의 프랑스 통역사가 불어로 통역하고, 나머지 프랑스 기업인들의 불어 연설은 우리 둘이가 불한 통역을 나누어 했습니다. 실로 불한 통역은 오랫만에 해 보는 것이라 쉽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million 이라는 숫자는 불어도로 million이지만 billion은 billion이 아니라 milliard 라는 불어단어가 따로 있었음를 부스 속에서 깨달으며 통역하는 식이었습니다.
만족은 하지 못했지만 "잘 떼웠다"고 자위하며 통역을 마치는 순간 프랑스 투자진흥청장이 "한국의 평창이 201 8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고 축하하더군요. 그 때가 현지 시간 6일 오후 5시를 넘긴 시각이었습니다. 진흥청을 나와 1980-83 유학시절 중 첫 1년을 보냈던 같은 14구의 대학기숙사촌(Cite Universitaire)으로 지하철을 타고 갔습니다. 내가 살던 영국관의 2층방을 바깥에서 다시 핸드폰으로 찍어두고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며 도대체 프랑스란 나라와 파리란 도시, 불어란 와국어는 나랑 무슨 인연이 있을까 다시 생각해 보았답니다...
다음 날 오전 급행 전철(RER)을 타고 3시간 전에 다시 CDG 공항에 도착했더니 여행객이 너무 많아 공항이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세계 제1이라는 인천 공항의 우수한 인력과 극도로 효율적인 입출국 절차가 실로 그리웠습니다. 수많은 여행객이 초조하게 긴 줄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카운터 앞에선 여행객, 그리고 옆의 동료 직원과 천연덕스럽게 쓸데없는 농지꺼리를 주고받는 지상 여직원은 한 대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아, 그리운 고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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