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영어실력’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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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곽중철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09-04-03 16:05 조회3,94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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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영어실력’ 보도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곽중철 011-214-1314
최근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는 수상 후 가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여 또 다른 칭찬을 받았다. 일부 신문은 연아의 '영어 교사'가 엄마 박미희(52)씨로, 박씨는 딸이 어릴 때부터 하루 3~4 시간씩 차에 태우고 훈련장을 오가는 시간에 영어 테이프를 끊임없이 듣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역시 영어 인터뷰를 거뜬히 해내는 축구의 박지성, 골프의 박세리와 최경주, 수영의 박태환 등 모두가 엄마 덕에 영어 테이프를 들었을까? 그들의 공통점은 ‘엄마의 정성’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데서 나오는 자신감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어학습의 비결 중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 영어를 배우려고 조기유학을 가기 보다는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란 모국어든 외국어든 그 내용(컨텐츠)이 중요하다. 표현할 내용만 확실하면 말은 어떻게든 흘러나온다. 말이 안 되는 사람은 할 말이 없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를 뿐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언론이 서투르게 보도하는 이슈 중 하나가 특정인의 ‘영어실력’에 관한 것이다. 최근 모 대학을 수석 졸업한 여학생을 두고 “외국어에도 능통해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했다. 이 말은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다 연주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축구선수가 야구, 수영, 핸드볼도 잘 한다는 말이다.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한 우리 선수가 외국 언론과 영어로 인터뷰하면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고 보도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녹음된 테이프를 들어 보면 그냥 무난히 의사 전달하는 수준이다. “오늘 컨디션이 어땠고, 무엇이 쉬웠고 어려웠으며 앞으로 더 잘 하겠다. 감사하다”는 말 뿐인데 무엇이 크게 어려울까?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과장 보도가 나오는 걸까? 감히 말하자면 기자들이 외국어에 조예가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자들은 모국어로 기사를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최근 미국대사로 떠난 한덕수 전 총리의 경우 스스로 일찌감치 “영어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서기가 곤란하다”고 했는데도 그의 하마평에는 영어가 완벽하고, 양복주머니에는 최신 영어 표현을 적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보는 수첩이 있을 정도로 노력한다는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는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국사에 바쁠 텐데 작은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모습을 국민들이 좋아할까?
세계를 제패하는 우리의 골프, 축구, 수영, 스케이트 선수들이 운동 실력만큼 영어에서도 ‘완벽’하지는 않다. 우승컵을 받고 몇 마디 하는 영어가 조기영어 교육에 지친 학생과 부모가 열등감을 느끼며 부러워할 수준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 언론은 히딩크,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백 등 네델란드 출신 우리 축구팀 감독들의 엉터리 영어는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그들이 우리 땅에서 높은 연봉을 챙긴 것은 그들의 영어 실력이 아니라 축구 지도 실력 덕분이었다.
작년 4월말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 부부와 거침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정상 간의 사적인 대화 정도는 일일이 통역에 의존하지 않고 거뜬히 직접 영어로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왔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대통령이 대기업 CEO 출신답게 자신감을 바탕으로 영어로 소통했고, 그것이 바로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통령의 귀국 직후부터 전국을 뒤흔든 미국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지켜 보면서였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영어실력이 국익 증진에 기여했다고 보기보다는 <국민 몰래 미국과 내통>하는데 쓰였다고 보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끝)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교수 곽중철 011-214-1314
최근 세계피겨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는 수상 후 가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여 또 다른 칭찬을 받았다. 일부 신문은 연아의 '영어 교사'가 엄마 박미희(52)씨로, 박씨는 딸이 어릴 때부터 하루 3~4 시간씩 차에 태우고 훈련장을 오가는 시간에 영어 테이프를 끊임없이 듣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역시 영어 인터뷰를 거뜬히 해내는 축구의 박지성, 골프의 박세리와 최경주, 수영의 박태환 등 모두가 엄마 덕에 영어 테이프를 들었을까? 그들의 공통점은 ‘엄마의 정성’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데서 나오는 자신감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어학습의 비결 중 하나를 찾아낼 수 있다. 영어를 배우려고 조기유학을 가기 보다는 자기 전문분야에 대한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란 모국어든 외국어든 그 내용(컨텐츠)이 중요하다. 표현할 내용만 확실하면 말은 어떻게든 흘러나온다. 말이 안 되는 사람은 할 말이 없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를 뿐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언론이 서투르게 보도하는 이슈 중 하나가 특정인의 ‘영어실력’에 관한 것이다. 최근 모 대학을 수석 졸업한 여학생을 두고 “외국어에도 능통해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고 했다. 이 말은 피아니스트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다 연주한다고 하는 것과 같다. 축구선수가 야구, 수영, 핸드볼도 잘 한다는 말이다. 그럴 수가 없는 일이다.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우승한 우리 선수가 외국 언론과 영어로 인터뷰하면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고 보도하기 마련인데 실제로 녹음된 테이프를 들어 보면 그냥 무난히 의사 전달하는 수준이다. “오늘 컨디션이 어땠고, 무엇이 쉬웠고 어려웠으며 앞으로 더 잘 하겠다. 감사하다”는 말 뿐인데 무엇이 크게 어려울까? 그런데 왜 자꾸 그런 과장 보도가 나오는 걸까? 감히 말하자면 기자들이 외국어에 조예가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자들은 모국어로 기사를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최근 미국대사로 떠난 한덕수 전 총리의 경우 스스로 일찌감치 “영어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서기가 곤란하다”고 했는데도 그의 하마평에는 영어가 완벽하고, 양복주머니에는 최신 영어 표현을 적어 놓고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 보는 수첩이 있을 정도로 노력한다는 에피소드가 빠지지 않는다. 총리까지 지낸 사람이 국사에 바쁠 텐데 작은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모습을 국민들이 좋아할까?
세계를 제패하는 우리의 골프, 축구, 수영, 스케이트 선수들이 운동 실력만큼 영어에서도 ‘완벽’하지는 않다. 우승컵을 받고 몇 마디 하는 영어가 조기영어 교육에 지친 학생과 부모가 열등감을 느끼며 부러워할 수준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 언론은 히딩크,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베어백 등 네델란드 출신 우리 축구팀 감독들의 엉터리 영어는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다. 그들이 우리 땅에서 높은 연봉을 챙긴 것은 그들의 영어 실력이 아니라 축구 지도 실력 덕분이었다.
작년 4월말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 부부와 거침없이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TV로 보면서 정상 간의 사적인 대화 정도는 일일이 통역에 의존하지 않고 거뜬히 직접 영어로 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왔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 대통령이 대기업 CEO 출신답게 자신감을 바탕으로 영어로 소통했고, 그것이 바로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통령의 귀국 직후부터 전국을 뒤흔든 미국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지켜 보면서였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영어실력이 국익 증진에 기여했다고 보기보다는 <국민 몰래 미국과 내통>하는데 쓰였다고 보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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